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칼럼을 쓴지 벌써 5개월이 지났습니다. 하루는 긴데 항상 돌아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간 듯 보입니다. 약 5개월 전 이곳에 우울증에 대해 적었습니다. 암울한 시기를 지나 꽤 잘 살고 있다고 적었죠. 하지만 그 글이 무색하게 또 몹시 아픈 시기가 오기도 했습니다. 인생은 좋은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의 반복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사실 ‘시기’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좋은 날과 그렇지 못한 날의 반복, 혹은 좋은 찰나와 그렇지 못한 찰나의 반복. 시시한 말이지만 좋은 찰나를 음미하고 기억하는 게 우리의 몫이겠죠.
사진팀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에 위치한 굴업도를 방문했습니다. 독자분들께 생소할 수 있는 굴업도는 언론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는 섬입니다. 굴업도를 검색하면 해양쓰레기 뿐만 아니라 사슴으로 인한 환경 파괴, 사기업의 굴업도 개발과 같은 문제도 파악할 수 있죠. 단지 쓰레기가 많이 밀려오는 작은 섬인 줄 알았던 굴업도는 막상 다가가 보니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사진 기획엔 폐어구 문제만 실었지만, 굴업도 주민들이 호소하는 가장 급박한 환경 문제는 바로 사슴의 과증식입니다. 귀여운 외모로 관광객의 이목을 끌고 굴업도에 신비로
탓은 참 쉽다. 내 탓이든 남 탓이든 불안을 떨치는 데 이보다 간편한 방법은 없다. 범인을 찾으면 마음이 편해지듯이 탓할 대상을 찾으면 상황은 명료해지고 안정감이 생긴다. 심리학자 프리츠 하이더에 따르면 인간은 세상을 일관성 있게 이해하고 환경을 통제하려는 욕구가 있다. 이에 자신과 타인의 행동이 어떤 원인을 갖는지 추론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를 ‘귀인’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탓하기다. 탓은 얼핏 남을 향한 칼날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옳고 그름을 판단해 원인을 탓하겠다는 마음은 결국 스스로를 향한다. 힘든 상
신이 한 청년에게 다음 생에 가지고 태어날 세 가지 재능을 주겠다고 말했다. 청년은 세 가지 재능을 소원으로 빌었다. 그렇게 청년은 소재가 무한하고 재밌는 웹툰을 그리는, 최고의 프로게이머이자, 복권 당첨 번호를 한 번에 맞출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조선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네이버웹툰 84화의 이야기다. 이 청년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났을 뿐이다. 단지 운이 없었던 것이다. 최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r
2021년 각종 세계 문학상, 영화제 예비후보작들이 슬슬 언론에서 거론되고 있다. 작년에 한국 최초로 수상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축하했듯이, 이번에도 좋은 소식을 내심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국제적인 상의 심사 과정에 있어 우리에게 하나의 장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우리나라는 일명 3대 문학상을 수상한 이력이 한 번 있다. 이는 2016년에 한강 작가의 소설 가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인 최초로 수상한 멘부커 상이다. 그런데 해당 서적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한강 작가만큼이나 화제가 됐다. 영국이
“취직은 어디로 할 거야?”, “요즘 만나는 사람은 있니?” 친척이 모인 자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손님입니다. 다들 이 질문을 듣고 입장이 곤란했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추석 때 필자도 위와 같은 질문 때문에 막막함이 몰려왔습니다.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몰라 입만 꾹 닫고 있었죠. 모처럼 만난 친척과의 반가운 대화가 정적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나의 일상에 물음표를 던지는 이들은 가까운 관계인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불쾌함을 느끼더라도 이를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답을
