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식당, 기숙사 및 310관 1층 로비, 빼빼로 광장, 강의실 안, 학교 앞 길거리. 이제 캠퍼스 어디에서도 외국인 학생을 보는 것이 낯설지 않다.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 프랑스어, 독일어, 말레이어 등 들리는 언어도 다양하고 피부색도 다양하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통계를 봐도 이번 학기에 180개가 넘는 자매대학에서 500명이 넘는 교환학생이 중앙대에 와서 함께 공부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50개가 넘는 나라에서 온 3,000명의 유학생이 학부 과정과 대학원에 있다. 우리 대학에 국제처가 독립된 조직으
꿈꿔왔던 대학 생활의 시작, 운이 좋게 제6대 사회과학대학 학생회 ’리본‘에 합격하여 학생 자치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학생회 회의를 할 때 회장단으로부터 내려오는 업무 지시를 받고 집행위원장이 업무를 배분 및 관리하고, 각국의 국장단들이 그 일을 기획 및 집행하는 것을 보았을 때, 회의 시작 전까지 하하호호 놀던 집행부가 회의가 시작되자 업무에만 집중하고, 상호 간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정말 배워갈 것들이 많은 학생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학생회라고 해도 고등학교 때 경험해봤던 게 전부였던 나는 기대 이
우리는 때론 살아가면서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있고 그 갈림길에서 현명한 결정을 해야 후회 없는 삶이 될 것이다. 이젠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끝났다고들 한다. 특히 취준생들에게 있어선 누구보다도 현재의 시간이 나를 압박하고 들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께 그 길을 헤쳐갈 수 있는 안내서로서 유교의 기본 경전 중 하나인 『주역』을 권해보고 싶다. 주역을 여러분께 권하는 이유는 자연의 모든 이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는 오십이 되는 해에 주역을 접하면서 그 이치를 모두 깨치지 못하고 생을 다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금하지 못하
계절의 변화는 달력보단 캠퍼스 곳곳에 먼저 감지된다. 푸르던 잎들은 물들어 거리에 나뒹군다. 한 학기 마무리에 학생과 교수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가을의 낭만에 물들지 못했는데 벌써 연말로 치닫는다. 기후변화로 계절의 양극화 심화를 탓할 수 있지만, 봄날의 여유와 가을의 낭만을 만끽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것이 안타깝다. 그래도 주어진 역할과 의지가 있는 사람에겐 시간이 고무줄이 될 수 있기에 위안이 된다. 새 학기 시작과 함께 캠퍼스는 다시 생동하고 축제와 중간고사를 치르면 절정에 다다른다. 그리고 기말고사를 준비하여 마무리하고
대학 졸업 후 모교에 근무한 지 34년이 지났다. 업무 특성상 한 부서에서 강산이 3번 이상 변해버렸다. 강산도 변했지만 30여 년 전 보건진료소(그때의 명칭)를 찾았던 후배들과 현재 건강센터를 찾는 후배들 간에도 많은 차이가 있다. 80년대는 학생운동으로 최루탄과 돌멩이에 다친 학생들이 많았고, 자취를 하면서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생사를 오가는 학생도 있었으며 온돌방에서 자면서 복숭아뼈에 화상을 입고 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벌의 독성이 강했는지 벌에 쏘여 의식을 잃고 쓰러진 학생을 병원으로 이송하고, 자주 어지
“내가 원래 선을 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데.” 영화 의 한 장면이다. 극 중 성공한 사업가 박 사장은 버릇처럼 말한다. 점잖은 모습으로 호의를 베푸는 것도 잠시, 자신이 고용한 사람들이 경계를 범할 때마다 미간을 찌푸린다. 각자 정해진 위치에 남기를 강조한다. 기생충은 기생충에 머물러야 하고, 숙주와 대등하게 굴면 안 된다. 위아래의 명확한 구분 가운데, 제한된 자유를 보장한다. 기득권은 그렇게 유지된다. 지난달 26일, ‘리더스 포럼’이 열렸다. 나는 마이크를 건네받아 미리
‘너 이번에 누구 뽑을 거야?’ 신입생이었던 2016년 3월 동기들과 가장 많이 나누던 대화 중 하나이다. 2016년 3월 제58대 총학생회와 내가 속한 경제학부 학생회장 선거로 주위가 꽤 시끌벅적했다. 학교생활을 좀 더 해본 선배들은 공약 실현 가능성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으며, 처음 대학 선거를 겪는 신입생들은 고등학교와 사뭇 다른 풍경이 낯설고 새로웠다. 총학생회 선거는 접전 끝에 ‘응답하는’ 선본(선거운동본부)이 ‘뭐든지’ 선본을 4% 득표차로 누르고 당선됐고,
대학 졸업을 앞둔 2005년의 나를 회상해 본다. 전공은 취업 시장에서 선호도가 높지 않았고, 댄스 동아리 활동에 여념이 없어 성적은 명백히 나빴다. 그나마 미군 전투 부대에서 복무하며 겨우 익힌 생존 영어가 나에겐 유일한 믿는 구석이었을 뿐이다. 취직을 위해 마땅히 감내해야 할 시련을 겪은 적도 없었고, 치열하게 노력해본 적도 없으면서 양심 없게 월급 200만원을 넘게 주는 직장이 있다면 무조건 들어가겠다는 가당치 않은 포부를 품고 있던 졸업예정자였다. 그런데 나조차 믿어주지 않았던 나를 뽑아준 고마운 회사가 있었다. 기대하지 못
대학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자. 학문하는 곳이고 학생들을 가르쳐 좋은 인재를 육성하는 곳이다. 인력과 시설, 시스템은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것들의 최종 수혜자는 학생이 돼야 한다. 그런데 현실을 보자. 수직적 구조 아래의 리더십 그룹들을 재단이 감싸고 있다. 뒷받침하는 행정 직원들은 이들의 지시만 기다리고 있다. 이 집단은 이제 학교를 위해서가 아닌 실적과 특혜만을 위해 매진한다. 그러니 사상누각(沙上樓閣)과 같은 제도만을 만들며 결실은 아는 자들만 가져간다. 즉 결과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학생들이 희생양이 된다는 사
안녕하세요. 중대신문이 최초로! 직원 기고 코너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중대신문은 학생, 교수가 전해온 수많은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여러 교수님께서 자신의 교육 철학과 가치관을 담아 전하는 ‘강단사색’. 학생들이 마음속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놓는 ‘나도 한마디’. 건강한 비판으로 기자들 마음을 초심으로 돌려놓는 ‘중대신문을 읽고’까지. 중대신문 독자로서, 중앙대 구성원으로서, 나아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새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