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의 탄소발자국대학도 탄소중립은 예외가 아니다19년에 비해 22년 전기 사용량⟰대학평가요소인 지속가능성학교 차원 노력과 학생 동참 필요대학이 에너지다소비건물에 속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여러 건물과 사람들로 구성된 중앙대 캠퍼스는 지금도 탄소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지난 학기 중대신문은 총장과의 특별 인터뷰를 통해 탄소중립 조기실현을 목표로 하는 중앙대의 포부를 들어봤는데요. 전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 속 중앙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봤습니다. 진수민 기자 susky@cauon.net중
국제사회는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이라는 범세계적 공통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중앙대가걸어온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탄소중립을 위한 중앙대의 첫걸음 ‘2030 탄소중립 ESG 공유 포럼’은 중앙대와 두산그룹, 한국수력원자력 등 40여개 기관의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발족했다. 탄소중립을 조기에 실현하고 국내·외 산업의 탄소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힘을 합친 것이다. 2021년 8월 발족식 및 1차 포럼을 시작으로 지난해 8월까지 총 4회의 포럼을 개최했다. 박세현
에드거 앨런 포우의 단편 중에 『소용돌이』는 자연재해에서도 살아남는 인간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노르웨이의 거대한 바닷가 소용돌이에 휘말린 어느 어부가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 정신을 차리고 요동치는 사물들을 바라봅니다. 어떤 물건들이 소용돌이를 따라 돌지만 휩쓸려가지 않는지 말이지요. 그 순간 그 어부는 배에 있던 물통에 몸을 동여매고 바닷속으로 뛰어듭니다. 결국 죽음을 앞둔 순간에 원과 구 모양의 사물들이 부력이 크다는 것을 감지하고 혼자서 살아난 것입니다. 3년 전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는 칠흑 같은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고
안녕하십니까. 박상규 총장입니다. ‘대학신문의 효시’로 기나긴 시간 동안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대학 언론계를 선도해 온 중대신문의 7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1947년 최초의 대학 신문으로 우리와 함께해 온 중대신문은 그간 우리 대학의 동반자 역할을 톡톡히 해 왔습니다. 때로는 기쁨을 때로는 슬픔을 함께 나누는가 하면, 다양한 학내 소식과 사안을 깊이 있게 취재함으로써 우리 대학에 대한 관심을 환기 시키고 올바른 대학문화가 자리 잡는 데 크게 일조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날카로운 펜을 기반으로 심층 기획 기사
고민이 깊었습니다. 코로나19는 약 3년이란 세월이 무색하게 여전히 활개 치고 있는데요. 학교에 사람이 없으니 학내 언론을 향한 관심도도 자연스레 하락했죠. 지겨우리만큼 많이 언급된 종이신문과 대학 언론의 위기를 체감했습니다. 삐끗하면 나태해지기 쉬운, 발로 뛰기보다 앉아서 전화기만 쳐다보게 만드는 외부 환경은 요행을 부리기 딱 좋았습니다. 때마침 학보사를 기관지로 착각하며 들어오는 취재 요청, 인터뷰에 불성실한 취재원, 중대신문이 대체 어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겠냐 말했던 누군가, 본인의 의견을 말하는 일에 무관심한 일부 학생
국내 최초의 대학신문인 우리 중앙대 중대신문의 창간 75주년을 28만 동문과 더불어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중대신문은 모교 설립자이신 승당 임영신 박사의 혜안에 따라 1947년 9월 1일 대학신문 사상 최초로 ‘중대학보’라는 이름으로 창간되어 그 본연의 사명을 다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중대신문의 오늘이 있기까지 대학신문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이끌어 오신 중대신문 동문 여러분의 노고와 열정에 경의를 표하며, 빛나는 전통을 이어 앞으로도 희망찬 100년의 역사를 새로 써 나가길 기대합니다. 중대신문은 지난
