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채식, 성평등, 고용불안정, SPC 불매, 경제 상황, 아이돌 등등… 이러한 관심사에 강제는 작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오늘 당위를 부과해서라도 주장하고 싶은 관심사가 있다. 바로 ‘환경 문제’다. 현대의 우리는 ‘환경 문제’라는 키워드 자체에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시절 혹은 더 어렸을 때부터 환경파괴로 인해 미래에 닥칠 위험성에 대해 교육받아 왔다. 그렇기에 심각성을 인지한 몇몇 사람들은 일명 탄소 발자
“황지사와 그 주변 환경 전체가 곧 사찰 문화재라는 것에 현혹되어선 안 됩니다! 지방도는 결국 ‘공물’인 도로이고 그게 본질입니다!” 얼마 전 종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한 대사다. 해당 드라마에서는 우영우 변호사가 속한 로펌 한바다와 황지사가 ‘황지사의 국도에서의 통행료 징수 행위’가 위법한 행위인지를 다투는 장면이 연출됐다. 사찰의 관람료 징수 행위에 관한 문제는 비단 드라마 속의 이야기뿐만은 아니다. 실제로 필자는 속리산 국립공원을
희노애락(喜怒哀樂).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자신이 다양한 감정을 지니고 있음을 자각했다. 희(喜), 노(怒), 애(哀), 락(樂) 각각이 혼합되고 새로운 감정이 만들어지며 감정의 개수를 셀 수 없게 되자, 우리는 ‘감정 스펙트럼’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기쁨’이라는 스펙트럼의 시작부터, ‘분노’와 ‘절망’이라는 스펙트럼의 끝까지, 다양한 감정을 순서대로 나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감정의 다양성을 이유로, 같은 상황을
행복. 이렇게 원초적인 단어를 되게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그러할지도 모른다. 죽음, 삶,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고민거리들은, 성인이 된 지금은 답을 내리는 시간이 짧아진 것 같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점차 커가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과 생각들이 매번 바뀌어 가는 나를 마주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아, 나를 알아갈 수 있는 게 바로 행복이구나! 인격과 가치관을 형성해나가며 ‘나’라는 사람을 세워간다는 것이 사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원초적인 행복이 아닐까? 그 예시로,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며 더욱
코로나19는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다행히 현재 사회는 코로나19 이전과 포스트 코로나의 균형을 찾아 조화로운 미래를 그리려 노력 중이다. 사회는 개개인의 총합으로 구성된다. 각자의 상이한 도덕 원칙은 늘 첨예하게 충돌하며 ‘윤리적 딜레마’를 형성한다. 팬데믹 속에서도 이런 딜레마는 예외 없이 발생했다. 과열된 팬데믹 상황에서 조금은 벗어난 현재, ‘백신’에 대한 의견을 중립적으로, 그저 담백하게 풀어내고자 한다.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코로나19 백
혐오는 현재 대한민국 사회를 표현하기 가장 좋은 단어다. 정치적으로 이용된 지역 혐오는 오랜 기간 존재했고, 세대별로 나뉘어 ‘부족함 없이 성장해 노력하지 않는다’, ‘경제 성장기 큰 어려움 없이 사회생활을 했으면서 젊은 세대의 노력과 고통을 무시한다’며 서로를 혐오한다. 제일 심각한 건 남녀 혐오다. SNS상에서 특정 성별을 비하하는 단어로 서로를 헐뜯으며 이 같은 혐오가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사회에서의 성별 혐오는 학교로 흘러가 아이들이 남녀로 나뉘어 싸우는
‘63대 총학생회 장애인권위원회(장인위) 문집’에는 약 1년 동안 위원들이 공부하고 고민했던 모든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코로나19로 위원들끼리 대면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회의는 한두 차례 빼고 줌(ZOOM)을 통해 실시했기 때문에 소통이 잘 이뤄지지 못했다. 서로 친해지기도 어려운 상황에 우리는 오로지 ‘장애 인권’을 위해 ‘일’을 했다. 지난해 장인위는 ‘보건복지부 산하 위원회에 들어왔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업무량이 굉장히 많았다. 그럼에도 우
“진화는 진보가 아닌, 다양성의 증가다.” 이는 ‘진화는 진보이며 인간은 가장 우월한 존재’라는 전통적 관점에 반기를 든 스티븐 제이 굴드의 주장이다. 『풀하우스』에서 드러난 그의 주장을 집약한 문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굴드의 주장은 진화에는 어떠한 ‘경향’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한 경고였다. 굴드는 『풀하우스』의 독자들을 ‘로열스트레이트플러시 패’를 쥔 포커 참여자에 빗댔다. 『풀하우스』를