슬픈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습니다. ‘공평하고 정의로운 기사를 쓰겠다’고 다짐하며 중대신문에 들어온 지 1년이 돼갑니다. 그리고 다시 9월의 끝자락에 선 기자는 과연 그 다짐을 얼마나 좇았을까요. 지난 여름,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갈등 취재를 위해 밥먹듯 노량진에 갔습니다. 하루는 노량진역 카페에서 구 노량진수산시장(구시장) 상인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기성 언론을 통해 바라본 구시장 상인은 항상 상기된 얼굴과 흥분한 모습이었기에 기자는 꽤 긴장을 한 터였죠. 하지만 실제 인터뷰는 달랐습니다. 여타 뉴스에서
얼마 전 일입니다. 화상 강의 플랫폼 줌(Zoom)을 이용한 수업을 진행하던 중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잠시 동안의 정적. 침묵을 깨고자 이번엔 아예 한 학생을 지목했습니다. 황급히 켜진 카메라 뒤의 배경이 낯익습니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풍경, 동시에 들려오는 소리. ‘이번 역은 신사, 신사역입니다.’ 사상 초유의 비대면 강의로 1학기가 지나갔습니다. 비대면 강의가 장기화됨에 따라 그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강의의 질, 수업 방식과 관련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학생과 교육자 사이에 제대로 된 논의가
‘피해자 중심주의’를 내걸고 활동해 온 시민단체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피해자에 의한 폭로로 사회를 뒤집어 놓았다. 쟁점은 정의연과 윤미향 전 이사장의 기부금 유용 및 부정회계 의혹이다. 회계상 사라진 억대의 국고보조금과 기부금, 할머니들을 위한 쉼터를 명목으로 조성해 지난 4월 헐값으로 매각한 ‘안성 쉼터’ 등 논란이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정의연은 사회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켰을까. 첫째, 기부자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기부는 개인이 내민 손길이 사회에 선한 영향
모범적이고 평범한 학생의 이중생활을 다룬 드라마 ‘인간수업’이 화제다. 범죄를 책임질 수 없는 미성년자 주인공은 해선 안 될 선택을 하고, 결국 파멸을 맞이한다. 제목의 인간수업은 이러한 선택의 과정에서 이뤄지는 혹독한 수업이다. 드라마에 대해 성범죄와 연관지어 논의가 활발하지만 초점을 조금 다른 곳에 두고 봤다. 소년범죄다. 물론 범죄 사실을 씻을 수는 없겠지만 돌이킬 수 있었을지 모를 선택의 순간들은 극중 계속해서 제시된다.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그럼에도 극중 선생도, 경찰도 결국 주인공을 돕지 못했다는 점
디자인 용어 중 UI/UX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UI는 User Interface, 보고 사용하는 사용자와 시스템의 접점을 말합니다. ‘스마트폰 UI’처럼 우리 주변에서 한번쯤 들어봤을 만한 용어이죠. 반면 UX는 무엇일까요? UX는 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이라는 뜻입니다. 시스템과 사용자가 상호작용하면서 느끼는 전체적인 경험을 말합니다. 예시로 엘리베이터 내부 버튼을 생각해봅시다. 좋은 UI 디자인을 위해서는 단순히 버튼의 접근성과 심미성 등을 고려하면 됩니다. 그러나 좋은 UX 디자인을 위
약 46.8%. 지난 제20대 국회의원선거(총선)에 당선된 국회의원들의 4년간 평균 공약 완료율이다. 당선만 되면 귀를 닫고 권리만 누리는 국회의 안타까운 현실이 드러났다. 이를 상기하기도 전에 21대 총선을 위한 13일간의 공식 선거운동이 진행됐다. 선거철마다 그랬듯 국회의원들은 거리로 나왔고 대뜸 명함을 주며 국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기호 0번 000”이라며 소리쳤다. 선거가 끝나자 그들은 또다시 자취를 감췄고 거리에는 선거 현수막만 달랑 남았다. 중앙대 총학생회(총학)의 모습을 보면 배경만 다른
'NO JAPAN, BOYCOTT JAPAN' 지난학기 대중교통을 비롯해 곳곳에서 일본불매운동 포스터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 영향으로 소비가 위축된 가운데도 없어서 못 사는 일본제품이 있다. 바로 일본 닌텐도사가 출시한 게임기 '닌텐도 스위치 동물의 숲 에디션'과 '모여봐요 동물의 숲(모동숲)'이다. 발매 당일인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 매장에는 해당 게임기를 구매하기 위해 3,000여 명이 몰렸다. 불과 몇 달 전 상황을 떠올리면 상상도 못 할 광경이다. 지난해