어느덧 일흔다섯이네요. 두 팔을 활짝 펼쳐야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잿빛 종이는 어디 갔나요. 두 손에 매일 머물던 잉크 냄새도 이젠 맡기 어렵네요. 늘 갑갑궁금했습니다. 당신이 중대신문을 여전히 눈여겨보시는지. 시대의 와류가 몰아세운 대학 언론의 가치는 무엇인지. 지난한 물음의 끄트머리엔 변화해야 한다는 각성만이 남았습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코로나19라는 이름의 전염병이 당신과 거리두기를 강요할 때조차도 우린 당신의 목소리를 사수하고자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당신이 멀리하는 외침은 메아리 없이 공허한 줄 똑똑히 압니다. 교정을 넘
중대신문이 어떤 곳인지,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궁금증을 풀어드리기 위해 제작했습니다. 중대신문 기자들의 생생한 일주일을 영상에 담아봤는데요. 이번에는 2부입니다.기획 및 제작 | 지선향 기자
중대신문이 어떤 곳인지,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궁금증을 풀어드리기 위해 제작했습니다. 중대신문 기자들의 생생한 일주일을 영상에 담아봤는데요. 짧은 시간에 모두 담기 어려워 1부, 2부로 나눴습니다.기획 및 제작 | 지선향 기자촬영 | 지선향 기자 이혜정 기자 윤서영 기자 박환희 기자 김수현 기자
현재 한국 사회를 뜨거운 논쟁의 장으로 만들고 있는 사회 이슈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젠더’만큼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사회 이슈는 없을 것입니다. 특히 젠더 문제는 지역, 세대 갈등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사회적 갈등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으며, 사회적 갈등의 주류로 진화해 나가는 추세인데요. 이런 사회 현상 속에서 중대신문은 젠더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취재했을까요? 젠더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동성애, 여성 혐오, 성폭력 등 다양한 젠더 문제를 다룬 기사를 들여다봤습니다. 장민창 기자 jmc17061@cauon.
‘지워진 자리에도 사람과 사랑이 있다’라는 기사는 ‘퀴어 작품’ 등으로 평가받는 영상 매체 작품이 다양성에 대한 상상력을 차단하고 혐오를 재생산한다는 점을 폭로합니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예리하게 통찰해 학생사회에 유의미한 질문을 던졌다는 점에서 대학언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생각합니다. ‘95.5% 한국 사회 젠더 갈등 심각하다’라는 기사는 분명 아쉬운 점이 존재합니다. 해당 기사는 가시화된 사회현상을 학우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정
최초의 대학신문, 최고의 대학신문인 중대신문의 제2000호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중대신문은 중앙대 자랑이자 대학언론의 모범으로 지난 시간을 걸어왔습니다. 학교의 현안을 직시할 뿐 아니라 문화·사회·지역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언론기구로서 올바른 시각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귀사의 모습에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중대신문의 나날은 도전정신으로 가득 찬 것이었습니다. 1947년 라는 제호를 달고 첫 숨을 토해낸 이래 순한글판 가로쓰기 편집체제 도입, 주 2회 발행, 인터넷신문 개설과
좋은 글을 쓴다는 것. 제가 대학신문의 기자 활동을 하며 항상 했던 고민이었습니다. 사실 학보사 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항상 기사를 썼지만, 기성 언론 기자처럼 뛰어난 글쓰기 능력도 전문지식도 갖고 있지 않은 저로서는 기사 하나하나가 늘 도전이고 과제였습니다. 중대신문의 기사들은 그런 저에게 많은 귀감이 되었고 도움을 주었습니다. 중대신문은 매우 다채롭습니다. 대학면부터 문화, 사회, 여론 등 다양한 부문의 기사들을 전달해서인 것도 맞지만, 중대신문의 기사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사회이슈에 대해서
대학신문의 효시, 중대신문의 제2000호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또 이처럼 뜻깊은 순간에 축사를 남길 수 있어 대단히 영광입니다. UBS에 몸담고 2년이 넘도록, 내내 꺼지지 않던 중대신문의 불빛을 봐왔습니다. 1947년 창간 이래로 제2000호를 발간하기까지 중대신문의 찬란한 역사는 그 꺼지지 않던 불빛과 그 아래 기자, 편집자, 이외 모든 분의 노고로 쌓아온 것이겠지요. 매주 학우들에게 필요한 기사를 기획하고 전달하며 학내 언론의 힘을 보여주신 기자님들께 이번 기회를 통해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싶습니다. 지속되는 코로나19로 대학
