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진피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칠월칠석 축제기간의 센다이. 사진제공 김용한 학생
  2011년 3월 11일, 인구 100만 명의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台)시는 암흑천지가 되었다. 대지진에 이어 밀어닥친 지진해일로 전기, 수도, 가스는 물론 교통 및 각종 서비스까지 기반시설 전체가 불통이 되어버렸다.
 
  센다이의 3월 평균기온은 섭씨 0~5도. 난방이 안 된다면 괴로울 정도로 춥다. 대학생이었던 내 친구 I는 치매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와 함께 자동차 안에서 히터를 틀어놓으며 추위를 견뎠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는 부모님은 고통 받고 있을 노인들을 돕기 위해 출타 중이던 상황이었다. 기름이 다 떨어지자 할머니와 함께 근처 주유소에 기름을 구하러 갔다. 주유소는 기름을 구하러 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맨 앞에 서 있던 사람에게 얼마나 기다렸냐고 물었더니 4시간을 넘게 기다렸다고 했다. 곁에 있던 할머니는 추위 때문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힘들어했다. 어쩔 수 없이 맨 뒤에 줄을 서서 기다려야겠다고 결심한 찰나, 행렬의 앞쪽에 서 있던 아저씨 한 분이 말을 걸었다. “우리 집 앞마당에는 기름이 끝도 없이 나와서 굳이 기다리지 않아도 돼. 아저씬 먼저 집에 갈게. 대신 여기서 서서 기다리렴.” I는 감사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며 사양했다. 그럼에도 그 아저씨는 I에게 억지로 자리를 양보한 다음 발길을 돌렸다. I는 금방 기름을 얻었고 그렇게 자신의 자동차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돌아가던 도중, 주유소 행렬의 거의 맨 뒤에 서 있는, 아까 전 자리를 양보한 아저씨의 모습을 보았다. I는 동생과 자동차 안에 들어가 히터를 틀어놓고 조용히 울었다.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난 2013년 8월 6일, 나는 I를 만나기 위해 센다이로 향했다. 그 무렵 센다이는 칠월칠석(타나바타) 축제기간이었다.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시내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지진피해의 흔적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I에게 방사능 걱정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I는 “당연히 걱정되지. 나라에서 거짓말하고 있는 것도 우린 다 알아. 그래도 여기가 우리 집인걸. 어쩔 수 없잖아?”라고 태연하게 답했다.
 
  내가 일본에 와서 이름, 나이, 국적 다음으로 일본사람들로부터 많이 받은 질문은 3.11 대진재(大震災)에 관한 것이었다. “3.11때 어디 있었어?”, “3.11 때문에 걱정 안 돼?”, “3.11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등등. 틈만 나면 지진이 일어나는 일본이지만 일본사람들에게 3.11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특히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할 거라고 누가 생각이라도 했겠는가? 일본사람들도 그렇고 우리도 3.11하면 가장 먼저 원전문제를 떠올린다.
 
  한국이 일본 바로 옆에 위치한 만큼 우리들은 일본 원전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제 해산물이라면 왠지 모르게 걱정되고 주변에서 누군가 일본으로 간다하면 방사능 문제부터 이야기한다. 나는 지난 추석 연휴기간 오사카에 있었다. 그때 연휴를 맞아 관광 온 한국인들이 ‘삼다수’를 굳이 챙겨와 마시거나 해산물 식사를 꺼려하는 것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렇다면 피해 당사자인 일본사람들은 어떨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방사능 문제에 가장 민감한 이들은 일본인 자신이다. 일본사람에게 방사능 걱정이 안 되냐는 질문을 하면 대답은 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편해한다. 애써 피하기는 하나 그 누구보다도 방사능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이 일본인이다. 뉴스나 신문에서는 굵직하든 짤막하든 후쿠시마 원전 관련 소식을 거의 매일 다루고 있다. 원산지가 ‘국산’이라고 적힌 쌀은 피한다. 안전한 먹거리로 인식된 ‘한국산’ 음식은 인기를 끌고 있다. 후쿠시마현으로의 여행은 되도록 자제한다. ‘후쿠시마 원전이 완벽히 통제되고 있다’는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의 발표를 믿는 일본사람은 거의 없다. 야당과 시민단체에서는 연일 정부와 도쿄전력의 안일한 태도에 대해 성토하고 있다. 불안한 일본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고 방사능 문제로 이웃 나라에 폐를 끼쳐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일본사람도 여럿 있었다.
 
  발전소가 폭발할 때까지 손 놓고 지켜본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일본산 농수산물 수입 관리를 철저히 하여 방사능 오염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안전을 기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 사고가 난 발전소 근처로의 여행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자제해야 한다. 그러나 방사능 문제를 놓고 일본사람들을 무작정 비난하는 일은 지양하자. 일본은 일본사람에게 결코 떠날 수 없는 ‘고향’이다. 그들의 처지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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