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나고 자란 기자는 고향에 대한 사랑이 남다릅니다. 서울에 둥지를 튼 지 햇수로 3년이 됐지만, 아직도 동대구역으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실을 때면 가슴이 두근거리죠. 가족 모두 대구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할머니네, 고모네, 삼촌네는 지하철 한 정거장 사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습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이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기자를 한없이 든든하게 만들어 줍니다. 가족들이 대구에 있다는 점도 좋지만 대구를 연고로 한 삼성 라이온즈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자 군단의 찬
지난 5월 15일자 중대신문 제2039호는 유독 더 풍부한 주제를 담고 있다. 학생들이 마주한 현실적인 문제와 더불어 사회와 삶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마주해야 할 문제들을 폭넓게 담아놓았다. 우리 주변에서 빠르지만 조용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다양하게 한 신문안에 대비되면서도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전체적인 주제의 구성을 살펴보자. 성소수자에서부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룬 전시 ,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자본주의와 중앙대의 흔들리는 기초학문, 미래를 향한 연구소와 옛 시절의 서울캠퍼스 사진. 오늘을
로봇 저널리즘에 더해 생성형 AI가 기사를 쓰는 시대에 중대신문의 제2039호는 인간 기자의 존재 이유를 잘 보여주었다.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들에게 귀 기울이는 것은 어느 시대이고 인간이 잘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먼저 171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소수자 인식 조사 결과가 의미 있게 다가왔다. ‘나의’ 커밍아웃을 친구나 가족이 받아들일 것이라는 데 긍정적으로 응답한 학생은 20% 미만이었던 반면 ‘내가’ 그들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한 응답자는 70%에 가까웠다는 사실이다
21세기의 기술혁명을 대변하는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가 등장한 지 수년이 지나고 이제는 우리의 일상에 친숙한 용어로 자리잡았다. 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을 통한 ‘초지능’, ‘초연결성’의 특성을 가진 제2의 정보화 혁명으로 인간과 인간, 사물과 사물, 인간과 사물이 상호 연결되고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으로 대표되는 지식화 사회로의 변화를 말한다. 현재 우리 앞에 놓여 있는 4차 산업혁명은 이전의 기술혁신보다 더 큰 변화가 예상된다. 수십 년 내에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중대신문 ‘강단사색’ 코너의 원고 요청을 받고 컴퓨터 앞에 앉으니 주마등처럼 교수로 발령받았던 먼 과거로 내 기억이 되돌아간다. 교수로 생활하면서 이런저런 기쁜 기억과 슬픈 기억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통해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몇 자 적는다. 교수가 되고 나서 처음 1학년 지도교수를 맡게 되었다. 어느 날 지도학생 한 명이 갑작스레 진입하는 지하철에 부딪혀 생을 마감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지금도 미스테리하지만 사고라고 생각하고 너무나 큰 충격으로 울면서 뛰어간
열세 살의 겨울, 바다와 산이 있는 여수의 작은 마을에 살았던 저는 가족들과 함께 광주로 이사를 오게 됐습니다. 도시에 상경한 시골 쥐처럼 고향에선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풍경들에 눈이 번쩍 뜨이기도 했지만, 이 낯섦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곧장 친구들과 아파트 뒷산으로 향했던 시골 쥐의 발걸음은 이젠 학원으로 향했고 까끌까끌 흙이 묻어나던 손엔 매끈한 펜이 쥐어졌죠. 제대로 해본 적 없는 공부부터 어딘가 모르게 세련돼 보이는 사람들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던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위를 많이 타게 되면 자연스레
제목 그대로 마지막 칼럼이다. 정기자 시절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36번의 발행도 곧 끝난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기자라는 직업이 멋져서, 같은 꿈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다양한 이유가 떠다니던 와중 “중대신문 지원해 봐”라고 말한 한 친구 덕분에(?) 여기까지 와버렸다. 중대신문에서 차장쯤 된 사람들은 으레 “임기만료하면 이쪽으론 쳐다도 안 볼 것이다”, “오줌도 신문사 방향으론 안 싼다” 같은 말을 하곤 한다. 나름의 애증이 담긴 말이다. 지
2023년,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발표한 대한민국의 언론자유지수는 지난해보다 4계단이나 하락한 47위를 기록했다. 대한민국의 언론 자유는 과거에서 되려 퇴보한 것이다. 지난 8일 대구광역시 공보관은 출입 기자들에게 한 장의 공문을 보냈다. 대구MBC에게 더 이상의 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대구시는 대구경북신공항에 대한 MBC의 왜곡·편파 보도가 취재 거부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해당 보도는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이 지닌 한계와 대구경북신공항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과제를 짚었다. 편향적인 보도로 보기 어
4일 서울특별시(서울시)는 서울퀴어문화축제(퀴어축제)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코로나19 확산 시기를 제외하면 처음 있는 일이다. 다수의 시민은 서울시의 결정을 두둔하며 성소수자와 퀴어축제에 대한 혐오를 거침없이 발화했다.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정신병자’,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릴 때’와 같은 혐오 발언이 낭자했다. 사회심리학자 고든 올포트에 따르면 편견은 잘못된 일반화와 근거 없는 적개심에서 비롯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차별과 혐오로 비화해 끝없이 이어진다. 혐오주의자들은 성소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걸그룹 뉴진스의 노래 뮤비를 보셨나요? 노래 자체도 화제지만 그중 옛날 캠코더로 찍은 듯한 영상이 화제입니다. 이처럼 최근 우리는 레트로함에 푹 빠져있습니다. 이는 음악계에 국한되는 현상이 아닙니다. 최근 패션계에선 ‘Y2K’라는 키워드와 함께 2000년대 초반, 레트로한 모습을 본뜬 옷과 액세서리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진 업계에서도 최근 필름이 부활하고 있습니다. 필름 카메라 전문 사진사도 생겨나고, 필름 값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매우 비싸지고 있습니다. 필