view(견해)와 view(견해) 사이의 inter(서로 주고받음) 작용을 보여 주는 일이 인터뷰(interview)입니다. 기자는 지난학기 게릴라 인터뷰에 이어 이번학기에도 인터뷰 코너를 맡게 됐습니다. 그간 여러 인터뷰 취재를 경험하며 기자는 진정한 언론인이 갖춰야 할 자세를 배웠습니다. 기자는 첫 인터뷰 당시 사전에 준비한 질문지와 피상적인 인물 정보만 단순히 머릿속에 담은 채 인터뷰에 임했습니다. 큰 과오였습니다. 인터뷰이가 어떤 사람인지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고 그에 따라 뻔한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뷰 기사는
기자는 두 학기째 문화부에 몸담고 있습니다. 지난 학기는 ‘열어줘서 고마워’ 꼭지에서 매주 전시회에 다녀오며 전시회 의도를 보도했습니다. ‘스트릿 포커스’ 꼭지가 신설된 이번학기에는 거리가 조성된 과정을 곱씹고 있습니다. 지난학기 문화부 기사를 쓸 때는 전시회를 다녀오는 과정 자체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특정 장소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그에 관한 해설을 제공하는 점이 문화부 기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화의 꽃은 예술이라는 생각이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었죠. 당시 기자는 미술관 입구에
“It’s show time!” 우리는 한때 국민프로듀서였다. 지난 2016년부터 올해 7월까지 모두가 투표에 미쳐 있었다. 엠넷에서 방영한 시리즈는 투표를 통해 11~12명의 아이돌 멤버를 선발해 데뷔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시청자는 투표를 통해 직접 아이돌을 프로듀싱 한다. 그렇게 아이오아이, 워너원, 아이즈원, 엑스원이 를 거쳐 탄생했다. 시청자는 이들을 부모의 마음으로 키웠다. 순위 발표 때마다 기쁨 혹은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연습생을 보며 함께 울었다. 에 출연
‘덕질’은 어떤 분야에 열광하며 애정을 쏟는 일입니다. 그리고 덕질을 즐기는 사람을 ‘덕후’라고 부릅니다. 과거에는 게임, 만화 등에 한정해 사용됐지만 최근에는 장르와 분야를 상관하지 않고 쓰이게 되면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기자 역시 가슴 속에 ‘최애’ 하나쯤 품고 사는 공연 덕후입니다. 덕질은 각박한 현실을 버티고 일상을 살아낼 수 있는 활력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지방에 살았더라도 덕질이 마냥 행복했을까요. 서울은 장르를 불문하고 덕질의 성지
축구 게임에서 좋은 팀을 만드는 일은 높은 승률과 직결된다. 이를 위해서는 뛰어난 선수를 들여야 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선수 프로필 확인이다. 프로필에는 각 선수의 능력을 꼭짓점으로 삼는 육각형의 도형을 볼 수 있다. 꼭짓점에 해당하는 능력이 클수록 더 넓은 면적의 육각형이 그려진다. 모든 능력을 고루 갖춘 선수를 ‘육각형 선수’라 말한다. 이러한 선수는 커다란 정육각형 모양의 프로필을 갖고 있어 언제 어디서나 활용될 수 있는 최고의 선수다. 하지만 육각형 선수만이 좋은 경기를 펼치는 것은 아니다. 게임
‘사노라면’, 1980년대 민주화 바람과 함께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 널리 불렸다던 노래. 10월로 넘어가던 새벽 두시경, 집으로 가던 길에 그 오래된 노래를 들었습니다. 귓가에 ‘내일은 해가 뜬다’라는 가사가 맴돌던 새벽, 중앙대에도 분명 볕이 들었습니다. 지난달 30일 서울캠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장애인권위원회(장인위) 설립 안건이 통과됐습니다. 전학대회 직전 진행된 서명운동에 약 900명이 동참한 결과 극적으로 의결안건에 상정될 수 있었죠. 학생대표자가 들던 비표는 마치 거
터무니없다. 정당한 근거 없이 허황됨을 일컫는 말이다. ‘터무니’는 터를 잡은 자취를 뜻한다. 터를 잡은 자리에는 주춧돌과 기둥을 세운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주춧돌을 둔 자리는 터의 중심이자 근간이다. 이 의미가 확장돼 터무니는 정당한 근거나 이유를 뜻하게 됐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우리는 새로운 ‘삶의 터’에 자리 잡는다. 나고 자랐던 지역을 떠나 대학이 위치한 지역에서 생활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새로운 터에서 보내는 시간과 그 터를 향한 관심은 비례하지 않는다. 매일 밟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