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과 오지랖 사이
  • 서민희 기자
  • 승인 2020.10.12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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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은 어디로 할 거야?”, “요즘 만나는 사람은 있니?” 친척이 모인 자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손님입니다. 다들 이 질문을 듣고 입장이 곤란했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추석 때 필자도 위와 같은 질문 때문에 막막함이 몰려왔습니다.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몰라 입만 꾹 닫고 있었죠. 모처럼 만난 친척과의 반가운 대화가 정적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나의 일상에 물음표를 던지는 이들은 가까운 관계인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불쾌함을 느끼더라도 이를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답을 선뜻하지 못할 경우, 더 자세한 답변을 요구하는 또 다른 질문이 오기도 하죠.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위와 같은 궁금증을 ‘관심’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에서는 이러한 사적인 호기심을 몰상식함으로 여깁니다. “살이 왜 이렇게 쪘니?”처럼 흔히 들을 수 있는 외형에 관한 질문이 멕시코와 폴란드에서는 금기시됩니다. 가족 사이라고 해도 개인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보기 때문이죠. 그들은 사적인 부분과 관련한 물음이 선을 넘는다고 생각합니다. 답변을 요구받은 이가 불쾌함을 느끼지 않도록 고려하는 모습이죠.

  방향이 삐뚤어진 관심은 오지랖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듣는 사람이 불쾌함을 표현하거나 난처함을 드러내면 관심이 아닌 오지랖이라고 볼 수 있죠. 대화는 인간관계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합니다. 따라서 듣는 이에게 난처함을 주는 오지랖은 친밀한 관계를 어색한 사이로 바꾸기 십상입니다.

  사전에서는 오지랖을 남의 일에 지나치게 상관하는 사람으로 정의합니다. 즉 오지랖은 무례함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친밀하고 익숙한 사이가 무례한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던질 수 있는 사이로 변질돼서는 안 되죠.

  상대방을 향한 진심 어린 애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전해지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우선 듣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야 합니다. 진정한 관심은 곤란한 질문으로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죠. 따라서 답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한 번 더 바라본 다음 질문을 건네야 합니다. 앞으로의 행보를 묵묵히 격려하는 자세도 좋습니다. 이는 듣는 이에게 관심의 형태로 다가갈 수 있죠. 또한 상대방이 불편할 만한 질문은 삼가는 습관을 길러서 서로에게 생채기를 낼 수 있는 대화는 줄이는 게 바람직합니다. 

  톨스토이는 “말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생각할 시간을 가져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지금 하고자 하는 말이 누군가를 해칠 염려가 있는지 확인하고 입 밖으로 내뱉으라는 뜻이죠. 상대에게 포근한 가족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관심과 오지랖의 선을 명확하게 긋는 건 어떨까요.

 

서민희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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