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즐거움 사이, 복수 - 중대신문
최종편집 : 2017.10.12 목 11:42
문화학술기획
분노와 즐거움 사이, 복수
권희정 기자  |  kkhj41@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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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27  14: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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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극에서라도 꿈꿔보는
정의구현이란 희망
 
분노를 터뜨리는 가장 흔한 방법은 복수다. 자신을 분노케 한 이에게 한 방 먹여주는 것이다.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복수는 비천한 마음의 비천한 즐거움이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복수는 비천할지라도 즐거움이다. 그래서일까. <베테랑>, <내부자들>, <검사외전> 등 최근 흥행한 영화들의 공통적인 코드를 꼽자면 복수다. 이는 과연 그의 말처럼 우리에게 복수가 ‘즐거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을까. 혹은 스스로가 비천해질지라도 앙갚음을 하고 싶을 만큼 분노하게 한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콘텐츠 속 복수에 대해서 탐구해봤다.
 
  정의를 위한 비천함
  복수극은 그 역사가 깊다. 인간이 복수극을 소비해온 역사는 ‘아가멤논’이나 ‘메데이아’ 등의 그리스 고대 비극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은 왜 복수극에 열광할까. 윤석진 교수(충남대 국어국문학과)는 그 원인을 권선징악의 마음에서 찾았다. “도덕이나 양심, 진실 등의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심리예요. 인지상정이죠.”
 
  서정남 교수(계명대 언론영상학전공)는 복수 플롯의 특징을 원인으로 꼽았다. 서정남 교수는 복수는 기본적으로 흡입력이 강한 플롯이라고 설명했다. “복수극에선 선과 악이 분명해요. 그렇기에 수용자가 등장인물에 이입하기 쉽죠. 이성적이기보단 감성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감성은 이성보다 자극적이다.
 
  전문가들은 복수극은 역사적으로 꾸준히 소비되어 왔으며, 최근 들어 그 수요가 증가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최근 들어 복수극의 인기가 높아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법정의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하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대부분의 복수극에선 피해자가 공권력이 아닌 자력으로 복수를 추구해요. 복수하는 주체를 약자로 설정해서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공권력의 무능을 부각시키죠.”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이러한 서사 구조는 사법정의가 더는 시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사람들의 인식을 드러내 주는 것이라 말했다.
 
  서정남 교수는 사람들이 복수극을 보는 이유 중 하나로 위안을 꼽았다. “현실과 달리 복수극에선 결국 정의가 승리해요. 그걸 보며 관객들은 내면의 분노를 해소하고 대리만족을 느끼죠.” 사법체계가 흔들린 현실 속에서 정의구현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렇기에 영화에서라도 정의가 구현되는 것을 보며 위안을 얻고자 한다는 것이다.
 
  복수(複數)의 가능성을 지닌 복수극
  영화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란 말이 있다. 우리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모습을 확인하고 모난 부분을 가다듬는다. 즉 거울은 단순히 비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현실이 바뀔 수 있게 한다. 
 
  마찬가지로 영화라는 거울 또한 현실을 반영할 뿐 아니라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윤석진 교수는 복수극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으로 사회 환기를 꼽는다. “영화 속 문제 상황을 통해 우리 현실을 환기할 수 있어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는 거죠.” 이러한 측면이 복수극의 사회적 기능이라는 설명이다.
 
  복수극의 현실 비판은 완벽하지 않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복수가 개인에 국한됐다는 것을 지적했다. “최근의 복수극은 너무 개인화돼 있어요. 개인적 복수로 모든 게 해결되진 않는데도 말이죠.” 최근 흥행한 몇몇 영화들도 재벌 3세나 대선 후보가 저지른 부조리를 비판했지만 그 개인들을 처단하고 끝났을 뿐이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현실비판의 깊이가 얕은 것 또한 꼬집었다. “복수극이 본질적인 것은 건드리지 않고 피상적인 것만 건드리고 있어요. 진짜 문제인 시스템은 전혀 건드리지 않죠.” 수많은 정치풍자 복수극의 성행 속에서도 대통령이나 청와대를 직접 거론한 작품은 없었다. 본질적인 문제인 사회구조엔 닿지 못한 채로 현실을 비판했다며 자위하고 있는 것이다.
 
  복수극의 현실비판은 또 다른 위험성을 안고 있다. 윤석진 교수는 복수극의 현실비판으로부터 얻는 위안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화에서 얻는 위안은 자칫 현실 개선의 의지를 앗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복수극에서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현실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만약 복수극에서의 해결로 위안을 얻고 현실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는다면 결국 현실 개선은 이뤄질 수 없는 거죠.” 복수극은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눈이 될 수도,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눈가리개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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