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는 올해 100주년기념식을 거행했다. 현재 중앙대는 중앙유치원이 독자적인 교육기관으로 자리잡은 1918년을 개교원년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문헌을 찾아보면 중앙유치원은 1916년 정동유치원의 분원으로 시작됐다. 이번주 백과사전은 중앙대 개교원년 변천사를 알아봤다. 중앙대의 역사는 중앙유치원으로부터 시작된다. 처음 중앙유치원은 종로구 인사동 소재 중앙교회에 정동유치원 분원으로 설립됐다. 중앙유치원 설립 시기와 개교원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하다. 초창기 중앙유치원이 특별한 주의를 끌지 못해 당시 기록이 많지 않기 때문
지난 100년 동안 중앙의 이름은 책과 논문 위에서만 펼쳐진 것은 아니었다. 중앙대 스포츠단은 운동장과 경기장 위에 중앙의 이름을 새겨왔다. 1930년대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빙상부부터 1980년대를 호령한 농구부와 올해 최고의 성적을 거둔 축구부까지. 땀과 열정으로 중앙을 빛낸 중앙대 스포츠단의 발자취를 되짚어봤다. 빙상부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눈부신 활약을 보여줬다. 1956년 제36회 전국 체육 동계 대회 500m·1500m·5000m·1만m에서 궁익우·허정욱&mid
시대에 따라 중앙대 학생자치기구의 활동과 선출 방식은 다양했다. 1945년 첫발을 내딘 학생자치기구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올해 제60대 양캠 총학생회가 임기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이번주 백과사전에서는 학생자치기구의 역사를 다뤄봤다. 학생자치기구의 첫 역사는 중앙대의 전신인 중앙보육학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9월 29일 중앙보육학교가 중앙여자전문학교로 승격되면서 김인옥(당시 경제 1)이 초대 학생회장으로 선출됐다. 당시 회장과 부회장, 각 부의 부장과 차장은 총회가 제청하고 교장의 인준을 얻어 선임됐다. 1949년에는 학도호
대학 총장은 대학에서 가장 높은 직책으로 명예로운 만큼 책임이 중한 지위다. 지난 64년간 중앙대를 대표한 13명의 총장은 모두 취임식에서 학교의 발전을 약속했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 학교를 물러날 때는 박수를 받으며 떠난 총장, 등 떠밀려 사퇴한 총장 등 제각기였다. 중앙대 설립자이자 초대 총장인 임영신 총장은 학교의 기초를 닦는 데 힘썼다. 임 총장은 “중앙대는 나의 모든 목표”라며 학교에 애정을 보였고 당시 학생들은 임 총장을 할머니 같은 친근한 교육자로 기억한다. 임 총장이 별세한 후 시신은 현재 309
중앙대 서울캠 정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중앙대 병원이 있다. 지난 1968년 필동에서 개원한 후 지난 2005년 흑석동으로 이전하기까지 많은 변화를 겪어온 중앙대 병원은 올해로 개원 50주년을 맞았다. 여명기와 발전기, 성장기를 거쳐 도약의 단계에 있는 중앙대 병원의 역사를 알아봤다. 중앙대 병원은 지난 1968년 6월 한국의과학연구소 부속 성심병원으로 개원하며 기틀을 마련했다. 설립자 윤덕선 박사를 비롯한 가톨릭대 의대 교수들의 병원 개업은 국내 최초 의대 교수들의 집단 병원 개업이라는 점에서 언론과 의료계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중앙대가 위치한 흑석동에는 수많은 가게가 자리 잡고 있다. 오랜 시간 중앙대가 변화한 만큼 여러 가게가 생겼고 몇몇 가게는 추억 너머로 사라지기도 했다. 이번주 백과사전은 수십 년간 중앙대와 함께한 안동장, 수목식당, 터방내 이야기를 담아봤다. 졸업생이 꾸준히 많이 찾는 중국집인 ‘안동장’은 1960년부터 수많은 학생이 다녀갔다. 중앙대병원 앞 골목에 위치한 3층 건물 전체가 그 주인공이다. 동아리 회식, 신입생과 선배의 만남, 학생과 교수와의 식사가 59년 동안 수없이 안동장을 거쳐갔다. 최휘성 학생(역사학과
