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1980년대 민주화 바람과 함께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 널리 불렸다던 노래. 10월로 넘어가던 새벽 두시경, 집으로 가던 길에 그 오래된 노래를 들었습니다. 귓가에 ‘내일은 해가 뜬다’라는 가사가 맴돌던 새벽, 중앙대에도 분명 볕이 들었습니다. 

 지난달 30일 서울캠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장애인권위원회(장인위) 설립 안건이 통과됐습니다. 전학대회 직전 진행된 서명운동에 약 900명이 동참한 결과 극적으로 의결안건에 상정될 수 있었죠. 학생대표자가 들던 비표는 마치 거대한 파도 같았습니다. 동시에 기자의 머릿속엔 그간의 중대신문 기사가 주마등처럼 스쳐 갔습니다.

 장인위 안건이 전학대회에 올라 빛을 보기까지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서울캠 총학생회(총학)는 지속적으로 공간이 부족하다며 장인위 설립 불가 입장을 표명했죠. 총학을 향한 학생들의 반응은 ‘이게 학교냐’라는 실망감이었습니다. 그 허탈감과 분노는 지난 2016년 국정농단에 대한 초기 시민 반응과 사뭇 닯아있었습니다. ‘이게 나라냐’라는 담론이 몇 차례의 촛불집회로 이어진 것처럼 장인위 설립 불가 이유가 타당하지 않다는 불만도 곧 행동으로 발전했습니다.

 단순한 분노에서 한 단계 나아간 이들은 학내에 새로운 여론을 형성했습니다. 인문대, 사과대를 중심으로 보다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지지 의사가 표출된 것입니다. 시작은 여름방학 중에 진행된 장애학생자치기구 TFT(태스크포스팀)의 회의였습니다. 이후 이들은 총학이 꾸준히 주장했던 공간 문제에 대안을 제시하고 총학과의 간담회를 요청했습니다. 규모는 작았지만 총학생회실에서 진행된 소규모 간담회가 그 결과였죠.

 중대신문도 장인위 설립 무산 선언부터 안건 가결까지 일련의 과정을 끈질기게 취재했습니다. 사실 중대신문 기자로 활동하던 지난 1년간 신문 가판대에 남아있는 신문을 보며 가끔 회의감에 빠졌습니다. 학생들이 잘 찾지 않는 신문에 힘이 있을까 의문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전학대회 당일 장애학생회가 준비한 발의안을 보는 순간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발의안에 지난 5월부터 시작된 중대신문의 기록이 오롯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기자는 그날 밤 아주 오랜만에 두다리 뻗고 잘 수 있었습니다.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그날만큼은 할 일도 미뤄두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의 해가 기다려졌기 때문이죠.

 이처럼 대학이라는 공간엔 여전히 때 묻지 않은 열정과 용기가 숨 쉬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 순수함이 값진 승리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노력이 잘 보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기꺼이 연명부에 이름 석 자 올렸던 900여 명의 노력이, 편집국에서 밤을 지새우던 28명의 ‘기록’이 이렇듯 값진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단지 이따금 보이는 작은 변화 하나면 의와 참의 정신은 꺼지지 않을 겁니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