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온대 中예전에 나는 소설이나 에세이들을 자주 읽었다. 브론테 자매, 울프, 뒤라스, 손택 같은, 아직 자기만의 방이 없었거나 이제 막 생겼던 시대의 서양 여성 작가들이었다. 손택이 젊었을 때 쓴 문학평론집의 경우 이해하지 못할 말들이 대부분이라 지금은 레비 스트로스라는 인류학자가 쓴 기행문을 다룬 대목만이 기억에 남는다. 서구 문명에 밀려 사라져가는
김수연 작가는 1983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2003년 동덕여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2015년부터 중앙대 대학원 문학예술콘텐츠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두 달 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서 로 등단했다. 예술을 축소하려는 사회에서 아직도 글을 쓰겠다는 사람이 많아 신기하고 든든해 하는 중이다. 우리는 종종 아이들을 보면서 ‘저 때는 아무 걱정 없
팽이가 돈다. 팽이가 계속 돌고 넘어지지 않으면 이 세계는 현실이 아니다.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이 현실과 다름없지만 현실이 아니다. 영화 에서 주인공 콥(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은 자신이 걷는 세계가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하기 위해 토템을 굴린다. 인간의 지각으로는 구분이 불가능해서 정교하게 만들어진 물건의 힘을 빌린다. 은 꿈과 현실을
우리는 왜 이야기 하나그 기원을 찾아 앞선 두 기사에선 판타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지금의 판타지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아직 하지 않은 물음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왜 그토록 우리에게 중요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그동안의 논의는 그 의미가 퇴색할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이에 대해 명쾌한 답을 제시한 이가 있습니다. 『스토
환상(幻想). 우리는 하늘을 날며 불을 뿜는 드래곤과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협객들의 칼부림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이내 우리는 서양판타지소설과 무협소설을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로 치부하죠. 하지만 모든 환상은 우리의 모습이 담긴 거울이 아닐까요.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은 “판타지는 현실의 극한적인 왜곡이다”고 말했습니다. 판타지는 비현실적 요소로써
무협영화 은 200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에 석권했다. 저우룬파(주윤발)와 장쯔이가 휘청거리는 대나무 숲을 날아다니며 현란한 무술을 선보이는 장면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중국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이렇듯 무협은 특유의 신비감과 오락성을 바탕으로 대중들에 자신의 세계를 팽창해왔다. 신비로운 무림(武林) 속으로 들어가 보자
복수극에서라도 꿈꿔보는정의구현이란 희망 분노를 터뜨리는 가장 흔한 방법은 복수다. 자신을 분노케 한 이에게 한 방 먹여주는 것이다.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복수는 비천한 마음의 비천한 즐거움이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복수는 비천할지라도 즐거움이다. 그래서일까. , , 등 최근 흥행한 영화들의 공통적인 코드
용서, 모두를 위한 것이자 모두의 힘이 필요한 것용서 위해 반복되는 수많은 갈등, 올바른 사회 위한 필수 과제 개인 간의 단순한 실수부터 정치 범죄에 이르기까지. 용서를 논의하는 범위는 수직적으로든 수평적으로든 매우 넓다. 그렇기에 용서는 가볍기도 무겁기도 하면서 수많은 조건과 딜레마를 남긴다. 강남순 교수(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의 『용서
분노의 근원은 관념과 현실의 어긋남상식에 어긋나는 사회와 정의를 세우려는 분노 미국정신의학회가 ‘화병(hwa-byung)’을 한국 특유의 문화 증후군으로 인정할 만큼 우리는 전통적으로 화를 억누르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화병은 삭히지 못한 분노가 쌓여 여러 신체적 증상을 일으키는 정신 질환이다. 이처럼 억압된 화는 질병으로 번지거나 사회적 증
뮤지컬 첫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뮤지컬 입니다. 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원작으로 하는데요. 주인공 에드몬드 단테스가 자신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사람들에게 복수를 해나가는 이야기죠. 하지만 분노와 복수만이 의 전부는 아닙니다.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서 14년이라는 세월을 보
