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칠기삼
  • 최수경 기자
  • 승인 2021.03.15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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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한 청년에게 다음 생에 가지고 태어날 세 가지 재능을 주겠다고 말했다. 청년은 세 가지 재능을 소원으로 빌었다. 그렇게 청년은 소재가 무한하고 재밌는 웹툰을 그리는, 최고의 프로게이머이자, 복권 당첨 번호를 한 번에 맞출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조선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네이버웹툰 <마음의 소리> 84화의 이야기다. 이 청년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났을 뿐이다. 단지 운이 없었던 것이다. 

  최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KBS 직원의 막말 논란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능력 되시고 기회 되시면’, ‘공부 못 해서 못 와 놓고’. 그들의 말은 능력주의가 낳은 승자들의 오만한 태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지 못한 사람은 능력 없고 공부를 못 하는 패자라는 말인가. 이미 자본주의가 낳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 지쳐있는 현대인에게, 능력과 노력을 척도로 서열화하고 계급화하는 일은 우리를 더욱 무력하게 만든다. 

  능력주의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이데올로기다. 성공하면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능력이 뛰어나고 열심히 한 데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남보다 훌륭한 능력을 가지고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자기개발을 한다. 자기개발을 멈추면 혼자 뒤처지는 듯한 느낌이다. 목적이 없어도 무조건 열심히만 하면 일단 안심은 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열심히 하는 이들이 전부 성공할 수는 없음을. 올해 서울대 합격 상위 20개교 중 일반고의 이름은 없었다. 일반고에 입학한 학생이 명문대 진학률이 우수한 고등학교에 갈 수 없었던 이유를 단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고 치부할 수 없다. 그들이 타고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배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셈이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부모의 소득 수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평화로운 가정환경, 건강한 신체를 타고나는 것. 이는 명문대 입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비 능력적 요소, 즉 운이다. 흔히 행운은 얻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공을 위해 능력과 노력만 투자하면 되는 환경, 이러한 성격의 운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속에 파묻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성공의 맛에 취하기 전에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모두 내 노력과 능력이 이뤄낸 결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다른 이들보다 조금 앞선 출발선에서 시작하지는 않았는지. 성공하는 데 능력보다 운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능력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능력이 너무 과대평가됐고 이외의 비 능력적 요소는 너무 과소평가됐음을 상기하고 싶다. 

  운칠기삼. 사람의 일에 운이 차지하는 비중이 7할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성공 앞에서 겸허해야 하는 이유다.

최수경 여론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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