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70호 신문을 받아보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안타까움’이었다. 차갑다고 느껴질 정도로 냉담한 필체로 써 내려진 기사들은 모두 우리가 평소 사회에서 접하는 안 좋은 뉴스의 중앙대 판으로 각색한 듯 느껴졌다. 이러한 기사를 보며 직접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나 그것을 지켜만 보던 사람, 관련 기관이나 단체 모두가 스스로 돌아보며 더욱 깊이 생각하고 반성하길 바랐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성장해 나아가 사회에 긍정적인 뉴스를 전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길 바랐다. 한편 기사에는 팬데믹(Pandemic)을
요즘은 그야말로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정보들은 우리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정보의 수집과 활용이 곧 개인이나 집단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상황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제한된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그리고 얼마나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신문은 여전히 사람들이 정보를 얻는 긴요한 창구 중 하나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
많은 것들이 멈춘 한학기였다. 팬데믹(pandemic)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도 온라인 보도로 학내 상황을 멈추지 않고 전달하려 힘쓴 중대신문의 노고에 독자로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러나 코로나19를 통해 발생한 독자와의 거리를 어떻게 지면으로 타개할지에 대한 조금의 더 나은 고민을 필자는 기대했다. 중대신문은 2주에 걸쳐 등록금 반환 문제를 보도한다. 학생들의 이목이 집중된 사안을 다뤘다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구성이 부실했다. ‘2부작’이라는 타이틀이었으나 학생과 학교의 입장을 차례대로 서술했을 뿐이다.
많은 대학에서는 선거철마다 후보가 출마하지 않아 총학생회가 구성되지 않는다.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바쁜 요즘 대학생은 학생자치에 쏟을 시간조차 없다. 학생들은 부총학생회장이 사퇴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무슨 일이 있겠거니’하고 넘어가지 않았을까. 학생자치의 몰락은 이미 우리 대학생에겐 당연하다. 그러나 기사에 제시된 설문 결과는 당연함을 부숴버리기에 충분했다. 부총학생회장이 사퇴한 이유를, 선거가 다시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학생이 너무나도 많았다. 학생자치의 위기를 객관적인
결여와 회복. 지난 제1967호 중대신문을 요약하자면 위의 두 단어를 꼽겠다. 결여가 회복되거나 결여의 회복에 대한 필요성을 고발하는 기사들이 유독 눈에 들어왔던 호였기 때문이다. 1면의 중간고사 부정행위는 혼란에 빠진 학내 상황에서 확고한 대책방안이 수립되지 않아 미래에 대한 확신의 부재를 엿볼 수 있었다. 또한 6·7면의 환경오염 피해와 그 보상에 대한 기사는 우리 사회의 환경 인식 결여를 되돌아보게 한다. 단순히 기사 내용의 측면뿐만 아니라 지난호 자체에서 ‘결여’를 느끼기도 했다. 여러 가지
#1. 내기를 걸 자신도 있는데, 학보사 중에서 중대신문 레이아웃이 제일 예쁘다. 1면, 6면, 10면, 13면 레이아웃은 다른 일간지나 학보사의 편집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고 자기만의 독창성을 드러낸다. 일러스트(6면)와 사진(13면)도 잘 활용하니 이만하면 중대신문 재주꾼들의 얼굴이 궁금해진다. #2. 하지만 ‘그때의 교집합’은 읽으면서 내내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지난 2008년의 역사는 그때의 기자들이 이미 기록했다. 현재의 기자들이 당시를 되돌아본다면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미래를 모색하는데 실마
뉴미디어(new media)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생겨난 새로운 전달 매체로, 기존 대중 매체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매체다. 최근에는 대다수가 휴대전화를 쓰기에 신문사들은 SNS, 웹 등을 활용해 독자들이 기사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뉴미디어를 활용하는 추세이다. 중대신문도 이러한 흐름에 따라 뉴미디어 콘텐츠를 활용하고 있다. 제1966호의 뉴미디어 콘텐츠 중 유튜브에 게시된 ‘크아우 뉴스’는 101초 특집으로 진행되었다. ‘한 학기 전면 온라인 강의 실시’와 ‘조금은 낯선
