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수업은 모두의 몫으로
  • 박진용 기자
  • 승인 2020.06.01 00: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범적이고 평범한 학생의 이중생활을 다룬 드라마 ‘인간수업’이 화제다. 범죄를 책임질 수 없는 미성년자 주인공은 해선 안 될 선택을 하고, 결국 파멸을 맞이한다. 제목의 인간수업은 이러한 선택의 과정에서 이뤄지는 혹독한 수업이다. 드라마에 대해 성범죄와 연관지어 논의가 활발하지만 초점을 조금 다른 곳에 두고 봤다. 소년범죄다. 물론 범죄 사실을 씻을 수는 없겠지만 돌이킬 수 있었을지 모를 선택의 순간들은 극중 계속해서 제시된다.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그럼에도 극중 선생도, 경찰도 결국 주인공을 돕지 못했다는 점이다.

  소년범죄는 갈수록 지능적이고 흉악해지고 있다. 재범률도 상당한 수준이다. 이에 따라 법을 개정해 성인과 같은 수준의 엄한 처벌을 받도록 하자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 간단하게 볼 문제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려스럽다. 엄벌주의는 사회적 폭력을 구조적으로 사유하지 못하게 하는 접근방식이다.

  엄벌주의를 요구하며 분노를 표출하고, 범죄자와 스스로 도덕적 선을 긋는 행위는 정작 우리가 가담하고 있는 폭력적인 세계의 구조를 직시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 세계는 폭력으로 가득하다. 굳이 게임과 같은 가상의 폭력까지 떠올릴 필요도 없다. 물리적이고 실재하는 폭력이 도처에 너무나도 많다. 소년의 눈높이에 맞춰볼까. 치열한 입시 경쟁, 학교폭력과 무기력한 공교육을 우리는 이미 겪어봤다. 학교 밖 풍경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른들은 누가 보라는 듯이 약자를 차별하고 두들겨 패고 있다. 앞뒤가 안 맞다. 이런 폭력의 세계를 거울처럼 반영하고 자란 아이들이 착하기만을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을 먼저 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론에 편승해 처벌을 강화하는 것에 앞서 제도의 내실을 다지고 교정기능을 안정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현재 교정시설은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소년원과 소년교도소는 과밀수용 문제를 겪고 있다. 보호처분 6호를 수행하는 아동복지시설 및 소년보호시설도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소년범 교정시설과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는 오랜 외침이다. 교정기능이 올바르게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범죄는 반복되고 재생산된다. 범죄소년의 재범률이 높다는 사실에 대한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

  범죄소년에 대한 엄벌주의 여론은 안타깝다. 사회는 소년범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소년들이 흡수하고 자란 폭력적인 사회구조를 외면한다. 적절한 교정과 교화를 제공해주지도 못한다. 퍽 서글픈 일이다.

  그럼에도 범죄소년에 대한 국민적 공분의 행간을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 엄벌주의를 그저 감정적 반응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사실 그 기저에는 법률의 정의롭고 공정한 집행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같은 죄를 저질러도 사회적 지위와 재력에 따라 다른 처벌을 받는 일에 분노하듯,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단순히 강한 처벌이 아니라 정확하고 정의로운 처벌일지도 모르겠다.
 

박진용 사진면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