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 포스터.
 ▲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한 장면.
 
시간 여행은 현실 해결의 욕구
판타지로 ‘욕망’과 ‘전복’ 이뤄내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주인공 마코토는 시간을 돌리기 위해 한 발짝 도약한다. 드라마 ‘나인: 아홉 번의 시간 여행’에서 주인공 선우는 향초를 태워 과거로 돌아간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주인공 팀은 메리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몇 번이고 시간을 되돌린다. 이렇듯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콘텐츠에는 ‘시간’을 소재로 활용한 것이 많다. 시간을 소재로 한 콘텐츠들은 왜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을까. 인간은 왜 시간을 통제하고 싶어 할까. 시간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심리학과 대중문화를 통해 들여다봤다.
 
  시간을 달리고 싶은 이유
  동굴 벽화는 인간이 원시시대부터 ‘시간’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과거를 떠올린다는 것과 미래의 행복을 기원하는 것은 시간 개념이 전제돼야만 가능하다. 부수현 교수(경상대 심리학과)는 “동굴 벽면에 과거에 목격했던 들소의 그림을 그린 것은 미래에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는 것이다”며 “이를 통해 원시시대의 인간도 시간 개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시간을 인지한 이래로 시간을 통제하고 싶은 욕망 또한 갖고 있었던 것이다.
 
  부수현 교수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심리와 미래를 엿보고 싶은 심리를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심리를 느끼는 인간은 현재 부정적인 사건에 직면해 있을 확률이 높다. 부수현 교수는 “부정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인간은 ‘반사실적 사고’를 한다”며 “지금 현실이 불편하기 때문에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 현재와 상반된 사고를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반면 인간이 미래로 뛰어넘고 싶어 하는 것은 긍정적인 결과를 상상하는 것을 추구하는 성향 때문이다. 부수현 교수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긍정적인 결과를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를 음미효과라고 한다”며 “인간은 미래의 긍정적인 결과를 상상함으로써 현재의 고통을 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심리학의 관점에서 인간은 왜 시간을 돌이키거나 뛰어넘고 싶어 하는 것일까. 김은호 강사(중앙대 교양학부)는 “현대의 경쟁적 환경과 고단한 삶이 시간 여행을 상상하게 만든다”며 “현재의 불만족이 과거나 미래로의 여행을 꿈꾸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대중매체 속의 타임머신
  인간의 시간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은 곧 창작물에 발현됐다. 시간 여행을 다룬 작품은 근래에 들어 가장 사랑받는 콘텐츠 중 하나다. 김강원 강사(중앙대 국어국문학과)는 “최근엔 특히 시간을 소재로 한 작품이 다발적으로 창작되고 있다”며 “시간을 소재로 한 콘텐츠가 화제를 모으며 큰 주목을 받고 다른 장르에 비해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 소재는 미디어뿐만 아니라 도서출판계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20,30대의 선호도가 두드러진다. 지난 2010년 12월 2일부터 지난 1일까지 YES24의 시간 관련 소재 소설책의 누적판매량 및 성·연령층별 구매 비중 통계를 살펴봤다. 데이터에 따르면 시간을 소재로 쓰인 소설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전체 구매자 중 20,30대 독자들의 비중이 50%를 넘는다. 특히 약 2만 부가 판매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는 전체 구매자 중 20대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26.3%로 높은 편이다.
 
  김강원 강사는 시간을 소재로 한 콘텐츠에서는 현재의 인물이 과거로 가는 경우와 과거의 인물이 현재로 오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김강원 강사는 “과거나 미래로의 이동은 모두 현실의 문제를 해소하고자 하는 인물의 욕구로 인해 발생한다”며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대리만족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김강원 강사는 대중은 시간 여행보다 시간 통제에서 더 큰 만족도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도민준은 시간을 멈추는 등 시간을 통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강원 강사는 “‘시간 통제’를 활용한 작품은 현대인들이 가진 현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욕구가 한계까지 다다랐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대중문화가 ‘시간 이동’을 넘어서 ‘시간 통제’까지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김봉석 문화평론가는 인간의 욕망을 시간 소재 콘텐츠의 인기요인으로 진단했다. 그는 “과거에 대한 욕망엔 나의 선택에 따라 미래가 어떻게 됐을지 알고 싶은 욕구가 있다”며 “미래의 경우 ‘미래에 무슨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강원 강사는 시간 소재 콘텐츠의 매력을 판타지 장르의 특성에서 찾았다. 그는 “판타지 장르의 힘은 ‘욕망’과 ‘전복’에 있다”며 “현실에서 결핍되는 것에 대한 욕망이 강렬해지고 현실과 욕망의 간극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욕망은 판타지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고 말했다. 판타지 영역에 진입한 욕망은 판타지 장르 안에서 구체적 인물 및 플롯의 설정으로 구현된다. 이로 인해 시청자나 독자는 판타지를 자신에게 대입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김강원 강사는 “시간 소재 콘텐츠로 접하게 된 판타지 장르가 현실에 대한 전복을 실현할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출발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강원 강사는 최근 대중문화에서 주목하는 시간 소재 콘텐츠에는 ‘현재’가 배제됐다는 것을 한계로 지적했다. 현재가 배제되고 과거에 집중된 대중문화는 과거에 대한 향수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김강원 강사는 “시간의 서사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결핍된 것과 우리가 꿈꾸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며 “제대로 지각한다는 것은 행동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작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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