솔직히 나는 평소 중대신문을 열심히 보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다양한 기사가 있다는 사실을 제1964호를 보며 매우 오랜만에 깨닫게 되었다. 2~4면은 일반적인 학보의 기능일 테지만 7~9면은 매장 문화재라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를, 10~11면은 별로 관심이 없던 문화 현상들을 생각해볼 계기를 주었다. 이 중에서 나의 가장 많은 관심을 끈 대상은 역시 에브리타임(에타)였다. 1면 메인을 장식한 에타는 사실 나도 가끔 기웃거리는 곳이다. 비록 학교 인증을 못 받아서 겨우 제목과 본문 한줄 미리보기만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고독’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예기치 않은 손님은 뜻밖에도 ‘혼자만의 시간’을 선물해줬다. 자기만의 방에서 내면으로의 여행을 떠나도록 해 준 것이다. 소란스럽고 분주하던 일상의 속도가 안단테로 바뀌면서 보이는 풍경도 달라졌다. 제1964호 8·9면에 실린 “당신이 돌아오는 날, 다시 꽃 피울게요”는 각자의 공간에서 조금씩 지쳐가던 구성원 모두에게 보내는 봄날의 편지였다. 특히 설레는 마음으로 개강을 기다렸을 새내기들에게 위로가 되었기를. 제1964호에는 굵직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요즘이다. 그리고 온라인상에선 ‘혐오'를 조장하는 글이 자주 보인다. '우한폐렴', ‘Made in China’에 이어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댓글도 이어진다. 이렇게 우리는 암암리에 특정 대상을 향한 혐오를 마주하고 있었다. ‘미꼬라지’에서는 이러한 혐오 감정의 뿌리를 파헤쳤다. 나아가 뉴미디어면에 걸맞게 온라인상에서 팽배한 지역 혐오 감정 문제를 꼬집었다. ‘혐오 해부
최근 ‘텔레그램 n번방’사건으로 올바른 성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잘못된 성 인식과 성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학교성교육표준안」(「표준안」)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1962호에는 「표준안」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새로운 기준안 마련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며칠 전 동생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나라 성교육이 10년 전과 크게 바뀐 것이 없음을 느꼈기에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1면에 실린 세아이 중 두명은 바지, 한명은 치마를 입고 있다. 아이들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겉모습밖에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심각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역시 1만명에 육박하는 확진자가 생기고 있어 모든 학교가 개강을 연기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지난호도 코로나19 및 개강 연기와 관련된 기사가 많았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교내에 있었다는 기사를 접하고 교내 방역망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기에 흥미롭게 읽었다. 사진기획면에는 마주 보며 식사를 하지 않는 모습과 아무도 없는 중앙도서관의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대학본부가 올바른 대처를 하고 있다고 보였다. 그러나 1면에 실린 ‘통제 없는 310관 출입&r
‘2019년 중앙대 10대 뉴스’만 봐도 지난해 학생사회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학내에 어떤 부끄러운 사건들이 있었는지, 학생자치기구의 대처, 이를 가감 없이 전달하기 위한 학내보도의 노력, 그리고 학생들의 반응과 결실을 조목조목 요약한다. 최근 기사 중에는 등록금심의위원회(등심위)에 대한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등심위를 날카롭게 꼬집은 기사를 보며 고구마를 끝없이 먹다가 사이다를 들이켜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타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생 위원이 큰 역할을 하지 못하며 유학생
