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나는 평소 중대신문을 열심히 보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다양한 기사가 있다는 사실을 제1964호를 보며 매우 오랜만에 깨닫게 되었다. 2~4면은 일반적인 학보의 기능일 테지만 7~9면은 매장 문화재라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를, 10~11면은 별로 관심이 없던 문화 현상들을 생각해볼 계기를 주었다.

  이 중에서 나의 가장 많은 관심을 끈 대상은 역시 에브리타임(에타)였다. 1면 메인을 장식한 에타는 사실 나도 가끔 기웃거리는 곳이다. 비록 학교 인증을 못 받아서 겨우 제목과 본문 한줄 미리보기만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현재 재학생의 정서를 파악할 수 있는 곳이 에타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내 대학교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로 에타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하다. 소통이다. 다만 그 결과 중 하나가 익명성 뒤에 숨은 온갖 혐오라는 사실은 씁쓸하다.

  15면 사설이 지적했듯이 에타의 가장 큰 한계는 폐쇄성이다. 에타는 재학생 외 학교 구성원의 접근이 불가능함에도 많은 불만이 에타에‘만’ 올라온다. 많은 불만 중 상당수는 수업에 관한 불만인데, 이 역시 교수자는 볼 수 없는 에타에서만 이루어지고 여기서 끝난다. 에타에 많은 ‘문제’가 있기는 한데, 이 ‘문제’가 이렇게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가 이곳을 대학 생활에 관한 유일한 소통의 장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아무리 말해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우리끼리 분풀이나 하지.’ 그러나 에타에서 ‘우리’끼리만 하는 분풀이만으로는 상황을 전혀 개선할 수 없다. 에타에서의 불만 공유가 해방감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에타는 그 이상의 해결책일 수 없다. 현실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에타 밖에 있는 ‘우리’와 다른 존재와 마주쳐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에타 밖을 고민해보자.

오형석 강사
다빈치교양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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