탓은 참 쉽다. 내 탓이든 남 탓이든 불안을 떨치는 데 이보다 간편한 방법은 없다. 범인을 찾으면 마음이 편해지듯이 탓할 대상을 찾으면 상황은 명료해지고 안정감이 생긴다. 심리학자 프리츠 하이더에 따르면 인간은 세상을 일관성 있게 이해하고 환경을 통제하려는 욕구가 있다. 이에 자신과 타인의 행동이 어떤 원인을 갖는지 추론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를 ‘귀인’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탓하기다.

  탓은 얼핏 남을 향한 칼날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옳고 그름을 판단해 원인을 탓하겠다는 마음은 결국 스스로를 향한다. 힘든 상황이 펼쳐졌을 때 나는 대개 자책을 택했다. 나와 타인 그리고 상황에 관한 판단을 차곡차곡 세우다 보면 항상 문제의 범인은 나였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두고 자책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한 내 탓이라며 속이 짓무르도록 귀인에 매달렸다. 싫음의 이유를 찾아 자책하고 후회했다. 자책은 이내 무기력과 우울을 불러들였고 어디서부터 온 고통인지 알 수 없게 뒤죽박죽돼 버렸다.

  막막한 심정으로 심리상담센터를 찾았을 때 상담사는 머리를 가득 채운 판단과 자책을 멈추라고 말했다. 그제야 귀인이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이 보였다. 부정적 상황이 펼쳐졌을 때 스스로를 힘들게 했던 이유는 그 상황 자체가 아니라 상황에 관한 판단 즉, 귀인과 자책이었다. “바나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바나나가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바나나는 바나나일 뿐이에요.” 상담사가 내게 꺼내준 단순한 말은 복잡하게 엉킨 고민을 단숨에 풀어버렸다. 

  귀인은 사회적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으로 최근 한국의 사회적 화두를 포괄하고 있다. 정치적 대립, 사회적 분열로 얼룩진 오늘날의 민낯에는 내로남불의 정서가 깔려있다. 

  프리츠 하이더는 행동의 원인을 성격 등의 내적 요소로 추론하는 것을 내부 귀인, 외부압력 등의 상황적 요소로 추론하는 것을 외부 귀인이라고 설명했다. 귀인은 빠르고 자동적으로 일어나기에 오류와 편향이 나타나기 쉽다. ‘행위-관찰자 편향’은 내로남불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자신이 행위자일 때는 행동에 외부 귀인하고, 관찰자일 때는 행위자의 행동에 내부 귀인하는 현상이다. 자신의 행동은 그럴만한 상황으로 둘러대고 타인의 행동은 타인의 내적 요소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귀인에 얽매이는 순간 개인과 사회는 갈등의 불길에 휩싸인다. 쉬운 ‘탓하기’ 대신 어려운 길을 고민해 본다면 어떨까. 힘든 상황이 펼쳐졌을 때 그동안 내게 주어진 카드는 두가지, 자책과 남 탓이었다. 상담사는 세번째 카드를 내게 제안했다. 누구도 탓하지 않으면서 주어진 상황을 담담하게 마주하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나의 몫과 상처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선택으로 다가간다. 한걸음씩 용기를 내다보면 자책하지 않는 바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백경환 생활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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