대학신문의 효시인 중대신문은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중앙대 구성원 소통의 장이자 정보 제공의 중요한 매체로서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 왔다. 모범적인 대학신문으로 발전하고 있는 중대신문에 박수를 보내며, 학보로서 중대신문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학내 구성원들의 의사소통의 장인 중대신문을 통해 중요한 학내 현안들에 대한 구성원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고 논의, 토론해야 함은 당연하다. 현안의 경중에 따라 일회성 기사가 아니라 심층 기획을 통해 충분한 의견들이 다양하게 논의될 폭넓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쿠르드족을 몰아내겠다며 ‘평화의 샘’ 작전을 개시했다. 쿠르드족을 보호해주던 미군이 철수해, 터키와 쿠르드족 사이의 힘의 균형이 깨진 탓이다. 단 하루 만에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수십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모든 힘은 반대의 힘과 상호 견제할 때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학교와 학생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중대신문이 꼭 필요한 이유다. 중대신문은 학우들이 알아야 할 뉴스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할 말’을 다 한다. 교내에서 발생한 나쁜 소식들도 가감
지난호에는 풍부한 읽을거리만큼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마지막 면을 읽을 때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필자는 학우들의 다양한 생각을 듣기 위해 중대신문을 읽는다고 했다. 지난호 역시 중대신문 기자들의 생각뿐만 아니라 훨씬 다양한 중앙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 한명의 중앙인의 이야기를 전한 ‘밥약하고 왔습니다’는 상당한 여운을 남겼다. 그동안 학교를 다니며 310관 편의점 사장님을 수없이 마주쳤지만 그를 궁금해 했던 적은 없다. 그러나 이제라도 알게돼 다행이라 생각한다. 남다른 편의점 운영 방침부터
요즘 장관을 둘러싸고 언론이 쑥대밭이 되면서 누구나 ‘이 기사는 나쁘다’, ‘저 기레기 좀 봐’라고 말하는 시국입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 더 중요한 것은 나쁜 언론을 비판하기보다 좋은 언론을 칭찬하고 소비하는 자세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중대신문을 칭찬하러 왔습니다. 개강호선 우산 공장이라고 놀리더니 태세 전환이 빠르지요. 그러나 지난 한 달 동안 살펴본 중대신문은 참 열심이었습니다. 지역보도면이야 작년부터 있었지만 학보사가 지역 소식을 매주 담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지역언론이나
많은 사람이 종이 신문을 과거 미디어 매체라고 생각하는 세상이다. 기술 발달로 종이 신문보다는 인터넷 기사를 읽는 경우가 많아졌다. 트렌드 변화의 대표적인 예가 뉴미디어이다. 뉴미디어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기존 매체들의 특성을 새로운 기술과 결합해 편리하고 진보된 기능을 가지게 된 미디어다. 뉴미디어의 차별성은 대화형 상호작용이다. 즉, 정보전달과 교환이 상호적으로 발생하며 미디어의 수용자가 미디어를 능동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중대신문의 뉴미디어 콘텐츠인 내세운 지난호 ‘101초 뉴스’는 지난달 30일 기준
한 주의 시작을 알리는 수많은 것 중 하나는 새로운 제목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중대신문이다. 제1951호 1면의 ‘정의되지 못한 구역’에 눈길을 빼앗겨 한 주가 시작됐다. 신문을 펼치자, 궁금했던 ‘경영학부 사물함 논란’이 곧장 눈에 띄었고, 이번 주 중대신문이 전하는 소식들 역시 꽤 흥미로울 것이라 확신했다. 또 한 번 신문을 읽어나가며 그간 궁금했던 사건들, 자칫 모르고 지나칠 수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만이 필자가 중대신문을 구독하는 이유는 아니다. 5면의 &ls
오늘날 급변하는 미디어의 생산과 소비환경에 따라 저널리스트의 역할도 변하고 있다. 과거엔 일 대 다수로 저널리즘이 시민들에게 정보를 공개했다면 이제는 다수 대 다수가 됐다. 유튜브와 SNS를 통해 누구나 기자보다도 빠르게 정보를 제공하고 소통할 수 있다. 이에 기성 언론들이 지닌 정보제공의 권한은 분산되기 시작했다. 중대신문이 담당했던 학내외 정보제공 역할 역시 에브리타임 앱을 포함한 다양한 SNS가 나눠 갖고 있다. 그럼에도 정통 저널리즘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며 학우들이 ‘알아야 할’ 뉴스를 깊이 있게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