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신문은 1947년 창간 이후 70여 년간 중앙대학교의 역사를 기록해왔다. 학내외의 다양한 정보를 축적하며 중앙인의 교양전문지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지난 호를 분석해보고 열독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지난 호를 보면, 무기명을 포함하여 기사에 이름이 인용되거나, 인터뷰하거나, 칼럼 필진으로 참여한 사람이 80명 내외이다. 1면당 약 6.6명이 등장한 셈이다. 등장인물 즉 참여자를 더 늘릴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5면의 간추린 뉴스는 안내, 수상, 행사로 구분하여 한 꼭지씩을 다뤘지만 각각 두 꼭지 이상도 가능하다
필자는 오랫동안 중대신문의 독자였다. 학부, 석사, 박사 그리고 교수의 신분에 이르기까지 중대신문과 함께한 세월의 깊이가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 필자에게 기회가 주어졌으니 중대신문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중대신문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중대신문이 단순한 학보(學報)가 아닌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수 혹은 학생과 학교 당국 간의 진정한 소통의 역할을 자임하는 신문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중대신문이 이런 점을 경시했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충분히 잘해왔지만, 민감한 학내문제에 대해 좀
학기의 시작을 알리는 중대신문의 첫 헤드라인이 그리 밝지는 않다. 하지만 장인위 관련 기사와 총학생회장의 인터뷰가 대비되며 독자들이 ‘알아야 하는’ 내용이 적절히 배치됐다. 앳백 사태 현황과 각 총학생회의 공약 이행 점검 등 독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주제 역시 기사화됐다. 제1949호를 읽기 전 지난 1일 총학생회 SNS에 게시된 공약 이행 카드 뉴스를 먼저 접했다. 알파의 장애 인권 보장 공약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축제 무대 공연의 배리어프리존 도입 및 2학기 중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힘을 두려워할 줄 모르면 ‘괴물’이 된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공인'일수록 작은 실수 하나도 큰 파장을 일으켜 많은 사람에게 상처와 피해를 줄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언론에 종사하는 기자가 기사의 진실성과 파급력에 조심스러움과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면 그 또한 능히 괴물이 될 수 있다. 중대신문 제1949호 박진용 기자의 칼럼에서 “너는 기자야 학생이야?”라는 가시 돋친 질문에 섞인 위계적인 태도에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떳떳함
‘갓 나온 종이 신문, 곧장 계란판 된다.’ 몇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지난 6월 KBS 교양 프로그램이 다루면서 다들 알게 됐습니다. 이 정도면 신문사가 아니라 계란판 원료 공장이 아니냐는 비소가 여기저기서 나왔죠. 이 코너에서 이렇게 답 없는 이야기라니. 신문을 읽고 이 기획은 좋았다, 이 기사는 별로였다 정도 써도 될 일을 크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 학기 중대신문은 큰 틀에서 좋았습니다. 개강호 ‘중앙대 근처 자취방 불법 실태’나 제1945호 ‘장애학생 이동권 문제&rsqu
‘속공보다는 지공’ 중대신문 제1948호를 읽고 떠오른 한 마디다. 전반적으로 긴 호흡의 취재를 거쳐 풀어낸 기자들의 통찰이 빛나는 호였다. 속도전에 매몰되지 않는 보도가 인상적이었다. 보도기획과 ‘생각의자’ 등 1면 이상을 할애한 긴 분량의 기획 기사들과 후속 기사 등이 중대신문의 방향성을 명확히 보여줬다. 속도보다는 깊이를 더하는 전략을 택한 중대신문의 과감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보도기획은 주제 선정과 구성이 좋았다. 학점 평가방식은 학생 독자가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다. 그
지난 4월에 이어 한 번 더 기고를 보낼 기회를 얻게 되어 내심 행복했다. 한 명의 편집장으로서 닮고 싶은 신문에 글을 싣는 것이 충분히 흥분되는 일이기 때문이겠다. 기쁜 마음으로 제1947호 중대신문을 끝까지 정독하고 나니 1면을 장악한 축제를 즐기는 학우들 사진이 가장 깊게 뇌리에 남았다. 멈춰있는 사진임에도 학우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또한 1면의 반 이상을 ‘한 장의 사진’으로만 채운 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평소 필자는 신문을 제작하는 데 있어 사진보다는 글의 중요도를 높게 책정했다. 그랬기에
