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뛰어난 자연환경으로 유명한 나라다. 사실 캐나다에서 밴쿠버, 토론토 등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인구도 적고, 문화 공간이 잘 발달돼 있지 않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 온 학생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캐나다 생활에 심심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내가 있는 곳은 어떤 블로그를 둘러보더라도 3박 4일 이상 여행한 사람이 없고 모두 당일치기 여행으
다른 나라에서 - ④-1 캐나다 교환학생 김지수 학생(영어영문학과 3) 해외로 어학연수, 교환학생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이 바로 홈스테이, 하우스 쉐어, 기숙사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나 또한 처음 캐나다에 올 때 홈스테이를 할지, 기숙사에 살지, 피어스테이(다른 학생들과 하우스 쉐어)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이미 유학을 다녀
내가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합격하여 프랑스에 가게 되었다고 이야기했을 때, 주변인들의 반응은 주로 두 가지로 엇갈렸다. 일부는 ‘프랑스? 재미있겠다, 좋겠다!’라고 부러워했던 반면, 나머지는 다소 의아스럽다는 듯이 ‘미국도 아니고, 프랑스에는 왜? 더군다나 프랑스어도 못하는 네가?’라며 우려를 표시하곤 했다. ‘도대체 프랑스에는 왜 왔니?’ 프랑스에 도착한
프랑스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하다 보면, 종종 프랑스인들이 의연하게 내뱉는 ‘싸 데뻥(Ca Depend)’이라는 단호한 한 마디에 부딪혀 망연해지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프랑스어의 싸 데뻥(Ca Depend)이란 영어로 ‘It Depends’, 의역하자면 ‘그때그때 달라요’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보편적으로 프랑스의 정신이라고 하면 똘레랑스(Toleranc
내가 교환학생으로서 두 학기를 보내게 된 도시 릴(Lille)은 프랑스의 노드 파 드 깔레(Nord-Pas-de-Calais) 지역의 공업도시로 프랑스 북부를 대표하는 도시다. 런던과 비행기로 단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하며 날씨도 런던과 매우 흡사하다. 여름에는 밤 열시까지도 해가 쨍쨍하지만 늦가을만 돼도 몇날 며칠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칼바람이 부는 일상이
2011년 3월 11일, 인구 100만 명의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台)시는 암흑천지가 되었다. 대지진에 이어 밀어닥친 지진해일로 전기, 수도, 가스는 물론 교통 및 각종 서비스까지 기반시설 전체가 불통이 되어버렸다. 센다이의 3월 평균기온은 섭씨 0~5도. 난방이 안 된다면 괴로울 정도로 춥다. 대학생이었던 내 친구 I는 치매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할머
1. 도쿄에서의 정착과정이 순조롭게 끝난 뒤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한겨울에도 땀나도록 돌아다니며 면접을 보았다. 면접이 끝나고 사장님에게 들은 말은 대개 비슷했다. “할 줄 아는 게 정말 많으시네요! 이렇게 일부러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번 주 안에 전화가 오면 채용되신 걸로 아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력서는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일단 갖고 가시고
“도쿄는 별로 안 추워, 눈 구경하기도 힘든데 뭘.” 도쿄로 향하기 전날 밤, 현지에서 며칠 신세지기로 한 형님의 대답이었다. 당시 무섭게 한파가 몰아치던 서울과 달리 섬나라 일본의 수도 도쿄는 따뜻할 것만 같았다. 앞으로 1년 간의 일본 워킹홀리데이가 즐겁고 유익한 일들로만 가득할 것이란 기대는 날씨에 대한 기대보다 더욱 컸다. 그리고 그 다음날의 이른
내 취미 중 하나는 지도보기다. 어렸을 적에는 방에 걸린 지도를 틈 날 때마다 들여다봤다. 스마트폰을 갖고부터는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구글맵을 한참 들여다보곤 했다. 특히나 유심히 들여다봤던 나라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미국이다. 미국 지도를 보다가 한국 지도를 보면 유독 그렇게 작아 보일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이 ‘다’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 걸 알고부터
누군가 내게 미국생활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눈 똑바로 뜨고, 정신 똑바로 차려라. 그리고 두 가지를 조심해라. 돈, 그리고 여권.” 마이애미에서 지낸 지 3주쯤 되었으려나. 어느 정도 미국 생활에 익숙해진 나는 조금 더 저렴한 집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600불짜리 홈스테이를 구할 수 있었다. 집 주인은 내게 네 달 치 집값을
2013년 2월 16일 밤 10시. 도쿄에서 디트로이트로 향하는 항공기 안에서 난 소리죽여 울고 있었다. 칠흑 같이 어두운 태평양 상공은 마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내 미래 같았고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찰 것만 같던 나의 미국 유학은 그저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2시간쯤 눈물을 훔쳤을까. 주섬주섬 일기장과 펜을 꺼내들었다. ‘내가 내 발로 떠나는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