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의 겨울, 바다와 산이 있는 여수의 작은 마을에 살았던 저는 가족들과 함께 광주로 이사를 오게 됐습니다. 도시에 상경한 시골 쥐처럼 고향에선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풍경들에 눈이 번쩍 뜨이기도 했지만, 이 낯섦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곧장 친구들과 아파트 뒷산으로 향했던 시골 쥐의 발걸음은 이젠 학원으로 향했고 까끌까끌 흙이 묻어나던 손엔 매끈한 펜이 쥐어졌죠. 제대로 해본 적 없는 공부부터 어딘가 모르게 세련돼 보이는 사람들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던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위를 많이 타게 되면 자연스레 봄(春)을 생각(思)하게 되는 것은 ‘사춘기’의 법칙입니다. 그 때문이었을까요. 당시 방영된 <응답하라 1988>을 통해 바라본 ‘과거’는 제가 생각했던 ‘봄’이었습니다. 고화질의 화면으로 빛바랜 그 시절을 처음 보았을 때 느낀 따뜻함과 왠지 모를 그리움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택이 방에 모여 잡탕 라면을 끓여 먹는 친구들, 첫사랑의 풋풋함을 꾹꾹 눌러 담은 쪽지와 필름 카메라 사진 한 장과 같은 레트로의 미학은 저의 과거를 넘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까지 그리워하게 만들었죠. 

  대중들이 레트로를 찾는 데에도 비슷한 이유가 서려 있지 않을까요. <응답하라> 시리즈와 <스물다섯 스물하나>, 포켓몬 빵, 복고풍 아이돌의 등장까지. 레트로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을 넘어 “그때가 좋았지”에서 ‘그때’라는 이상의 세계로까지 의미를 넓혀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면엔 낭만 따위 없는 팍팍한 현실이라는 뻔한 원인이 자리하죠. 레트로의 풍조를 마냥 훈훈한 눈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과거를 통해서만 유토피아를 사유하는 문화가 더 짙어지기 전에, 한 마디 남기고 싶습니다. 추억은 과거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을요. ‘그때’라는 과거에 매몰돼 앞으로 만들어 갈 유토피아를 외면해 버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과거를 동경하듯, 우리의 현재도 언젠간 분명 누군가가 희구할 레트로가 될 것입니다. 레트로를 그렇게 갈망하던 저조차도, 심지어 그 갈망이 절정을 찍던 순간에서조차도 소중한 순간들은 늘 함께해왔죠. 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북에서 나눈 풋풋한 대화들, 뻣뻣한 몸으로 장기 자랑 무대에 올라 2세대부터 4세대 아이돌의 흐름을 몽땅 담아냈던 순간들. 스물한 살이 된 지금의 눈에도 충분히 아련한 추억의 섬광들이었습니다. 

  쌍팔년도를 그리워하는 어른들, 세기 초를 그리워하는 지금의 우리. 또 20년 후의 우리는 지금을 그리워하고 있겠죠.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어른 제국의 역습>에서 향수가 이끄는 유혹에도 끝내 현재를 택한 짱구 아빠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듯합니다.  

  “응답하세요. ‘지금 당신의’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김지우 문화부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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