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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최성환 교수의 철학풀이
사멸(死滅)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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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21  22: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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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누구도 그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누구도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죽음은 우리가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절대적 타자’이다. 그것은 모든 기대를 무산시키는 ‘무뢰한 사실(factum brutum)’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죽음은 인간의 모든 것을 무화시키는 사태인 것처럼 보인다. 죽음 후에 한 개인이 자기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그의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가족이나 사회, 심지어 인류 전체를 통해 재생되는 그에 대한 회상, 평판 등이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죽음 이후에 가장 오래 기억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 기억의 뿌리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도 생겨난다. 아마 살아서 큰 족적을 남긴 자가 죽어서도 오래 기억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죽음을 논하는 것이 거북하지만 인간은 살아생전에 자신의 죽음을 경험할 수 없으니 타인의 죽음을 통해 형성된 잘못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불필요한 공포를 가질 이유가 없다는 에피쿠로스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몽테뉴(Mi-chel de Montaigne)는 에세이집 『철학함이란 죽음을 배우는 것이다』에서 죽음에 대한 사고는 ‘절망의 빌미’가 아니라고 역설한다. 그는 오히려 죽음에 대한 적절한 개념을 전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비록 죽음은 인간 존재가 피할 수 없는 종말이지만 인간에게 외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의 본질에 속한다. 그에 따르면 이렇게 죽음을 삶 속으로 동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죽음의 실재성을 잊지 않되, 그것을 공포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예견할 수 없이 등장하는 죽음을 고려할 때에만 달성된다. ‘죽음에 대한 각오’에서 인간은 이 삶에서 자신의 과제를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삶을 향유하는 자유에 도달한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죽는다는 것을 가르치는 자는 인간이 산다는 것을 가르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관점과 유사하게 실존주의도 대체로 인간의 근본적 한계로서 죽음이 인간의 진정한 삶(실존)을 가능하게 하는 ‘본래적 원천’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에 대한 투명한 자기성찰, 즉 죽음에로의 선구적 결단을 통해 ‘비본래적 삶’의 허울을 벗어던지고 자신을 온몸으로 던지는 실행을 가능하게 한다고 한다.
 
  철학자 한스 요나스(H. Jonas)는 ‘너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죽음의 경고(Memento Mori)’가 우리로 하여금 개인의 삶 속에서 행하는 역할을 숙고하게끔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기대하는 생애가 어쩔 수 없이 제한되어 있다는 시간의 한계는 우리 모두가 필연적으로 ‘아직 남은 삶의 시간’을 헤아리게 하는 자극이 된다. 철학은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인간은 죽음의 절대적 타자성으로 인해 죽음과는 아무런 접점을 가질 수 없는 무한대의 거리에서 ‘매개 없는 부정’에 쉽게 빠질 수 있다.
 
  그러므로 철학이 죽음을 철저히 사유하고 스스로 찾아낸 수수께끼의 열쇠를 통해 비밀누설의 작업에 동참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무관심과 소외에서 벗어나 ‘죽음의 경고’를 삶 속에서 지속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우리에게 부여된 제한된 시간을 허비하면서(죽이면서) 죽음 자체에서는 벗어나길 원하는 것은 모순이다. 죽음의 냉혹성은 우리에게 무엇이 진정 중요한지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우리가 어떤 일에 종사하든 덤으로 주어진 선물로서의 삶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 죽음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며, 바로 사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모든 것이 산들바람”이지만 “모든 것이 자신의 때가 있다”는 『전도서』의 잠언은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서 제한된 시간 속에서의 삶의 의미를 본질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솔직히 가슴을 무겁게 하지만 계절이 바뀌면 어김없이 변하는 자연의 모습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에게 잠시 쉬어가라고 권하는 것 같다. 이러한 여유 속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희망과 계획을 되돌아봄으로써 큰 역사의 흐름에 초연히 동참할 수 있는 ‘생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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