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가공할 파괴와 참혹한 인명 살상을 초래하는 비극적이고 야만적인 사태다. 전투에 참여하는 병사들은 물론 무고한 민간인들이 살상되고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됨을 우리는 수많은 전쟁 사례에서 목격해왔다. 그래서 전쟁의 비극을 막으려는 이들이 움직인다. 전쟁 발발 이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미·러 양국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고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 물론 마크롱이 인도주의적 측면에서만 움직인 것은 아닐 터다. 복합적인 정치적 계산이 당연히 깔려 있을 테고 복잡한 국제정치 역학관계에
중대신문 기고 청탁을 받고 뭘 얘기할까 고민하다가 오래전 기자초년병 시절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기자가 갖춰야 할 자질이 무엇일까.” 당시 신문사 주필께서 질문을 던졌다. 취재력과 문장력이란 대답은 쉽게 나왔다. 하지만 주필은 ‘균형감각’을 강조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란 말을 덧붙였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미디어 환경도 크게 달라졌다. 하지만 세 가지 항목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본다. 특히 균형감각의 중요성은 더욱 필요하고, 강조해야 하는 부분이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 벌써 2년이 지나면서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중 하나가 소비행태의 변화와 소득·소비 양극화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소비 활동이 비대면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온라인을 통한 거래가 급증하였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체 소매업에서 차지하는 온라인쇼핑 비중이 39%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온라인쇼핑에서 플랫폼의 영향이 커지며, 플랫폼 기반의 온라인쇼핑이 대세가 되고 있다. 또한, 비대면 시대와 함께 배달시장이 급성장하며 배달의민족을 중심으로
개강이 다가왔다. 드디어 펼쳐진 대면 학사에 사람 냄새가 나는 풍경이 벌써 눈에 그려진다. 새내기들의 기분 좋은 혼란이 예상된다. 대면 학사를 처음 경험해보는 기존 재학생의 혼란도 있을 것이다. 이들을 끌어안기 위해 학교에서는 매년 교내 시설과 대학 문화를 소개하는 가이드라인을 배포한다. 학교생활의 빠른 적응과 원활한 학교 운영을 위함이다. 총학생회, 단대 학생회, 학과(부) 학생회 등 여러 단위에서 정보를 쉽게 전달하려 노력한다. 가이드라인이 가지는 의미는 그것이다. 사회의 규칙을 유지하고 소속감이 있는 단체 내에서 확실한 안정을
서울 주요 15개 대학 중 10곳이 총학생회를 구성하지 못했으며 총학생회 미구성의 가장 큰 원인은 입후보자 부재와 투표율 미충족이 대두되고 있다. 중대신문 제2005호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서울캠 또한 올해 총학생회를 구성하지 못했다. 서울캠 총학생회가 구성되지 못했다고 하니, 학생자치에 대한 걱정이 앞서게 된다. 학생자치는 교내 의사결정에서 학생들의 필요를 학교에 전달하는 가장 대표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다. 학생자치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다는 건 학생들의 목소리가 학교 운영에 반영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또한 학생자치를 이루기 위한
대학 신문은 학내 구성원들이 학내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접할 수 있는 것을 제1의 목표로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신 기술의 발달, 익명 커뮤니티 등장 등의 이유로 과거와 비교했을 때 현재 신문이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중앙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대학 신문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단순할 것이다. ‘내가 애정을 가지고 속해 있는 단체의 소식을 공정하고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다’가 주된 이유일 것이다. 총학생회, 학사 운영 등의 기사는 위 이유와 일치하며 나 또한 흥미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평가하는 일은 어느새 유별난 일이 아니다. 유별나지 않아 그대로 무뎌졌을까?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 뿌리박힌 기준, 곧 모든 경계는 녹고 있는 빙하처럼 잔뜩 틈이 벌어진 채로 깊은 골을 만들고 있다. 남과 여의 경계, 흑과 백의 경계, 노와 소의 경계. 어떤 이들은 성급하게도, 자신과 상반된다고 정의한 것들은 서로의 속에 녹아들 수 없다는 결론을 짓곤 한다. 최근 이러한 배척은 소위 말하는 ‘물타기’로 번지기도 하며 수많은 갈등을 낳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세상에
‘학보사? 그거 하면 뭐 있어?’ 지난 1년간 매주 금, 토요일을 기사 마감과 조판으로 시간을 보내는 기자를 보고 주변 지인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기자는 멋쩍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죠. 기자이기는 하나, 학생 신분에서 수행하기 때문에 학생이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학보사 조직이 대학 사회에서 위치가 애매한 점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대학본부의 행보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지만, 대학본부로부터 예산과 공간을 제공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종종 대학본부를 비판하는 논조로 기사를
수강신청 전 수업 유형 공개했어야학습권 보장하는 섬세한 계획 필요대학본부는 대면 수업 전환을 선언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약 2년 만의 일이다. 입학과 동시에 비대면 학사가 시작된 20학번 학생 일부는 3학년이 돼서야 강의실 문턱을 밟게 됐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등장으로 확진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섣부른 결정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대학 교육의 본질이 상당 부분 붕괴된 현시점에서 대면 학사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문제는 학사운영 공지가 1월 28일에 전달됐다는 점이다. 지방 혹은 해외에 거주 중인 학생들에게는
가히 인간적인 세상입니다. 정확히는 인간 ‘중심’적인 세상이죠. 인간은 스스로 자연의 일부라며 주변의 동식물과 공존한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인간은 동식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필요와 선택에 의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참 ‘인간적인’ 모습이죠. 지난 학기 뉴미디어부에서 생태적 감수성 영상을 제작하며 환경 문제에 눈을 돌렸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폐어구, 공장식 축산업 등 사진 기획을 하며 환경 문제를 꼬집었죠. 대부분 기획 기사가 그렇듯,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찾아야