‘인문학적 가치’나 ‘인문학적 상상력’과 같은 표현들은 계량적 방식으로 지식을 확보하는 분야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어색한 수사(修辭)일 수 있다. 물론 인문학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이런 표현 때문에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을 한갓진 ‘유희()학문’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철학이 제시하고 인
4차원에선경험할 수 없는 시간 여행 그러나 가능성의 문은 열려 있다 우리는 혁명에 가까운 과학의 발전으로 과거 상상에 머물렀던 일들이 현실이 되는 것을 목격해왔다. 비행기를 이용한 다른 대륙으로의 여행과 스마트폰을 통한 영상통화는 모두 인간의 상상에 머물렀던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 여행’ 역시 먼 미래에는 현실화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
대륙철학, “의식의 흐름이 곧 시간이다” 철학자인 한스 요나스는 ‘너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시간의 한계는 인간이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의 생은 언젠가 끝난다. 이러한 삶의 유한성은 시간에 대한 끊임없는 인식으로 이어져왔다. 두 명의 철학교수에게 인간이 ‘시간’을
시간 여행은 현실 해결의 욕구판타지로 ‘욕망’과 ‘전복’ 이뤄내 영화 의 주인공 마코토는 시간을 돌리기 위해 한 발짝 도약한다. 드라마 ‘나인: 아홉 번의 시간 여행’에서 주인공 선우는 향초를 태워 과거로 돌아간다. 영화 에서 주인공 팀은 메리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몇 번이고 시간을 되돌린다. 이렇듯 대중의 사랑을 받았
독특한 문체와 냉철한 사회 진단으로 현대 철학의 중심에 서 있는 슬라보예 지젝. 그는 철학자이면서 지난 1990년에 치러진 슬로베니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는 이색적인 경력을 갖고 있기도 한데요. 그는 헤겔을 통해 라캉을 읽고 다시 라캉을 통해 마르크스를 읽을 것을 주장합니다. 이번주 ‘학술이 술술술’에서는 지젝이 말하는 헤겔과 라캉의 ‘사이’를 알아보기
‘교양있는 척’이나 ‘교양도 없이’라는 표현을 접하면 교양(敎養)의 ‘과잉’뿐만 아니라 그 ‘결핍’도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전자는 아마도 내면적인 성숙함이나 인격의 형성 없이 겉으로만 세련된 행동과 지식을 보여주는 것을, 후자는 인간이 최소한 가져야 할 품위의 결여를 말하는 것 같다. 교양(Bildung)은 ‘도야(陶冶)’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서구 전통
인간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누구도 그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누구도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죽음은 우리가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절대적 타자’이다. 그것은 모든 기대를 무산시키는 ‘무뢰한 사실(factum brutum)’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죽음은 인간의 모든 것을 무화시키는 사태인 것처럼 보인다. 죽음 후에 한 개
흔히 중세를 ‘어둠의 시대’ 혹은 ‘암흑기’로 표현합니다. 특히 14세기 중세에서는 종교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넘어 군림하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어둠이 있는 곳에는 빛이 있다는 말이 있죠.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을 통해 중세 암흑기를 조명했고 『중세 Ⅲ』을 통해 어둠 속 빛을 쫓았습니다. 이번주 ‘학술이 술술술’에서는 에코의 저서 『장미의
지난 8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전 세계에 보수의 물살이 들이닥치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습니다. ‘좌파의 몰락’에 처해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요.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와 우파는 어떻게 구성됐을까요.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대표적인 국가인 아르헨티나는 어떤 정치 역사를 갖고 있을까요? 이번주 ‘학술이 술술술’
약 100년 전 사회학자 막스 베버(M. Weber)는 현대 사회에서 종교가 ‘일상(日常)의 일’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종교는 과연 어떤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오는가? 묵묵히 자신의 신앙을 추구하는 선량한 다수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일상의 일’에서 ‘일상의 문제’가 된 느낌이다. 종교와 연관된 많은, 대체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연일 매체를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