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습니다. ‘공평하고 정의로운 기사를 쓰겠다’고 다짐하며 중대신문에 들어온 지 1년이 돼갑니다. 그리고 다시 9월의 끝자락에 선 기자는 과연 그 다짐을 얼마나 좇았을까요.

  지난 여름,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갈등 취재를 위해 밥먹듯 노량진에 갔습니다. 하루는 노량진역 카페에서 구 노량진수산시장(구시장) 상인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기성 언론을 통해 바라본 구시장 상인은 항상 상기된 얼굴과 흥분한 모습이었기에 기자는 꽤 긴장을 한 터였죠. 하지만 실제 인터뷰는 달랐습니다. 여타 뉴스에서 다루듯 격정적인 발언은 없었습니다. 뒤에서 조종하는 세력이 있다는 세간의 소문처럼 답변이 근거 있게 짜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구시장 상인은 담담하게 진술할 뿐이었습니다. “짧은 기사나 1분짜리 방송 보도엔 자극적인 사진을 많이 다뤄요. 그래서 나쁜 사람으로 매도되곤 했죠.”

  취재를 마치고 기사를 쓰면서 기자는 수십 개의 물음표와 부딛쳐야 했습니다. 구체적인 보도자료로 스스로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수협과 달리 구시장 상인은 대부분 ‘증언’과 ‘정황’으로 자신을 보호했기 때문입니다. 수협은 금전 손실과 인명 피해를 추산했고 여러 법적 근거를 정리해 수협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그에 반해 구시장 상인은 그러한 자료를 낼 여력이 없습니다. 단지 ‘많은’ 사람이 다쳤고 ‘많은’ 물건이 부셔졌다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투쟁에서 가장 힘든 건 주위의 왜곡된 시선들이죠”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여력의 차이는 구시장 상인을 단지 ‘떼쓰는 사람’으로 비치도록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투쟁하는 상인을 보며 ‘생떼를 부린다’고 말하거나 과격한 폭력집단이라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이제 그만할 때’라며 투쟁을 재단하기도 합니다. ‘약자’가 ‘악자’로 변했습니다. 단지 생존권을 외친 구시장 상인은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에서도 철저하게 배제됐습니다.

  편향된 기사가 아닌 공정한 기사를 쓰고 싶었습니다. 양측의 피해 사실을 그대로 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공정하지 않았습니다. 자본의 보호장구를 착용한 수협은 펀치를 날렸고 맨몸의 상인은 룰을 어기면서 그 주먹을 깨물었습니다. 싸움으로 수협의 비늘은 망가졌지만 상인은 아가미가 뜯겨졌습니다. 그러나 심판은 룰을 어긴 상인에게 패배를 선언하고 상인을 링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결국 기자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기사를 쓰지 못했습니다. 사실을 썼지만 진실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구시장 상인의 피해는 단지 큰따옴표 안으로 몰아 넣어졌습니다. 빽빽하게 들어찬 지면의 글자 뒤로 기자가 하고픈 말은 많았지만, 3년 간 기울어진 시소 위에 있던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갈등은 초라한 바이라인으로 끝맺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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