지난 1947년 창간된 대학신문의 효시, 중대신문의 제1947호는 멋을 안다는 인상이 마음 속에 강하게 남게 해주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 “놀 땐 놀고, 공부할 땐 공부하는 사람이 멋있는 사람이다”라는 말씀을 들으며 자랐다. 진중한 면과 유쾌한 면을 모두 가지며 적절히 때를 가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 멋을 아는 사람이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이셨다. 이번 중대신문 제1947호는 그런 멋을 아는 사람들의 전형을 보여준 듯하다. 학내 문제의식을 불러 일으키는 무겁고 진중한 사안들을 전하다가도
사실 같은 학보사 기자로서 나는 항상 ‘중대신문’을 본다. 도전적인 보도와 기획,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디자인은 배울 점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같은 학보사 기자의 말이 얼마나 유익할지를 알기에 이번에도 이들의 신문에서 배울 점과 동시에 아쉬운 점을 아주 솔직히 얘기해보겠다. 누군가는 학교신문의 독자는 오직 학생들이라고 말했다. 다른 이들이 아닌 오직 학생들을 위한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런 점에서 중대신문은 이번 호에서 아주 훌륭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1면부터 4면까지 학우들이 궁금하고 그
올해 공주대신문이 61년 만에 판형을 비롯해 모든 걸 바꿨다. 관습처럼 내려온 타성을 벗기 위해 많은 품을 들였다. 수많은 종합 일간지와 대학 신문을 참고하며 특히 눈여긴 것은 중대신문이었다. 뛰어난 대학 신문이 여럿 있지만 완성도와 치밀함에서 고민 없이 중대신문을 첫째로 고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종종 수습기자들에게 중대신문을 일컬으며 본의 아닌 비교를 하게 된다. 제1946호는 민감한 기사가 많았다. 총학생회의 FOC 중단 결정, 교육부의 연구윤리 특별감사 등은 지면에서 다루기 껄끄러운 주제다. 대학 신문은 학교의 공(功)을 누
제1945호에는 학교의 내부 및 외부에 켜지는 경고등과 같은 다수의 기사가 실렸다. 먼저 언론에 보도되고 학내외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던 A학생 난동 사건에 대한 기사가 1면에 게재됐다. 다수에게 위협이 되는 사건 발생을 향후 방지하기 위한 학교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법적 차원만을 고려하는 것으로는 부족해 보이며 학교 구성원은 물론 지역 주민의 안전이 우선적으로 해결되기를 희망해 본다. 이런 과정에서도 강의 담당 교수님이 학생에 대한 처벌 및 고소는 원하지 않는다는 따뜻한 말씀은 스승의 날을 맞이해 아직 많은 훌륭한
제1945호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기사는 10면의 문화수첩 ‘화면 넘어 현실을 품어 봐요’였다. ‘The Color Factory’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 또한 인상적이었다. SNS 업로드 목적의 많은 행위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아닌 온라인 플랫폼에서 소통하던 사람들을 현실공간으로 이동하게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한 점이 새로웠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 종종 주객이 전도된 상황을 실감하게 된다. 카페에 갔는데 음식이 너무 예뻐 사진을 찍고 올리는 것이 아니라, 예쁜 음식사진을 올리기 위한
제1944호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기사는 기획면의 ‘개 수혈용 혈액의 이면-그 개가 살아가는 이유’ 기획이었다. 개들의 생명이 긴급한 상황에서 수혈량을 맞추기 위해 공혈견들이 안전한 법망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기사 내용에 독자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생각의자’의 기획 관련 기사로 ‘의자에 앉아보며’, ‘의자에서 생각하며’, ‘의자를 박차며’ 등도 가독성이 높아 칭찬할만한 기사로 보인다. 신문에서 인터뷰 기사