필자는 현재 건대신문 편집국장으로서 우리 신문에 대한 고민을 몇 가지고 있다. 레이아웃을 어떻게 디자인하면 좋을지, 보도의 심층성을 어떻게 더 확보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더 읽히는 신문을 만들 수 있을지 같은 것들이다. 이번 ‘중대신문을 보고’ 기고를 맡아 받아본 중대신문 제2038호는 신문 편집에 대한 필자의 고민 속 귀감이 될 신문이었다. 기본을 훌륭히 지키는 신문은 빛난다. 3면까지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전체적으로 정돈된 종합면의 레이아웃과 아이템 선정이 모든 종합면 기사
기고를 위해 신문을 펼쳤을 때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지면이 수많은 토론과 조정의 언어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대표적으로 비건 학식을 다루는 기사가 그렇다. 해당 기사에는 무언가 필요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의 방향성이 섬세하게 적혀 있었다. 여기에서 확실히 하고 가야 할 지점이 있다면, 내 놀람의 주체는 다만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같은 학생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그 움직임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리라.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타인에 대한 앎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리라.
챗GPT(ChatGPT), Bard와 같은 대화형 인공지능(AI)이 우리의 삶에 깊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같은 인공지능은 지금과는 또 다른 차원의 정보를 제공한다고 하니 교육의 기본가치가 흔들리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GPT-5와 같은 초거대 모델로 확장되고 양자컴퓨터까지 보편화되면 인공지능의 존재는 현재 우리가 예측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상상 불가의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한다. 내가 대학 교육을 받던 게 대략 30년 전인데, 40~50대가 되면 나는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곤 했다. 그리고 단
중대신문에서 정기자가 된 후 첫 취재를 나가던 순간이 생생합니다. 꿈에 그리던 학생 기자가 됐다는 생각에 마냥 행복했습니다. 정기자는 화요일마다 취재원에게 전화로 취재 요청을 드리는데요. 취재원에게 당차게 전화 걸어 인터뷰 요청을 드리고, 지나가는 학생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가 즐겁게 인터뷰를 했죠. 떨리기는 했지만 기분좋은 설렘으 로 다가왔었습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제게 기자라는 직업은 안성맞춤 같았죠. 그런데 이 모든 생각을 송두리째 앗아간 사건이 생겼습니다. 취재 도중 아주 큰 좌절 을 맛봤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취
정부는 지난 1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관련 특별법안의 수정안을 제시했다. 수정안은 퇴거한 임차인이어도 등기를 마친 경우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으며 보증금 요건도 최대 4억5000만원까지 확장했다. 피해자 구제를 위해 범위를 확대한 점은 다행이지만 여전히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살던 집의 우선매수권, 세금 감면 등의 지원을 받으려면 피해자로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수정안에 따르면 과정이 녹록지 않다. 피해자로 인정 받으려면 전세사기에 대한 고의성이 의심되는 사례로서 수사 개시, 임대인의 기망, 동시진행 등의 사유가 있어야
지난 4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사 처우 개선과 지역사회 간호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간호법 제정안이 통과됐다. 이후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13개 의료계 직역 단체가 연합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 제정안 에 반대하며 파업에 나섰다. 이들이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간호법을 통해 간호사가 병원 밖 ‘지역사회’로 영역을 넓혀 각 직역의 업무 영역을 침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대한의사협회는 간호법으로 인해 간호사가 독자적으로 개원할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해당 논리는 비약이 크다.
요즘 수업을 듣고 있다. 마음에 남는 것이 있다면 그런 말들이다. 이제는 전 세계 누구나 인권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왜 현실에선 이토록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또 다른 수업에서는 “내 평생 큰길로 한 번 못 다니고···”라던 강제동원 피해당사자 할머니의 말이 마음을 콕콕 찔러온다. ‘언어가 그 삶을 다 담을 수가 없다’는 말이 귓가에 선명하다. 장애인인권위원회 폐지 문제와 ‘인권복지위원회 체제개편안’이 메인 기사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이면서도 강력하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욕망은 인간 본성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는바, 이는 경제적 풍요의 동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물질에 대한 무절제한 욕망은 과소비와 사치의 조장을 통해 사회를 병들게 한다. ‘물질적 부를 중시하지 말라’는 소크라테스의 절규를무시했던 아테네는 곧 멸망했고 로마 또한 위대한 제국 건설의 토대가 된 근검을 망각하며 무너져 내렸다. 우리 사회의 물질 만능 풍조는 매우 위험한 수준이다. 몇 달 전 한 매체를 통해 프랑스의 명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