가을 하늘이 청명하니 학생들이 더 그리운 10월 초입입니다. 학생들을 비롯해 교직원 선생님들과 함께 대학신문의 효시인 중대신문 제2000호를 열렬히 축하합니다. 코로나19 상황에도 기자들은 밤샘하며 다양한 뉴스와 정보, 이야기들을 전해주었습니다. 원격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종이신문을 대신해 온라인 신문 (news.cauon.net)을 이용하며 매번 관심과 격려를 전합니다. 다양한 독자들의 애정은 기자들의 노고를 푸는 청량제이지만, 동시에 따끔한 지적도 기자들의 성장통을 치유하는 쓴 약입니다. 중대신문의 자랑은 194
며칠 전 휴일 아침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고 흑석동 모교를 방문했습니다. 캠퍼스엔 새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다소 낯설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찾은 모교는 고향처럼 푸근했습니다. 가장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중앙헤럴드 사무실이었습니다. 지금은 학술정보팀 간판이 걸려있는 이곳에서 제 대학 생활의 7할 이상을 보냈습니다. 당연히 여러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특히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던 중대신문과의 에피소드가 새록새록 돋아났습니다. 하루에도 수십번 그 문을 드나들면서 임형섭, 금장환, 김정태 등 중대신문 동기들
나의 고만고만한 경력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빛나는 성취는 중대신문 기자를 지낸 것입니다. 1980년 33기로 중대신문 수습기자에 합격했습니다. 하고 싶다는 열망과 간절한 소망으로 시작한 학생 기자를 잘 해내고 싶었습니다. 무엇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처음은 서툴기만 했습니다. 서투름은 시간을 배로 들여 보완해 나가면서 수습 딱지를 떼고 신문에 이름이 걸린 기사를 낼 수 있었습니다. 첫 기사가 나간 그 날의 뜨거운 울림은 아직도 한번 더 느끼고 싶은 열정입니다. 중대신문에서 처음 경험한 열정은 그 후로도 내게 알 수 없는 힘을 불어넣어 많은
안녕하십니까. 박상규 총장입니다. ‘대학신문의 효시’로 대학언론을 늘 앞장서 이끌어 온 선구자이자 선도자인 중대신문의 지령 제2000호 발행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1947년 최초의 대학신문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은 중대신문은 올해로 74년째 중앙대와 함께 호흡하며 중앙대 구성원들의 곁을 항상 든든히 지켜 왔습니다. 다양한 학내 사안들을 심층 취재하며 올바른 대학문화를 창출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기획과 날카로운 분석이 담긴 기사들을 통해 중앙대가 나아가야 할 길을 밝게 비춰주기도 했습니다. 한결같고 꾸준한 활동을
대학신문의 효시, 중대신문이 올해 영광의 제2000호를 맞이했습니다. 2000번의 발행. 그 안에는 ‘2000’이라는 숫자로 다 표현 못 할 만큼 수많은 사람이 함께했고 그들을 지나오며 현재의 중대신문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탄생 후 지금까지 전쟁과 민주화, 4차 산업혁명, 코로나19 등 여러 사회적 변동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격동 속 선배 기자들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러 위기상황에서도 정론직필 정신을 이어간 선배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후배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더욱 열심히 취재하며
1947년 9월 1일, 중대신문은 국내 최초로 대학신문으로서 첫 펜을 들었습니다. 첫 펜을 든지 어언 74년이 흘러 지령 2000호 발행을 맞았습니다. 제2000호 발행이라는 역사적 순간에 중대신문을 되돌아보고, 동료 기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 대학언론의 미래를 고민할 수 있음에 영광입니다. ‘정론직필’이라는 기조 아래, 중대신문이 중앙대를 대표하는 언론을 넘어 최고의 대학언론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제2000호에 이르기까지 편집국의 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학업을 병행하며 열과 성을 다해 지혜를 신문에 풀어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