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친구 혹은 동창과의 모임에서 학생들에게 정말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매번 받는다. 비슷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비록 전공과는 관련이 없지만 주저 없이 ‘결과가 어떻든 오랜 세월이 지나도 후회 없는 연애의 당위성’을 가르치고 싶다고 답한다. 대학시절의 연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이자 개인의 실천적 담론이 될 수 있기에 나는 대학생활 동안의 연애를 항상 권장해 왔다. 과연 필자의 이러한 생각은 사치에 불과한 것일까? 언론 매체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은 20대에게 연애는 사치이며 준비되지 않은 이들에게 결혼은 꿈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 들어 언론 매체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신조어는 ‘3포 세대’, ‘7포 세대’, 그리고 ‘N포 세대’라는 용어들이다. 심지어 ‘금수저’와 ‘흙수저’를 소개하며 동일 세대를 가르기도 한다. 모 언론사에서는 미래에 대한 욕심이 없는 일본 청년들을 일컫는 ‘사토리 세대(達觀 世代)’를 ‘달관 세대’라고 친절히 소개하며 우리나라 20대 청년들과의 유사점을 꼽는 칼럼을 게재하기도 했다. 위의 용어들을 소개하고 인용하는 언론사들의 결론을 종합하면 20대 청년들은 ‘사회 프레임’에 맞춰져 ‘포기’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리는 집단이다.
 
 그렇다면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실제로 우리 주변의 20대 청년들과 중앙인은 포기를 먼저 떠올리는지. 모 언론사에서 소개했듯이 20대 청년들이 그들이 놓인 상황에 달관한 나머지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고 있는지를. 적어도 이 글을 읽는 독자 주변에서 그러한 친구들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혹시 언론사들이 지속적으로 포기라는 단어를 노출하면서 청년들이 스스로 포기하는 세대가 되도록 ‘프라이밍(priming)’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포기는 자신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둔다는 의미가 있다. 필자가 강의실에서 함께 공부하고 소통했던 중앙인은 언론사들이 쏟아냈던 ‘포기 세대’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주 명확하다. 포기하기엔 중앙인은 저마다 다양하고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려던 일을 도중에 쉽게 그만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앙인이 가진 목표는 무엇일까? 분명 대기업 취업 혹은 그에 상응하는 높은 연봉은 아닐 것이다.
 
 필자는 중대신문 제1857호에 게재된 ‘노동 주고 시름 받는 청춘의 노동’을 읽고 여러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조직의 한정된 자원으로 성과를 내야 하는 경영학 전공자로서 필자는 대기업 서포터즈 활동이 갖는 당위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물론 열정 페이를 강조한 불합리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외면하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언론사가 비슷한 주제와 논조를 쏟아낸 상황에서 이러한 이슈는 중앙인을 향한 또 다른 프라이밍에 불과할 수 있다. 대기업 서포터즈 활동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주언 교수
경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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