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합격하여 프랑스에 가게 되었다고 이야기했을 때, 주변인들의 반응은 주로 두 가지로 엇갈렸다. 일부는 ‘프랑스? 재미있겠다, 좋겠다!’라고 부러워했던 반면, 나머지는 다소 의아스럽다는 듯이 ‘미국도 아니고, 프랑스에는 왜? 더군다나 프랑스어도 못하는 네가?’라며 우려를 표시하곤 했다. ‘도대체 프랑스에는 왜 왔니?’ 프랑스에 도착한 지 삼 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지만, 대답을 하자면 아직도 말문이 턱 막힌다.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라는 상투적인 대답으로 대충 얼버무리면서 속으로는 내 자신에게 다시 한 번 되묻고는 한다. ‘너 도대체 프랑스에는 왜 왔니?’라고.
최초의 계기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익명의 유럽 배낭여행 후기를 읽은 후, 소위 말하는 유럽 ‘앓이’가 찾아온 것이었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알기 때문도 아니고, 프랑스에 대해서 잘 알기 때문도 아니고, 프랑스에서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뚜렷한 청사진이 있기 때문도 아니었다. 오직 미지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나를 ‘프랑스’라는 모르는 나라로 이끌었던 것이다.


이전에 나는 파리 이외의 프랑스를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줄리엣 그레코가 부른 ‘파리의 하늘 아래’를 들으며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를 떠올렸고 그들이 노래한 센강변, 시테섬, 에펠탑, 샹젤리제 거리를 거닐면 프랑스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마침내 직접 마주친 프랑스라는 실체 속, 파리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프랑스에는 파리와 멀리 떨어진 지방의 도시에 살며 파리지앵들의 생활방식을 혐오하는 프랑스인들이 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지방의 풍경들은 잿빛의 파리와는 천차만별로 오색찬란하다. 남부의 따뜻한 태양을 닮아 엷은 노란빛으로 물든 프로방스의 집들, 마르세유의 빨간 지붕들, 해변의 크림색 호텔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니스의 푸른빛 리비에라 등 무궁무진한 색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인간과 삶의 방식이 존재하는 곳이 프랑스이다.

▲ 뷰 포트(Vieux Port)라고 불리는 마르세유 항구의 석양. 사진제공 김지영 학생

오직 60년대 프랑스 영화의 주인공들을 통해 ‘프랑스인’에 대한 막연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나에게, 프랑스인들의 실체는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유러피안 드림을 가지고 북아프리카와 중동 등지에서 이민 온 이민자들이 프랑스 전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도시의 골목마다 즐비한 베트남 식당은 과거 식민지 시절, 또는 베트남 전쟁 중 프랑스로 건너온 베트남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 중국인들과 아랍인들로 가득 찬 ‘탕씨 형제들(Tang Freres, 프랑스에서 가장 큰 아시안 마켓 프랜차이즈)’에 들어섰을 때는 ‘여기가 프랑스가 맞나?’하고 어리둥절한 기분까지 들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에서 롬(Rome)이라고 불리는,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구걸하는 집시들까지, 저마다 다른 색을 지닌 그림자들이 섞여 ‘프랑스인’이라는 거대한 그늘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열한 온갖 색의 ‘그림자’들은 내가 프랑스에 잠시 머무르는 여행객의 신분이었다면 알 수 없었을 것들이다. 지난 삼 개월은 내 머릿속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해체하고 퍼즐을 재조립하는 혁명적인 시간의 연속이었다. 거창한 명분이나 목적이 부재하는 상태임에도, 몸으로 부딪히고 경험하는 동안 저절로 매일 무언가를 배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쯤에서 다시 한 번 되묻는다. ‘너 도대체 프랑스에는 왜 왔니?’라고. 글쎄, 이렇게 배움을 반복하고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씩 맞춰가다 보면, 내년 여름 이곳을 떠날 무렵쯤에는 알게 되지 않을까? 내가 프랑스에서 내 이십대의 1년을 꼬박 보내고 가는 이유를, 결국엔 프랑스가 나에게 말해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