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마음을 보이지 않는 일본인.
 
1. 도쿄에서의 정착과정이 순조롭게 끝난 뒤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한겨울에도 땀나도록 돌아다니며 면접을 보았다. 면접이 끝나고 사장님에게 들은 말은 대개 비슷했다. “할 줄 아는 게 정말 많으시네요! 이렇게 일부러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번 주 안에 전화가 오면 채용되신 걸로 아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력서는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일단 갖고 가시고 나중에 다시 가지고 와주세요.”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채용의 꿈을 품었다.
 
  2. 어학원을 다니며 자연스럽게, 교류회를 전전하거나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친구가 되어달라고 사정하기도 하고 해서 일본인 친구들을 하나둘 사귀었다. 운이 좋으면 연락처를 교환한 뒤 밥을 같이 먹거나 놀러갈 약속을 잡기도 했다. 잘 놀고 헤어지면서 내가 그들로부터 항상 듣는 말. “오늘 정말 즐거웠어. 다음에 시간되면 또 불러줘!” 일본인인 그(또는 그녀)가 나와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에 괜히 뿌듯해졌다.
 
  3. 도쿄에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가장 많이 했던 일은 식당일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떠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맛있게 잘 먹었어요. 고맙습니다”라며 인사한 뒤에 나갔다. 이런 말을 손님들에게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가게, 음식 진짜 잘하나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게 전부 다 함정이었다. 일본 생활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내가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일본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선 위의 말들이 가진 속뜻을 알아보면 아래와 같다.
 
1. “저희 가게에선 당신을 쓸 생각이 없어요. 다른 곳을 알아보시는 게 좋겠네요.”
2. “나 오늘 그냥 그랬어(즐겁진 않았어).”
3, “이 가게 음식 그저 그렇군요.”
 
  한국적인 정서에서 생각해본다면 어떻게 이런 속뜻이 나올 수가 있느냐 할 것이다. 하지만 일본사람들은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정반대 상황, 즉 사장님이 내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면, 나와 함께 한 일본인 친구가 정말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느꼈다면, 내가 일한 식당에서 손님이 정말 맛있게 식사를 했다면 그들은 어떤 식으로 대답했을까?

1. “우리 가게에 딱 필요한 사람을 이제 찾았네요. 다음주에 (며칠부터) 나와 줄 수 있어요?”
2, “이제까지 만난 한국인 친구 중에 네가 제일 재미있는 것 같아! 너무너무 즐거웠어! 나 다음주 주말에 시간 비는데 그때 또 만나줄 수 있어?”
3. “제가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었어요! 이 가게에서 식사해서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가게 명함 하나 주시겠어요? 다음달 (며칠에) 예약할 수 있을까요?”
 
  차이점을 알겠는가? 처음 소개한 내용과 비교해볼 때 후자는 말에 칭찬의 표현이 훨씬 더 강하게 드러나면서도 향후 일정까지 구체적으로 정하려 하고 있다. 가게에서 애초에 나를 쓸 생각이 있었다면 이력서를 가지고 돌아가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보낸 시간이 즐거웠다면, 가게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면 일본사람은 그저 즐거웠다느니 고맙다는 식의 형식적인 인사말로 끝내지 않는다. 이게 일반적인 일본사람들의 말하는 방식이다. 사실 일본사람들은 타인 앞에서 그리 솔직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일본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예의를 아주 중요시한다. 때문에 타인이 기분나빠하거나 상처 입을 만한 말은 피하며 최대한 돌려 말한다. 이로써 타인과의 충돌을 최대한 피한다.(그 대신 일본사람들은 뒷담, 속칭 호박씨 까는 일에 익숙하다.) 그들은 상대방, 혹은 상황 자체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대놓고 싫다고 하지 않는다. 반면 상대방이나 상황이 마음에 들 경우 부담스러울 정도로 칭찬을 많이 한다. 따라서 일본사람과 대화할 때는 상대방의 말에 어느 정도 거짓과 과장이 섞여 있음을 감안하는 것이 좋다. 혹시 일본사람이 당신에게 이런저런 듣기 좋은 칭찬을 해주더라도 괜한 기대나 오해를 하지는 말자. 그들은 당신뿐만이 아니라 누구 앞에서나 그런 식으로 말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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