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캠의 39년 발자취를 찾아서
  • 신혜리 기자
  • 승인 2018.09.2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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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캠 수상무대에서 학생들이 뱃놀이를 즐기고 있다.
안성캠 수상무대에서 학생들이 뱃놀이를 즐기고 있다.
90년대 801관(외국어문학관) 앞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90년대 801관(외국어문학관) 앞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안성시 대덕면에 위치한 안성캠은 넓은 캠퍼스와 쾌적하고 맑은 교육환경을 자랑하며 중앙인에게 ‘안성맞춤’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80년 개교 이후 어느덧 39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성장한 안성캠의 설립 배경부터 통합캠퍼스가 되기까지의 지난 세월을 되짚어봤다.

  1970년대 서울 지역의 인구 집중화로 정부에서는 지방캠퍼스의 건립을 적극 권장했다. 또한 당시 서울캠은 협소한 공간 때문에 특성화 대학을 육성하는 데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에 중앙대는 대학교육정책의 변화를 따르면서 서울캠의 공간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대책으로 분교 건립을 추진했다.

  제2캠퍼스의 후보지로는 이천, 아산, 평택, 안산, 안성 등이 거론됐다. 이후 여러 차례 답사 결과를 검토한 끝에 안성이 최종 선정됐다. 당시 중앙대는 안성캠 건립으로 ▲대학의 균형적인 발전 도모 ▲대학촌 형성 ▲지역 문화 발전 기여 등의 효과를 거두고자 했다.

  1978년 4월 중앙대는 「1979학년도 분교설립 신청서」를 제출하고 같은 해 8월 안성 부지에 표지판을 부착하면서 본격적인 공사에 돌입했다. 문교부는 같은 해 10월 「안성분교설치 계획」을 승인했다. 이후 1980년 건립이 완료되며 ‘안성교사’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안성캠 시대가 개막했다.

  안성교사는 1980년 개교 당시 경영계열 5개 학과와 공학계열 3개 학과에 각 200명씩 총 400명의 학생을 모집했다. 다음해 안성교사는 8개 학과체제에서 외국어대학·사회과학대학·가정대학 체제로 개편됐다. 1982년부터는 서울에 있던 예술대와 농과대를 안성으로 이전하고 공식명칭도 제2캠퍼스로 변경했다. 이후에도 제2캠퍼스는 꾸준히 학과개편과 대학증설을 진행했고 교육시설도 속속 확장됐다.

  그러나 2008년 안성캠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대학본부 측에서 중앙대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글로벌 캠퍼스 부지로 하남이 적절하다고 판단해 안성에 있는 제2캠퍼스를 매각하고 이전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안성시 주민들은 ‘2캠 이전반대 범시민궐기대회’를 열며 안성캠 이전을 반대했다. 2010년에는 인천 검단에 새로운 캠퍼스를 건립한다는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예산문제와 사업성 부족 등의 문제로 신캠퍼스 추진은 난관에 부딪혔고 결국 하남캠과 검단캠 설립은 무산됐다.

  이후 중앙대는 2011년 7월 본교인 서울캠과 분교인 안성캠을 통합해 하나의 학교로 새롭게 출발한다고 밝혔다. 두 캠퍼스가 각각 다른 전공 분야를 둔 하나의 대학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는 국내 대학 중 최초의 본·분교 통합이었다. 안성캠퍼스 발전기획단 관계자는 “학교 발전을 위해 본교와 분교의 구분을 없애 하나의 통합된 중앙대를 만들어가자는 의도였다”고 답했다. 최지영 학생(패션디자인전공 4)은 “두 캠퍼스의 전공을 합친 융합전공이 생기는 등 배우는 과목의 선택권이 넓어져 좋았다”고 말했다.

  오늘날 안성캠은 서울캠과 함께 ‘중앙인의 둥지’로 인정받게 됐다. 안성캠퍼스 발전기획단 관계자는 “각 학문단위를 특성화시키고 해외 학생을 늘려 안성캠을 국제화하는 방향을 추진중이다”며 “내년에 새롭게 생기는 예술공대와 글로벌예술학부가 그 예다”고 답했다. 덧붙여 “지역문화, 산학협력 등과 연결해 캠퍼스를 활성화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안성캠은 오늘도 더 밝은 미래를 향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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