이제 중대신문을 뒤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이런 글을 청탁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나도 현직에 있을 땐 꽤 강한 주장을 한 사람이고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을 증오의 시선으로 바라본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역지사지(易地思之) 처지에서 상대편도 이해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중대신문은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에 간행되는 주
중대신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큼직한 사진과 일러스트, 그래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1면 커버스토리 사진부터 2, 3면에 쓰인 인포 그래프 등은 기사 이해를 돕고 읽는 부담을 덜어주었다. 인터뷰 면에서는 한 단을 비워 여백을 주어 경쾌했다. 텍스트에 쉽게 피로해질 수 있는 독자를 충분히 배려했던 신문이 아닐까 한다. 분명 산뜻하지만 가볍지는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새 총장이 취임하였다. 중앙대 구성원 모두가 원하는 바를 이루면 좋겠다. 새 총장의 취임도 축하한다. 지난주의 중대신문이 비중 있게 다룬 기사는 총장 취임과 수강신청 문제였다. 총장의 취임사를 소개하였고 총장과의 인터뷰 기사가 있었다. 새로운 백 년을 내다보는 대학과 구성원이 행복한 대학을 만들겠다는 총장의 취임사를 소개하고 있고 또한
필자는 중대신문을 읽을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한다. 국내 대형 신문사들의 신문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기사의 내용과 사진, 편집, 디자인 수준까지 모두 뛰어나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학내 구성원들이 대치하는 민감한 사안에 지나치게 가치중립성을 띄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을뿐더러 그 중심점
중대신문이 정리한 ‘2015년 중앙대 10대 뉴스’에서 알 수 있듯 지난 한 해 동안 중앙대는 많은 일을 겪었다. 이에 중대신문은 중요한 이슈들에 대한 여러 목소리를 담아내어 중앙대 구성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올해에도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공정한 기사를 기대하며 유교의 ‘의(義)’와 ‘지(智)’에 근거하여 기자에게 요구되는 두 가지 기
중대신문 제1862호 1면은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기사로 시작되었다. 학내 구성원을 대표하는 제58대 서울캠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되었다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필자의 대학 재학 시절과 다르게 최근에 보이는 학내 구성원들의 총학생회에 대한 낮은 관심은 여러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는 현상이라 생각한다. 선거가 무산된 이유는 이미 학내에 있는
얼마 전 진행된 제37대 대학원 총학생회 선거에서 필자는 대학원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되었다. 필자가 선거에 직접적인 후보자였기에 중대신문을 더욱 꼼꼼히 챙겨보았다. 중대신문 제1861호는 선거 관련된 기사들이 주를 이루었으며 ‘중대신문을 읽고’ 꼭지의 기사 청탁에 따라 선거 관련 기사를 중심으로 글을 쓰고자 한다. 중대신문 제1861호에 담긴 선거와 관련된
중대신문을 읽으면 중앙대와 관련된 주요 사안들과 흥미로운 정보들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제1859호 중대신문은 광역화 모집과 더불어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올해 일어난 사건들의 진행 과정과 결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기사는 올 한 해 양캠 총학생회의 공약 이행을 점검하는 보도기획이었다. 새롭게 출마한 총학생회 후보들이 선거운
시대의 반달리즘이 거세지는 만큼 마음 타들어 가는 사람도 많은 터라 중대신문 제1858호의 1면에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학우들의 사진이 실렸다. 그런데 건조한 가을 날씨에 타들어 가는 마음이 번졌는지 에도 썸타다 마음까지 타버린 이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안타까운 점이라면 썸타는 이들의 마음은 자세히 그려져 공감을 자아냈으나, 타들어 가