중대신문 기고 청탁을 받고 중대신문 제2005호 한 부를 꼼꼼하게 읽어봤다. SNS상에 링크 형태로 올라온 기사 중 관심이 가는 것을 하나씩 읽어본 적은 있어도, 한 부에 있는 모든 기사를 다 읽어본 적은 처음인 것 같다. 그동안 읽었던 기사는 모두 중앙대 내부 사정과 관련돼서 학내 신문은 당연히 ‘학교의 소리’만 담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중대신문은 학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상의 소리’를 담은 하나의 번듯한 언론이었다. 신문 1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학생자치 기사, 새로운 을지로의
정책학에 ‘무의사결정’이라는 개념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요즘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 유행이다. 동아리 성폭력 사건에 피해자와 가해자 둘 다 학생회관 출입금지를 내리는 동아리연합회, ‘총학생회장 산하기구’ 폐지안에 입장이 없다며 자랑스레 입장문까지 내는 총학생회(총학), 교수-학생 성폭력사건에 연대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학생회. 이런 일들이 중앙대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천장 마감판 문제, 도돌이표 큰 화 막기 위해 철저한 조치 선행돼야벌써 세 번째다. 지난해 4월 310관(100주년기념관) 외부 천장 마감판이 일부 탈락했고 당해 9월 310관 외부 천장 마감재가 태풍에 흔들렸다. 대학본부는 거듭 점검했다고 말했으나 최근 또다시 같은 장소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천장 마감재 일부 모서리가 떨어진 것이다. 310관 외부 천장에 발생한 세 사고 모두 인명피해는 없었다.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운 좋게 피해를 피할 수 있겠는가. 대학본부는 이번 사고에 관해 바람이 세게 불어 발생했다며 크게 위험한
또 새로운 변이가 나타났다. 벌써 13번째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일상 앞에 다가왔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부근에서 발견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는 전 세계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일부 국가는 황급히 입국 제한 조치를 했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미뤄보아 유명무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11월 1일부터 정부가 실시한 단계적 일상회복과 연말 특수를 노린 자영업자 및 여행업 종사자들은 또다시 어려움에 빠졌다. 2년여간 지속한 거리두기로 모두가 지쳐가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혀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번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는
보도 사진이란 사진을 사실 전달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신속한 보도를 목적으로 하는 신문 또는 주간지, 월간지 등에 실리는 저널리즘 뉴스 사진을 가리킨다. 필자는 평소 보도 사진에 관심이 많기에 꼭 한번쯤 직접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보도 사진 중에서도 특히 원하는 날에 마음대로 찍을 수 없는 특별한 날의 사진을 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최근 단 하루, 오직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을 담기 위해 아침 일찍 카메라를 챙겼다. 바로 수능 당일 수험장 앞 풍경이다. 지각한 수험생들은 경찰차나 오토바이를 타고 시험을 치
‘대학언론이란 무엇인가?’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학보사에서 활동하며 끊임없이 생각했던 질문이다. 대학언론은 학내 구성원에게 다양한 소식들을 전달하는 정보통의 역할, 학생 사회의 일을 조명하고 그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비평가의 역할, 그리고 대학을 넘어 우리 사회를 비추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대신문의 첫 장을 펼쳤을 때, 중대신문은 중앙대 양캠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제2003호 와 기사에서는 학내 화재 대비 실
중앙대 학생이라면 인하대의 마스코트 ‘안뇽’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안뇽은 ‘푸앙이’와 매우 유사한 생김새에 일러스트까지 트레이싱한 듯 유사해 많은 중앙대 학생들이 푸앙이를 표절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창작물의 표절은 딱 잘라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생각해보면 용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는 강아지나 고양이 캐릭터와는 달리 대체로 유사하게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사슴 모양의 뿔, 수염, 공룡을 닮은 듯한 몸체로 용인시의 ‘조아용’ 캐릭터와
23일 아침 제11·12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씨가 사망했다. 그의 정치적 동반자였던 노태우씨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을 때였다. 전두환씨는 5.18 민주화운동 영령과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가 희생한 사람들을 향해 어떠한 사죄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전두환씨의 죽음은 면죄부가 될 수 없다. 면죄부가 돼서도 안 된다. 이미 그는 역사의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남겼고 그 역사적 부담은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는 죽어서도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씻을 수 없는 역사적 부담을 후손들에게 남기고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데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영화 속 영지의 대사입니다. 벌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몸집을 가진 조류임에도 하루에 자기 몸의 3분의 2 정도로 꿀을 먹습니다. 살기 위해 그만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고, 땅에 곤두박질치지 않기 위해 작고 얇은 날개로 숨 가쁘게 날갯짓을 하죠. 벌새의 모습에서 현실에 치여 쉴 새 없이 나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이 떠오른 건 기자의 오만한 착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