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영화 <와호장룡>은 200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에 석권했다. 저우룬파(주윤발)와 장쯔이가 휘청거리는 대나무 숲을 날아다니며 현란한 무술을 선보이는 장면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중국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이렇듯 무협은 특유의 신비감과 오락성을 바탕으로 대중들에 자신의 세계를 팽창해왔다. 신비로운 무림(武林) 속으로 들어가 보자.

  상상의 세계를 이해하다
  무협소설의 특징은 ‘무협’이라는 명칭에서부터 드러난다. 그중 무(武)는 기이한 무공을 펼치는 것을 뜻한다. 최재용 교수(명지대 중어중문학과)는 무를 다른 동양 판타지와 구분되는 특징으로 꼽았다. “무협에서는 사람이 직접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해요. 구미호, 도깨비 등의 다른 동양 귀신 판타지와는 구분되죠.”

  무협소설은 비범한 무예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주인공이 행하는 무술이 의로운 행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비겁한 행동을 위한 것이라면 독자들은 감정이입 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무의 목적인 ‘협(俠)’ 또한 중요한 요소다. 협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의기로운 행위, 정신 혹은 사람 등을 의미한다. 문현선 중국 신화 및 대중문화 연구가는 협을 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행위 혹은 그런 사람으로 봤다. “협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약한 사람들을 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때문에 무협소설은 권력자가 힘없는 자를 억압하고 부정부패가 판치던 시기에 유행했죠.”

  무협소설의 시공간 배경은 주로 약 14세기 이전인 ‘명나라 이전’과 ‘강호(江湖)’다. 양우생은 ‘절세의 경공이 아무리 빠르다 한들 총알만큼 빠를 수야 있겠는가? 무협소설의 배경으로 근대 이후는 적절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무협소설의 시간적 배경이 근대 이후로 설정돼 총과 무공이 맞선다면 무협소설은 개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막기 위해 무협소설은 명나라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강호(江湖)’는 원래 장강과 동정호를 가리키는 지리적 명사이다. 하지만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강호는 실재하지 않는 허구적 공간이다. 무협소설이 선택한 명나라 이전과 강호는 현실 세계의 독자가 접할 수 없는 대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큰 거부감 없이 허무맹랑한 무협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다. 「무협소설의 흥미 유발 요인 탐색」(조현우, 2001)에 따르면 이러한 무협소설의 시공간적 배경은 독자의 현실과 단절돼 있기 때문에 독자들이 무협소설 안의 허구적 세계를 수용하게 한다.

  시공간을 넘어 되살아나는 무협 열풍
  무협소설의 근원을 찾기 위해선 한나라 사마천의 『사기』까지 올라가야 한다. 『사기』의 「자객열전」과 「유협열전」에는 협객의 실제 존재가 기록돼 있다. 떠돌이 삶을 살던 협객 ‘유협’과 이와 반대로 지역 내에서 귀족세력과 결탁하여 패권을 행사한 ‘호협’이 등장한다.

  무협소설은 시대와 공간에 따라 흥성과 퇴조를 반복했다. 중화권 무협소설은 ‘구파’와 ‘신파’로 나뉜다. 1949년 이전까지 중국 대륙에서 창작된 무협소설을 ‘구파 무협소설’이라고 부른다. 대표작으로 남방의 『강호기협전』과 북방의 『기협정충전』이 있다.

  구파 무협소설은 50년대 수립된 중국의 사회주의 정권이 문화정책을 시행하면서 때아닌 위기를 맞는다. 당시 중국정부가 사회주의 문화를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무협소설의 출판과 유통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무협소설이 공백기를 겪는 동안 무협소설은 홍콩과 대만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 때 창작된 소설을 ‘신파 무협소설’이라고 부른다. 신파 무협소설은 구파 무협소설에 비해 기교가 뛰어나다. 신파 무협소설의 작가로는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양우생, 고룡 그리고 무협소설의 ‘대협’으로 평가받는 김용 등이 있다.

