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월드컵)이 개최됐다. 전 세계인이 하나 돼 즐기는 이번 월드컵을 두고 일각에서는 ‘피의 월드컵’이라고 비판했다. 카타르 월드컵은 노동자와 소수자 인권 보장 등에 대한 목소리를 묵살하고 있다. 인권 관련 여러 논란에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정치·이념적 논쟁보다는 축구에 집중하자는 의견을 밝혔다. 기본적인 인권 문제를 단순한 정치·이념 논쟁으로 치부한 것이다. 인권 없이는 월드컵도 없다. 수천 명의 희생 위에 경기장이 세워졌다. 이
25일 한 언론사 기사에 중앙대 서울캠이 언급됐다. 총학생회(총학) 선거에 학생들의 관심이 사라지자 투표 독려를 위해 고가의 태블릿PC와 무선이어폰 등을 선물한다며 비판했다. 불명예다. 이같은 지적은 학내에서도 일었다. 가시적인 투표율을 올리기에 급급해 학생들의 참여가 저조해진 근본적 원인을 들여다보는 눈을 감아서는 안 됐다. 단선으로 진행됐던 만큼 해당 후보를 위한 고액의 홍보라는 논란이 있을 것을 대비했어야 했다. 선거가 곧 민주주의 꽃이라는 명예가 시들해지는 순간이다. 처음도 아니다. 중대신문은 지난 제63대 총학 선거 당시
“프레임은 한 마디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다. (중략) 프레임은 특정한 방향으로 세상을 보도록 이끄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보는 세상을 제한하는 검열관의 역할도 한다.” 프레임(Frame)은 객관적 사실과는 무관하게 대상이나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프레임은 신속한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즉 대중의 정치적 수용성을 높일 목적으로 고의로 특정 사실을 만들어 내거나 특정 국면을 다른 국면으로 전환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활용되곤
“이 버스가 혹시 ㄱ정류소까지 가나요?” 막 앞문을 닫으려던 버스 운전기사를 저지하고 한 사람이 물었다. 버스 운전기사가 아니라고 답하자 그럼 ㄴ정류소로 가느냐고 물었다. 버스 맨 앞 좌석에 앉아 있던 기자는 확 고개를 들어 질문하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기자는 버스가 짧은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고 해서 화가 난 이유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기자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그 사람이 했기 때문이었다. 분명 나였다면 핸드폰을 들어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검색해 알아봤을 것이라고, 설령 타야 했을 몇 대의 버스
문득 기자는 2022년과 1974년이 겹쳐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48년 전인 1974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에 대해 언론 탄압을 가했다. 이에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은 정권의 압력으로 인해 광고를 싣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17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 김상훈 의원은 ‘문화방송 MBC’에 관한 대기업 등의 광고 중단을 촉구했다. 반세기에 걸쳐 ‘역사의 데칼코마니가 이뤄지고 있는 것인가’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기자는 국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MB
부실하다. 제65대 양캠 총학생회(총학) 선거에 출마한 선거운동본부(선본)의 공약들은 속 빈 강정이었다. 일부 선본은 포탈을 통한 석차 조회 서비스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이는 학사팀에서 이번 학기 내에 개선하겠다고 밝힌 사항이다. 선본은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학본부 부서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근거로 들고 있지만 부서 간 협의 절차에서 총학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지에 관해서는 의문이다. 지난 제64대 총학과 중앙비상대책위원회(중비대위)가 진행해 온 사업을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매주 월요일 아침, 학교에 들어서면 건물 앞에 꽂혀 있는 중대신문 한 부를 꼭 챙겨 연구실로 향하게 된다. 중대신문을 매주 놓치지 않고, 열렬 구독자가 돼 챙겨보는 이유는 별도의 시간과 품을 들지 않더라도 손쉽게 캠퍼스의 이모저모와 이슈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던 적막 속 2년여 동안은 중대신문만이 캠퍼스와 학생들의 동향을 살필 수 있었던 유일한 소통의 창구였다. 코로나19가 한풀 꺾여 대면 수업이 진행되는 현재지만, 이전보다 좁아진 생활 반경과 제한적인 만남으로 학과를 비롯한 학내 구성
카레라고 하면 떠오르는 음식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한국에서 흔히 생각되는 카레는 오뚜기의 3분 카레일 것이다. 필자도 ‘카레’라 하면 바로 3분 카레가 떠올랐었다. 장기간 인도에서 거주하면서, 카레를 접하면 접할수록 이러한 이미지는 사실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도의 현지 커리들은 한국에서 흔히 생각하는 커리와 모습, 맛, 색, 재료들이 모두 달랐었다. 커리는 흥미롭게도, 인도의 것이 가장 유명하지만, 태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현지화’된 커리들 또한 존재한다. 인도에서
저는 학기 중 세 번 편지를 써서 학생들에게 부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부득불 강의실에서 대면 수업을 할 수 없게 됐을 때부터였습니다. 비록 이클래스 공지사항에 탑재한 짧은 온라인 편지지만, 수강생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논리적이고 학술적인 의사소통 공간인 강의를 통해 미처 전하지 못했던 말을 하고 싶었죠. 우리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가장 중요한 청춘의 가치는 무엇인지 등과 같은 주제를 짧은 편지에 담아 보고 싶었죠. 강의에 열정을 바치기도 녹록지 않을 터인데 너무 오지랖이
