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일흔다섯이네요. 두 팔을 활짝 펼쳐야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잿빛 종이는 어디 갔나요. 두 손에 매일 머물던 잉크 냄새도 이젠 맡기 어렵네요. 늘 갑갑궁금했습니다. 당신이 중대신문을 여전히 눈여겨보시는지. 시대의 와류가 몰아세운 대학 언론의 가치는 무엇인지. 지난한 물음의 끄트머리엔 변화해야 한다는 각성만이 남았습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코로나19라는 이름의 전염병이 당신과 거리두기를 강요할 때조차도 우린 당신의 목소리를 사수하고자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당신이 멀리하는 외침은 메아리 없이 공허한 줄 똑똑히 압니다. 교정을 넘어 당신 곁에 이르고자 미디어의 경계를 부지런히 넘나든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당신은 의문하셨습니다. 손바닥만 한 직사각형에 담긴 뉴스 조각이 과연 중대신문인지를요. 우리를 담는 그릇이 무엇인지 되짚기보다는 본질을 아로새기는 것, 그것이 당신께 드리는 답문입니다. 당신이 바라보는 대학과 사회를 함께 직시하고 가감 없이 담는 것이 바로 그 본질이겠죠. 이 편지를 잿빛 종이에 담아 보시든 손가락을 훑어내려 보시든 우리의 고민을 함께 해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건넵니다.

  허심탄회하게 고백하자면, 그릇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호언장담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단출한 인원과 공사다망한 학생이라는 본분은 어김없이 도전을 훼방했고 당신은 우리의 변신에 도드라진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으니까요. 당신의 발길과 엄지를 잡아끄는 스낵이 한둘이 아님을 알기에 원망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일흔다섯 세월을 간직한 노인은 여전히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궁금합니다. 당신이 무엇에 미소하고 눈물짓고 노여워하는지. 아직도 당신은 수수께끼와 같아서 우린 끊임없이 당신께 가까이 다가서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감히 부르짖는 혁신도 당신께 한 걸음 더 내딛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주시점이 때론 당신의 견해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압니다. 또 다른 당신의 생각과는 부합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수긍합니다. 하지만 우린 언제나 균형 있게 귀 기울이고 치열하게 고민할 겁니다. 한 해도 쉬이 보내지 않은 지난 세월이 무색하지 않도록.

  마침내 당신을 더욱 가까이 대면하게 됐네요. 쓸쓸했던 교정은 비로소 당신으로 북적이기 시작합니다. 살갗을 맞대고 학업 하는 설렘이 탈 없이 이어지길 소망하며 당신께 이 편지를 부칩니다. 

최지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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