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쿠터 '스캇'과 강나라 학생 
  2013년 2월 16일 밤 10시. 도쿄에서 디트로이트로 향하는 항공기 안에서 난 소리죽여 울고 있었다. 칠흑 같이 어두운 태평양 상공은 마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내 미래 같았고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찰 것만 같던 나의 미국 유학은 그저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2시간쯤 눈물을 훔쳤을까. 주섬주섬 일기장과 펜을 꺼내들었다. ‘내가 내 발로 떠나는 고생길이다. 더 많은 것을 보며 성장하기 위해 선택한 길이다…. 울지 말자. 신나게 쪽팔리고 죽도록 깨지면서 배우자.’ 잠시 뒤, 나는 인생 처음으로 기회의 땅 미국에 발을 디뎠다.
 
  비행기를 한 번 더 갈아타고 마이애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2번의 환승과 20시간의 비행으로 몸이 너덜너덜해진 난 두려움 따윈 느낄 새도 없이 택시를 잡았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마이애미에서의 첫날 전부다.
 
  마이애미의 대중교통 체계는 끔찍했다. 1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 존재 자체를 상상할 수 없는 지하철. 마이애미에서 맞는 첫 일요일, 차로 20분 거리의 성당에 가기 위해 3시간 전에 출발했지만 4시간이 다 되도록 나는 성당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날은 덥고, 버스는 안 오고. 미사는 이미 시작한 지 오래였다. 유심칩을 사지 못해 스마트폰은 무용지물이었고 그 많던 택시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안 보이는지. 그만 길거리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스쿠터를 사야겠다.’
 
  난 많은 학생들이 선택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하지 않았다. 높은 토플 점수를 가진 학생만이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갈 수 있었다. 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어학연수였다. 그런데 웬걸. 여기 와보니 내가 공부하고 싶은 학교에선 토플 점수를 기본적으로 요했다. 한마디로 ‘망했다.’ 몇 번의 고민 끝에 토플 책을 사고 학원에 등록했다. 마이애미에 온 지 1주 만에 아름다운 해변을 만끽할 겨를도 없이 난 토플 공부에 매진했다.
 
  토플책 첫 장을 넘길 무렵 스쿠터를 구매했다. 빠르진 않아도 작고 귀여운 스쿠터였다. 매일 아침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등교하는 기분이란. 처음으로 ‘미국에 오길 잘했다’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몇 명의 외국인 친구도 생겼고 가끔은 학원이 끝나고 사우스 비치에서 일광욕도 즐겼다. 
 
  유일한 문제는 바로 ‘음식’이었다. 한국에선 피자도 잘 먹고 햄버거, 핫도그도 맛있게 먹었던 내가 미국에 온 이후부터는 줄곧 쌀밥만 찾았다. 불행스럽게도 마이애미엔 한국마트가 단 한군데도 없었다. 느끼한 음식에 지쳐있던 어느 날, 인터넷 검색창에 ‘미국 쌀’을 검색해 한국 쌀과 가장 비슷한 쌀을 찾았다. 그리고 학원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에게 고추장과 참기름을 조금 얻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어느 부위인지도 모를 고기와 파로 추정되는 채소를 조금 샀다. 그리고 기름에 볶았다. ‘고추장 불고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고기의 맛을 돋워주는 각종 채소도, 황금비율의 양념도 없었지만 그 고추장 불고기는 참 달고 맛있었던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일들은 결국 내게 큰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대중교통을 피해 산 스쿠터 덕분에 아침마다 상쾌한 바닷바람을 맞을 수 있었고, 한국마트가 없었기 때문에 나만의 훌륭한 고추장 불고기가 탄생했다. 토플 수업에서 실력이 가장 안 좋았던 나는 선생님께 개인 과외를 받은 덕분에 2달 만에 원하는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외로움과 막연함에 매일 밤 눈물을 훔치고, 오뚝이처럼 일어서고, 또 울고, 또 일어서는 나날이 반복됐다. 첫 일주일간 흘린 눈물이 앞으로 흘릴 7년 치 눈물쯤 되려나. 그러나 벽이 있다고 포기하란 법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천천히, 아주 조금씩 미국 생활에 적응해 갔다.
강나라 학생(국제관계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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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에서>는 해외에서 지내는 중앙대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국가별로 3주씩 연재되는 생생한 경험담을 기대해주세요. 첫번째는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난 강나라 학생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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