11월 17일 하루는 오직 한 세대를 위한 날이 된다. 비행기는 이·착륙하는 것을 대기하고, 경찰들은 학생들을 나르기 위해 도로를 활보한다. 이런 모든 생소한 주변들이 허용되는 날,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2020년에 수능을 응시했던 내게는 어느덧 3수째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친구들이 여럿 있다. 친구들이 도전하는 모습은 내게 큰 자극이 된다. 이런 친구들에게 수능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물었다. 한 친구가 한숨을 쉬며 뱉은 “대학 간판 때문이지”라는 대답은 나의
‘받아쓰기만 할 거면 기자는 뭣 하러 하는 건지’ 중대신문을 입사하기 전 쉽게 내뱉었던 말들 중 하나입니다. 뉴스 카메라에 종종 잡히는 기자들을 보면 항상 높은 사람들과 유명 인사들의 말들을 주저앉아 받아적고 있었죠. ‘요즘 기자들은 엉덩이가 무겁네’ 속 편히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기자가 되고 나니 이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더군요. 무성의한 답변은 양반이고 거부에 방해에 협박까지. 취재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기사로 내보내면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말도 들었으니까요. 그러나 무엇
윤석열 대통령은 11월 11일부터 11월 16일까지 동남아를 순방할 예정이었다. 통상적으로 대통령은 해외 순방 시 공군 1호기를 탑승하며 출입 기자단도 동승한다. 그러나 9일 대통령실은 MBC 취재진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한다고 통보했다. 이에 MBC는 “언론 취재를 명백히 제약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국민 세금으로 운용되는 전용기를 마치 자신들의 사유재산처럼 취재 기자 탑승 여부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대통령실의 결정에서 윤석열 정부가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국민과 언론을 어떻게 생각
국회는 국민의 신뢰를 나날이 잃고 있다.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국회가 민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기 어려운 현실이다. 8일, 이태원 참사 대응 질의가 이뤄지던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 일부 국회의원이 ‘웃기고 있네’라는 필담을 나눈 것이 포착됐다. 해당 국회의원은 질의에 관한 필담이 아니며 사적인 대화를 나눈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가안보부장에게 국민 안전이 심각하게 침해된 사건에 관해 질의하는 자리임을 고려했을 때 필담의 맥락과는 관계없이 사안을 대하는 이들의 가벼운 태도는 민망한 수준이다. 이에 끝나
내 꿈은 좋은 글을 쓰는 작가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 알아보는 안목을 기르고 싶어서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하였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지금은 강단에서 글쓰기와 창의와 소통을 가르치면서 조금씩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수업을 하면 할수록 좋은 글에 대한 윤곽이 잡혀가는 것을 느낀다. 특히 학생들이 과제로 제출한 글들을 읽다 보면 ‘아, 이 글 참 좋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글쓰기 과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한 학생이 쓴 자기서사 쓰기였다. 그 학생은 1000자 정도만 쓰라고 내준 과제를 A4 용지로
“대학 사회에서 학보사의 기능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기성 언론의 기사와 어떤 차별점을 가질 수 있는지 서술하세요.” 필자가 학보사 입사 당시 답변해야 했던 논술 문제다. 고민 끝에 “미처 주목받지 못한 학교 구석구석을 조명하고, 사회의 최전선에 맞닿아 있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생생하게 전달한다”라는 답변을 적었던 것 같다. 학보사에서 활동하며 해당 질문을 끊임없이 되새겼고, 편집국장이 된 지금도 그리 나쁘지 않은 답변이었다고 생각한다. 기고문 요청을 받고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본
연극 드라마를 다루는 게 일이다 보니 사실과 진실의 대립, 혹은 그 수용에 대해 늘 고민합니다. 부당한 사실과 정당한 진실, 호의의 사실과 폭력의 진실 등은 연극 드라마의 단골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이와 관련한 사건을 목도할 때 오히려 외면하고픈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주시하는 이유는 직업병일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본 중대신문은 훌륭했습니다. 전반적인 학내 소식을 사실적으로 꼼꼼히 알리려는 노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나 역시 중대 교정을 다닐 당시 이만한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나 반성할 정도로, 교원 인사
최근에 정홍수 선생님이 쓴 『마음을 건다』(창비, 2017)를 다시 읽었다. 문학 평론가에 대한 외경심을 품고 천천히 책장을 넘기는데 「어른 되기의 힘겨움」이란 제목의 글을 읽고 생각이 많아졌다. 문학에는 분명 힘이 있다고 말하며 소설집과 평론집을 뒤적거리던 스물한 살 가을 이 글을 읽고 붙여둔 포스트잇을 발견했다. 언젠가 이 글을 다시 펼치게 된다면 그땐 어른이 되어있길. 단정히 쓰인 몇 년 전의 글씨체를 보자 아끼는 볼펜으로 한 자씩 꾹꾹 눌러쓴 그때의 기억이 선명해졌다. 가장 존경하는 문학 평론가의 솔직한 고백 앞에서 나 또한
‘MZ세대’라는 말이 매우 익숙해진 요즘입니다. MZ세대를 검색하기만 해도 ‘MZ세대 입맛 공략’, ‘MZ세대 겨냥’ 등의 단어가 포함된 제목이 끊임없이 나타나죠. 마치 사회가 MZ세대를 위한 시대로 가는 것 같습니다. MZ세대인 기자는, 역설적이게도 이 용어를 정말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사전적 정의로 MZ세대란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입니다. 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