정문은 정면에 위치해 주로 드나드는 문을 뜻한다. 서울캠 정문에는 ‘문’이 없다. ‘중앙대학교’ 글자 조형물과 교훈이 새겨진 비석이 길게 뻗은 잔디밭 정면에 자리 잡아 ‘문’을 대신한다. 밤에는 글자 조형물과 그 뒤로 보이는 101관(영신관)에 조명이 켜지고 가로등이 잔디밭을 밝혀 중앙대 대표 야경으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캠퍼스가 처음부터 ‘문’ 없이 개방되지는 않았다. 서울캠 정문은 시대 흐름과 함께 변했다. 지난 1970년 7월 담으로 이어
지난 100년의 세월 동안 중앙대의 모습은 크고 작은 변화를 거쳤다. 이번 백과사전에서는 루이스가든, 할매 동산, 205관(학생회관), 206관(학생문화회관) 등 중앙대 캠퍼스 내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장소들에 얽힌 학생과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60년대 입학식과 졸업식 때마다 101관(영신관) 앞 ‘루이스 가든’은 수많은 인파로 붐볐다. 현재 영신관 앞 중앙광장부터 102관(약학대학 및 R&D센터)까지의 공간이다. 지금은 사라진 대운동장 건립 이전에는 이곳이 학교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었다. 루이스 가든은
안성시 대덕면에 위치한 안성캠은 넓은 캠퍼스와 쾌적하고 맑은 교육환경을 자랑하며 중앙인에게 ‘안성맞춤’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80년 개교 이후 어느덧 39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성장한 안성캠의 설립 배경부터 통합캠퍼스가 되기까지의 지난 세월을 되짚어봤다. 1970년대 서울 지역의 인구 집중화로 정부에서는 지방캠퍼스의 건립을 적극 권장했다. 또한 당시 서울캠은 협소한 공간 때문에 특성화 대학을 육성하는 데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에 중앙대는 대학교육정책의 변화를 따르면서 서울캠의 공간 문제도 해결할 수
중앙대의 다양한 건물들은 항상 중앙인 곁을 지키고 있다. 중앙대를 대표하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103관(파이퍼홀), 207관(봅스트홀)과 203관(서라벌홀), 시계탑이 자리한 204관(중앙도서관), 서로 같은 이름을 가진 907관(수림체육관)과 104관(수림과학관) 등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건물의 이름에는 인물과 관련된 일화와 역사가 숨어있다. 매일 파이퍼홀을 오가면서도 ‘파이퍼’란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학생을 위해 중앙대 건물 이름의 유래를 알아봤다. 적십자간호대가 사용하고 있는 파이퍼홀은 &lsqu
중앙(中央)에서 CAU까지100년 역사와 함께한 UI 변천사중앙대 정문에서부터 리무진 버스, 학교 점퍼와 학생증까지, 학교 곳곳에서 ‘이곳이 중앙대다’고 외치는 듯한 ‘UI(University Identity)’를 찾을 수 있다. UI란 학교 정체성과 일관된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한 상징물을 의미한다. 현재 UI는 판촉물·행사·기념품 등 다양한 곳에서 활용되며 중앙대를 널리 알리고 있다. 중앙대의 UI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변화해 왔는지 되짚어 봤다. 최초의 로고는 1
중앙대 한가운데 위치해 사시사철 다른 매력을 뽐내는 청룡상과 청룡연못은 중앙대 학생에게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생일을 맞이한 친구를 빠뜨리거나 연못 주위를 돌며 산책하고 돗자리를 깔아 도란도란 담소를 나눈다. 우리 곁에 늘 함께하는 청룡은 어떻게 중앙대의 상징이 되었는지 그 비화를 알아봤다. 청룡이 학교의 상징이 된 배경은 승당 임영신 박사의 꿈과 연관 있다. 임영신 박사는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로 1933년에 중앙보육학교를 인수한 초대 총장이다. 흑석동을 교지로 정하겠다 결심한 날 임영신 박사는 청룡이 구름을 헤치며 승천하는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