최근 중대신문에 유독 많이 쓰인 종류의 기사가 있다. 바로 연예인 인터뷰 기사다. 연예인 인터뷰는 늘 1면에도 작게나마 공간을 차지했고, 온라인 홈페이지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상단에 위치했다. 검색해보니 그전에도 종종 연예인 인터뷰가 있었지만 한 학기에 한 번꼴로, 이 정도로 빈번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2018년 11월 고아라 인터뷰 이후 은 (강아람 기상캐스터 제외) 전부 연예인이었다. 이 무렵부터 해당 코너에 아예 연예인 인터뷰만을 싣기로 작정한 것 같다. 중대신문이 연예인 인터뷰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중대신문 제1943호는 시험기간을 앞두고 발행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4면에 실린 족보와 강의 녹음본을 공유하는 행위에 대한 기사는 실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기에 학우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여러 학우들의 의견을 담고 있어서 중립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카톡 형식으로 직접 거래가 이루어진 것을 표현한 부분은 시각적 강조 효과를 주었다. 또한 거래의 실태를 파헤치는 것을 넘어서 4가지의 대응방안까지 제언한 부분은 인상 깊었다. 단순한 정보전달 뿐만 아
기사 한 줄을 위해 수많은 피드백 과정을 거치는 학생 기자에게 글을 쓴다는 일은 늘 낯설고 어렵다. 하물며 내부사정을 알지도 못하는 이가 기사를 비판한다는 것이 필자에게 얼마나 큰 실례인지 모르지 않는다. 다만 이 코너의 의도 역시 모르지 않기에 비판 몇 줄을 겨우 끄적거린다. 커버스토리를 장식한 족보 기사는 이번 호의 메인 기사로 보인다. 다만 족보 문제를 ‘비윤리적인’ 학생들 차원으로 환원한 논조의 방향성은 아쉽다. 기사는 족보가 거래되는 실태에 대해서만 피상적으로 다루고 있다. 학내 저작권 문제에 대해 모
고등학교 시절 학교 신문 기자로 활동하며 신문을 제작했던 경험이 있다. 고등학교 신문이다 보니 중대신문 정도의 높은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구성은 어느 정도 비슷했다. 교내외 일어난 사건, 행사를 전달하는 종합 부문이 있었고 기획, 문화, 비평 등의 섹션을 만들어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했다. 당시 필자는 교내 소식을 전달하는 스트레이트 기사 작성을 선호했다. 추가적인 취재와 조사가 필요한 기획, 문화면보다는 기사 작성이 수월했기에 가졌던 얄팍한 생각이 아니었나 싶다. 교내외 소식을 전달하는 종합면 기사도 물론 중요하다. 기획, 문화
신문을 열기 전 ‘이번 신문에는 어떤 소재들이 실려 있을까?’, ‘어떤 신선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중대신문은 매주 색다른 학내, 학외 소식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전 신문도 그랬지만 중대신문 제1943호에서는 더 다양한 소재의 기사를 살펴볼 수 있었다. 공기청정기 설치 확정과 같은 본교의 시설 개선과 안성캠 확대운영위원회 주요 사안 기사 등 본교에서 일어난 1주일 동안의 일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본교 학우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정신건강 관리 센
평소 틈틈이 읽는 중대신문은 편집장으로 일하는 필자에게 항상 큰 자극과 도움을 준다. 뛰어난 취재력과 다채로운 콘텐츠, 세련된 레이아웃을 적절하게 버무린 중대신문은 보고 배울 점이 많기 때문이다. 중대신문 제1941호는 기획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대입특별전형제도의 이면에 존재하는 한계점을 지적하고 장애인이 고등교육 과정에서 겪는 고충까지 담아내다니 말이다. 대학신문임에도 사회 속 약자를 조명한다는 것에 기자들이 성숙한 사고를 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평소 필자가 다뤄왔던 폭 좁은 기삿거리 선택에 대한 반성이 되기도 했다. 학생 독자
중대신문 제1941호를 읽고 중대신문은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학내 사안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 다루고 있어서 좀 더 풍부한 느낌을 준 게 아닐까. 언론에 나오는 소재들은 자극적이고 논란이 될 수 있는 것을 주로 다룬다고 생각했던 편견을 깰 수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3면의 여러 앱들에 대한 보도였다. 학교 앱에 대한 학생의 생각을 말로써 담아냈고 실제로 나 또한 불편을 겪었던 사항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며 읽게 됐다. 나아가 타대의 사례를 제시하며 어떻게 중앙대의 앱이 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