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 편의시설이 마련되어있는 버스. 사진제공 강나라 학생
   
  내 취미 중 하나는 지도보기다. 어렸을 적에는 방에 걸린 지도를 틈 날 때마다 들여다봤다. 스마트폰을 갖고부터는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구글맵을 한참 들여다보곤 했다. 특히나 유심히 들여다봤던 나라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미국이다. 미국 지도를 보다가 한국 지도를 보면 유독 그렇게 작아 보일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이 ‘다’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 걸 알고부터 미국 유학을 꿈꿔왔던 것 같다.
 
  내가 본 미국은 생각보다 꽤 대단했다. 비단 이 나라가 강대국이며 선진국이라서가 아니라, 국력에 걸맞는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옆으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다가왔다. 버스에 승차하려면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다. 이내 버스는 도착했고 장애인이 올라타려는 순간 갑자기 계단이 평평하게 바뀌었다. 장애인은 휠체어를 탄 채 손쉽게 버스에 올라탔고 앞쪽에 자리하고 있던 승객들은 모두 일어나 그 장애인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장애인이 안전하게 승차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재촉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그를 향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임산부나 유모차를 끈 이용객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조금이라도 버스에 승차하기 불편한 상황이라면 ‘Help me’를 외치지 않아도 먼저 나서서 그들을 도왔다. 어쩌면 사소해보일지 모르는 배려였지만, 유모차와 함께 대중교통에 탑승하는 것을 가지고 갑론을박을 해야 하는 나라에서 온 학생에겐 그저 놀라움의 연속일 수밖에 없었다.
 
  메모리얼 데이(우리나라의 현충일과 같은 미국의 국경일)나 독립기념일 같은 국경일이 되면 미국의 거의 모든 도시에서 각양각색의 축제가 펼쳐진다. 축제에 참여한 주민들은 성조기 패션을 입고 축제를 즐기기 위해 다운타운으로 모인다. 나는 메모리얼 데이 땐 마이애미에, 독립기념일엔 워싱턴D.C에 있었는데 어느 도시든 그 자체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행렬하는 군인들에게 “USA! USA!”를 외치며 경의를 표하기도 하고 밤이 되면 불꽃축제를 즐기며 그날 행사를 기념하기도 했다.
 
  그날 내가 느꼈던 것은 퍼레이드의 화려함이나 백화점 폭탄세일의 즐거움만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그들의 나라사랑이었다. 성조기 문양의 옷을 입고, 가방에는 성조기를 하나씩 꽂고 그들의 나라이름을 목 놓아 외치던 그들의 모습은 달력에서 빨간 날만 찾던 지난 나를 반성하게 했다. 현충일에 한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태극기 계양률 저조 기사를 보며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리라.
 
  미국 생활 9개월 차. 지금 내가 있는 시애틀은 9월임에도 두툼한 점퍼를 입어야 할 만큼 서늘한 바람이 분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쌀밥과 고추장만 보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유행하는 최신 한국 가요를 섭렵하고 있다. 처음보단 좀 나아졌지만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 영어로 잘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매일 밤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치열한 삶을 사는 꿈을 꾼다.
 
  곧 있으면 한 달에 25일은 비가 온다는 우기가 시작된다는데 그 우기가 끝날 때 쯤이면 1년 전 그랬던 것처럼 짐가방을 챙겨 다시 내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학연수를 왔다고 인생이 달라지진 않는 것 같다. 원어민처럼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여기에서 언어보다 더 많이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미국인들의 삶의 자세다. 사람을 우선으로 여기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과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을 공경하는 마음. 그런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보고 좋은 문화를 배울 수 있다는 게 단순히 영어 공부를 넘어 내가 졸업을 몇 학기나 늦춰서라도 미국으로 온 이유가 아닐까.
 
  오늘따라 구글맵 속의 미국이 조금은 더 커 보인다.
 
지금까지 미국 어학연수를 떠난 강나라 학생의 연재칼럼이었습니다. 다음주부터는 일본에서 워킹홀리데이를 경험하고 있는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볼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