  80년대 중후반 홍콩, 대만 등지에선 무협소설의 인기가 시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시기 중국 정부가 개방정책을 시행하면서 신파 무협소설이 다시 중국 대륙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 영향으로 구파 무협소설이 재출간되기도 했다. 현재 중국에서 무협은 국가적 지원도 많고 가장 대중적인 장르다.

  낯선 땅에서 다시 태어나 주류가 되다
  한국에는 1961년 『검해고홍』이 『정협지』라는 제목으로 번안돼 경향신문에 연재되면서 무협소설이 알려졌다. 그 때부터 국내에선 무협소설 열풍이 일었다. 한국 창작 무협소설은 1970년대 말에 등장한다. 초기 한국 무협소설은 독자들에게 환영받았지만 황당무계한 전개와 틀에 박힌 구성으로 위기에 봉착했다.

  전형준 교수(서울대 중어중문학과)는 『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에서 무분별한 창작 무협소설의 출판으로 무협소설 장르의 위상이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무협소설이 인기를 얻으며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질 낮은 창작무협소설들이 대거 출판된 것이다. 그는 이러한 당시 무협소설의 양태를 ‘정크가 됐다’고 표현했다.
 
  80년대 한국 무협소설은 몰락했지만 김용의 『영웅문』 번역을 시작으로 홍콩, 중국, 대만의 무협소설이 복귀했다. 특히 문학성까지 겸비한 무협소설이라고 평가받는 김용의 소설은 한국에 이른바 ‘김용 현상’을 일으켰다. 하지만 90년대에는 중국 무협소설 번역본이 아닌 한국 창작 무협소설이 무협 도서시장의 주류가 됐다. 최재용 교수는 이른바 신무협 시대라고 불리는 90년대 인터넷 하이텔과 도서 대여점을 등에 업고 한국 무협소설이 활황을 누렸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시기에 용대운, 진산, 좌백 등 작가들이 있었고 기념비적인 한국 무협소설이 많이 나왔죠. 사실상 한국 무협소설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무협의 검(劍)은 어디를 향하나
  최재용 교수는 무협소설이 예전만큼 큰 인기를 구가하지는 않지만 대신에 많은 무협 콘텐츠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호평을 받고 있는 무협 콘텐츠를 소개했다. “30편을 넘어선 용대운 작가의 『군림천하』는 아직도 스테디 셀러예요. 중국 무협 드라마 <랑야방> 또한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현지에선 관광 상품이 됐죠. 웹툰 <고수>는 무협의 전통적 특성을 젊은 사람들의 감각에 맞게 되살리면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죠.”

  문현선 연구가 역시 무협은 다른 장르와 접합을 통해 새롭게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협은 게임,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 새로운 미디어와 결합하면서 계속해서 무협만의 새로운 장을 구축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도깨비>도 주인공이 무사로 나왔다는 점에서 무협의 색채가 짙죠.” 그는 무협 정신 자체에서도 무협의 장밋빛 미래를 전망했다. “민중의 정의를 의미하는 ‘협’의 정신은 대중들의 희망과 일치해요. 민중들이 정의를 기대하는 한 무협 코드는 계속될 것입니다.”

  한편 최재용 교수는 무협소설이 더 넓은 독자층을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무협소설 속 정의롭기 만한 평면적인 주인공은 요즘 독자층에게는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 감각에 맞는 무협콘텐츠가 나와야 해요. 무협지가 흥미롭기는 하지만 양날의 검이죠.”

  그는 또한 무협소설 속 ‘마초적인 남성 판타지’를 지적했다. 이러한 특성에 여성 독자층은 흥미를 가질 수 없다. 결국 무협소설의 독자는 중년 남성들로 좁아진다는 것이다.

  판타지 속 세계는 닿을 수 없지만 판타지를 만드는 것은 인간이다. 비현실적인 판타지는 결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인간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무협을 재창조했고 그 존재감은 대단하다. 앞으로도 인간이 끊임없이 가꿔나갈 환상의 무림 세계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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