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철학, 
“의식의 흐름이 곧 시간이다”
 
철학자인 한스 요나스는 ‘너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시간의 한계는 인간이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의 생은 언젠가 끝난다. 이러한 삶의 유한성은 시간에 대한 끊임없는 인식으로 이어져왔다. 두 명의 철학교수에게 인간이 ‘시간’을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들어봤다. 또 시간을 통제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철학적 문제를 짚어봤다.
 
  과학이 불러온 차이
  근대 서양철학은 대륙철학과 영미철학의 두 개의 갈래로 나뉜다. 두 철학의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상이하다. 현상학적 접근방식의 영향을 받은 대륙철학의 시간론은 인간의 의식 내부에 있는 주관적 시간에 주목한다. 반면 영미철학은 과학계가 제시한 시간론을 반영해 이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제시한다.
 
  철학에서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시간이 인간 의식의 외부에 있다고 보는 객관적 시간과 내부에 있다고 여기는 주관적 시간으로 나뉜다. 객관적 시간은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시간론을 수용한 영미철학의 시간론으로 이어진다. 주관적 시간은 시간을 영혼 속에 내재화 한 플로티노스로부터 현상학적 시간론과 이를 이어받은 에드문트 후설, 마르틴 하이데거로 연결된다. 김형주 교수(중앙대 교양학부)는 “철학은 과학적 사실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갖는 학문이다”며 “자기의식이 약화돼 인간의 주체성이 상실된 현대 사회에서 현상학적 시간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현상학은 현상 그 자체가 본질이며 현상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철학적 탐구가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형주 교수는 “현상학은 임마누엘 칸트의 ‘현상과 물자체의 구분’을 부정하는데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경험적 대상’인 현상과 ‘선험적 객체’인 물자체로 이분하는 것이 과학주의적 선입견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김형주 교수는 “예를 들어 고향집에 대해 생각할 때 집의 위치와 크기가 아닌 고향집에서 있었던 추억 등을 떠올리는 것이 현상학적 태도다”고 설명했다.
 
  시간은 의식과 함께 흐른다
  현상학적 관점에서 ‘시간이 무엇인가’와 같이 시간을 객체로 보는 물음은 시간이 이미 존재함을 전제하기 때문에 자칫 시간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이로 인해 현대 대륙철학자들은 현상학적 방법으로 시간을 이해한다. 인간이 직접 체험하는 시간현상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후설은 그의 저서 『논리연구』에서 철학적 탐구가 ‘사태와 문제에서부터 추진력을 얻어야한다’며 ‘사태 자체로 소급해 올라가는’ 현상학적 탐구방법으로써 시간을 바라볼 것을 최초로 제안했다. 그는 시간이라는 현상이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지며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경험하게 되는지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후설은 시간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시간의식’ 내에서 포착된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승종 교수(연세대 철학과)는 “후설의 시간론은 시간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인간의 의식을 탐구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김형주 교수 역시 “현상학에 따르면 모든 과학적 선입견을 멈춘 상태에서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본질을 탐구해야한다”며 “인간 의식 자체가 시간이다”고 말했다. 
 
  후설의 조교였던 하이데거는 후설의 현상학적 방법을 수용했지만 후설의 시간론엔 반기를 들었다. 후설은 시간의 근원을 인식에 두기 때문에 그의 시간론 역시 인식의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여긴 것이다. 이승종 교수는 “하이데거는 인간의 의식 안에 들어온 현상을 넘어 현상 그 자체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하이데거는 ‘시간은 존재가 드러나는 지평’이라고 주장했다. 시간이 중요한 이유는 시간을 통해 존재가 드러나기 때문이지 시간에 대한 의식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계절이라는 자연현상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한번에 드러나는 것이 아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서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승종 교수는 “이러한 시간의 속성 때문에 하이데거는 시간 없이 존재를 탐구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라고 여겼다”고 말했다. 
 
  시간을 통제하는 인간
  지배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근대적 자아의 큰 특징이다. 대표적으로 인간은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이를 통제하려 했다. 이승종 교수는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데 성공했고 지배욕은 시간으로까지 확장됐다”며 “시간 여행에 대한 논의는 시간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의 반영이다”고 말했다.
 
  시간 여행의 가능성은 미지수다. 하지만 시간에 대한 통제는 현대 사회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다. 문명의 발달로 객관적 시간이 단축된 것이다. 이승종 교수는 “모든 것의 거리가 좁혀지고 시간 차이가 줄어듦에 따라 오늘날 사회는 새로운 삶의 양식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시간의 통제는 사회적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승종 교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물리적 거리가 줄어들면서 관계에 대한 책임감 역시 줄어들었다”며 “시간의 단축으로 인간관계가 가벼지는 문제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주관적 시간에 대한 통제 또한 이뤄지고 있다. 김형주 교수는 “가상현실체험 등을 통해 실제로 시간 여행을 하지 않더라도 의식 내부에서 시간 여행을 체험할 수 있다”며 “객관적인 시간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주관적 시간 속에서 체험하는 것 또한 시간의 통제다”고 말했다.
 
  인간의 주관적 시간이 통제되면 자기의식이 약화돼 인간의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김형주 교수는 “우리가 좋은 것을 먹고 행복하게 살아도 행복하단 사실을 모르면 행복하지 않다”며 “외적인 조건이 충족되더라도 그 주체가 ‘나’라는 사실이 확인돼야만 주체가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