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큰 1인치의 장벽
  • 김유진 기자
  • 승인 2020.11.29 2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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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각종 세계 문학상, 영화제 예비후보작들이 슬슬 언론에서 거론되고 있다. 작년에 한국 최초로 수상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축하했듯이, 이번에도 좋은 소식을 내심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국제적인 상의 심사 과정에 있어 우리에게 하나의 장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우리나라는 일명 3대 문학상을 수상한 이력이 한 번 있다. 이는 2016년에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인 최초로 수상한 멘부커 상이다. 그런데 해당 서적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한강 작가만큼이나 화제가 됐다. 영국이 주최하는 멘부커 상 심사는 영어로 쓰인 작품만을 평가 대상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심사 대상이 한영 번역본으로 제한되기에, 번역본이 원본과 얼마나 근접한지가 심사에 있어 중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번역가에게는 맨부커상 수상자와 공동 수상의 기회가 주어진다. 또한 맨부커 인터네셔널 상의 경우 상금 절반이 번역가에게 돌아간다. 

  심사국과 문화권이 다른 국가의 경우, 자칫 문화를 온전히 이해하지 않은 채 번역했다가는 원문과 다른 작품이 탄생할 위험이 있다. 이는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번역가들도 다른 문화권의 문학 작품들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영화 <기생충> 번역가 달시 파켓은 자국에는 없는 ‘오빠’, ‘정’, ‘아이고’와 같은 개념의 단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데보라 스미스도 자국에는 없는 개념의 단어를 문체를 살려 번역하는 과정에서 고난을 겪었다. ‘처제’와 같은 우리나라의 호칭 문화가 자국인 영국에서는 생소한 문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주인공 이름으로 그냥 쓰지 않고 관계에 기반한 ‘지우 어머니’ 등으로 번역해 한국 문화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줬다. 

  하지만 저명한 번역가로 꼽히는 데보라 스미스조차도 한국어의 생략된 주어를 제대로 옮기지 못했다는 등의 오역 논란에 휩싸인 바가 있다. 이렇듯 오역의 여지가 있는 번역본은 원본의 언어가 심사 언어인 서적과 출발선이 같지 않다. 우리에게는 깊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원본을 잘 살릴 수 있는 번역가를 모색하는 과정이 추가로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1인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는 작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소감이다. 그가 말한 1인치 장벽은 자막의 장벽으로, 그는 ‘영화’라는 한 가지 언어로 세계는 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문화예술은 그 자체로 언어가 될 수 없다. 1인치 장벽은 뛰어넘는데 한계가 있으며, 우리가 허물어야 할 엄연한 장벽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김유진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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