시험기간 가판대에는 평소보다 많은 양의 중대신문이 남아 있다. 공부에 쫓겨 학생들이 신문을 읽지 못한 탓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학생들은 시험기간에 뉴스를 소비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시험기간에도 학생들은 평소와 비슷한 양의 뉴스를 소비한다. ‘시험기간에 책장은 안 닳아도 스마트 폰 배터리는 닳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많은 학생이 시
내가 학교에 입학한 지도 2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겠지만, 소위 말하는 ‘대학교 앞 맛집 거리’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나는 학교 근처 흑석 시장부터 숭실대 입구까지 종횡무진하며 나름의 맛집 탐방을 진행했더랬다. 그 결과 흑석, 상도동에 사는 대학교 지인들도 모르는 다양한 밥집을 소개해 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당장 타 대학 친구
필자는 친구 혹은 동창과의 모임에서 학생들에게 정말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매번 받는다. 비슷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비록 전공과는 관련이 없지만 주저 없이 ‘결과가 어떻든 오랜 세월이 지나도 후회 없는 연애의 당위성’을 가르치고 싶다고 답한다. 대학시절의 연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이자 개인의 실천적 담론이 될 수 있기에 나는 대학
이번 꼭지에 대한 기고 요청이 들어왔을 때 많은 고민을 했다. ‘중대신문’을 즐겨 읽는 독자로서 학부생이나 교수님에 비해 대학원생이 기고한 글은 흔히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쓸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주저함이 많았다. 또한 필자는 지난해 제35대 대학원 총학생회장을 역임했기에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다. 그러나 중대신문을 사랑하는
늘 그렇듯이 지난호 중대신문에도 다양한 내용이 실렸다. 서포터즈 관련 기사는 일간지에 실어도 괜찮을 만한 기획이었다. 일반 학생들이 만나기 어려운 중앙대 동문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중대신문이 만난 사람’이나 우리 역사의 이면을 볼 수 있는 유적을 소개한 문화 기획도 주목할 만했다. 하지만 ‘법학관 흡연구역 실태조사’ 기사는 읽을수록 아쉬웠다. 인터뷰 대상
우리 학교 구성원들은 참 칭찬에 인색한 것 같다. 누군가가 맡은 일을 멋지게 잘 해내면 그 사람은 자신의 할 일을 다 한 것뿐이니 당연하게 여기지만 잘하지 못하면 당연하지 않은 일로 그 즉시 욕을 먹는다. 우리 학교만큼 구성원들에게 욕을 많이 먹는 학교도 흔치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객관적 지표들로 보는 우리 학교는 분명 최근 5년간 가장 많이 성장한 학교
공강 시간 학교 근처 카페에 앉으면 여기저기서 다양한 나라의 언어가 들려온다. 가까이는 중국어부터 멀리 유럽의 프랑스어까지 세계 각지의 언어가 학교 앞 카페에서 흘러나온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색적이었던 풍경이 이제는 당연한 풍경이 되었다. 지난 몇 년간 많은 대학이 세계화를 지향하였고 중앙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앙대의 외국인 학생 수는 계속해서
중대신문 제호 위에는 ‘1947년 창간, 대학신문의 효시’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嚆矢’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시작되어 나온 맨 처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흔히 “현대소설의 효시는 이광수의 ‘무정’이다.”와 같이 쓴다. 이처럼 ‘嚆矢’는 단순히 시기적으로 빠르다는 기본 의미를 넘어 어떤 현상의 근원이라는 권위를 가진다. 따라서 ‘嚆矢’라는
2학기 개강호 중대신문을 보면 1학기 때 논란이 되었던 사건의 진행과정이나 방학 중 일어난 사건 등을 볼 수 있다. 주요 내용으로 다뤄진 학칙 개정안, 대학구조개혁 A등급 등에 대한 기사는 중앙대 학우들이 관심 있고 알아야 하는 내용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학우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많은 관심이 있었던 일에 대한 기사는 지난 호에서 많이 찾아
개강을 맞아 그동안 중대신문과 국내 신문을 읽으면서 느낀 단상을 연구자의 시각에서 적고자 한다. 그 시작은 “저널리즘(언론)의 ‘원칙’은 무엇인가?”에서 출발한다. 언론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와 함께 제4부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들 3부와 자본권력의 부정·부패를 감시하여 보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언론은 경찰·검찰과 같은 국가권력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