황량한 유령도시. 몇 년째 이어진 안성캠의 현실이다. 부지는 넓고, 학생은 적고, 투자 효과는 보이지 않는다. 학생들의 불만은 커지고 탄식은 낮게 깔린다. 황량하니 학생은 떠나고 더욱 황량해진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누군가는 떠나버린 검단캠, 하남캠을 부르짖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우리는 경기도 안성시에서 살아야 하고 안성캠을 발전시켜야 한다. 대학본부와 법인의 힘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그래서 더욱 안성시의 지원이 필요하다. 단순히 재정 문제가 아니라 법과 규제에 꽁꽁 묶여있는 수도권 대학의 현실 때문이다. 우선 안성캠은 활기가 필
‘에코백’은 생태를 뜻하는 ecology와 가방을 의미하는 bag의 합성어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생태계를 보전하자는 취지로 붙여진 이름이다. 최근 길거리에서도 에코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에코백을 일상에서 들고 다니는 건 더는 어색한 모습이 아니다. 에코백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에코백은 단순히 비닐을 대신하는 장바구니 용도가 아니라 패션의 일환이 됐다. 다양한 색깔과 디자인의 에코백이 많아졌다. 하지만 환경친화적인 이미지를 주는 동시에 예쁜 디자인으로 멋을 낼 수 있는 에코백이 역설적이
“근로는 솔직히 되면 꿀이죠. 앉아서 편하게 돈 벌 수 있잖아요. 그래서 문제 상황이 생겨도 불만을 표출하기 힘들어요. 근로장학생은 ‘을’이거든요.”교내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는 한 학생의 말이다. 교내 근로장학생이란 학내 시설에서 근무하고 시급 형태의 장학금을 받는 ‘장학생’이다. 근로장학생을 선발하는 장학제도는 한국장학재단과 대학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근로장학생은 일명 ‘꿀알바’로 통해 경쟁률이 치열하다. 시간표를 조율해 공강 시간에 근로
2020년 공대 재학생 중 여성 비율은 역대 최고치인 약 20.1%로 집계되었다. 여성 공대생이 약 1.2%밖에 되지 않았던 1980년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하지만 이러한 엄청난 발전에도 자동차공학(약 5.2%)·기계공학(약 8.3%)·항공학(약 9.5%)에서의 여학생 비율이 10%를 채 넘기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여성들이 공대를 기피하는 현상은 여전해 보인다. 한 칼럼에서는 여성의 공대 기피 현상은 남성 중심적 교육 과정과 취업 시장에서의 성차별이 원인이라 말한다. 그러나 해당 주장은 다소 억지스럽다
방학을 보내던 어느 날, 중대신문 기고 요청을 받았다. 전공을 제외하고는 관심 있는 분야가 특별히 없었기에 글의 주제를 무엇으로 할지 머리를 쥐어짜던 중, 의대 전공과목 중 인상 깊었던 ‘의사와 사회’ 과목이 떠올랐다. 이 수업에서는 좋은 의사가 갖추어야 할 자질에 대해 배웠지만, 의대생이기 전에 사회 구성원 중 하나로서 대인관계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도 많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약지 손톱 주위 피부가 곪아 병원에 가서 손톱을 뺀 적이 있다. 손톱을 빼는 것이 대단히 위험하거나 힘든 수술은 아니지만, 손톱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대학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각종 행사가 취소되는 등 서로 간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생활하였다. 그러다 보니, 신입생이었던 나에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결국, 집에서 강의만 듣고 아무런 대학 생활도 하지 않으며 한 학기를 흘려보낸 채로 방학이 찾아왔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꿈에 그리던 대학에 입학했지만, 하나의 학기를 마친 나는 반년이 지났음에도 아무 생각 없이 놀기만 했던 입시가 막 끝난 시절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느꼈다. 학교는 물론 학과에 대한 소속감도
개강이 다가왔다. 드디어 펼쳐진 대면 학사에 사람 냄새가 나는 풍경이 벌써 눈에 그려진다. 새내기들의 기분 좋은 혼란이 예상된다. 대면 학사를 처음 경험해보는 기존 재학생의 혼란도 있을 것이다. 이들을 끌어안기 위해 학교에서는 매년 교내 시설과 대학 문화를 소개하는 가이드라인을 배포한다. 학교생활의 빠른 적응과 원활한 학교 운영을 위함이다. 총학생회, 단대 학생회, 학과(부) 학생회 등 여러 단위에서 정보를 쉽게 전달하려 노력한다. 가이드라인이 가지는 의미는 그것이다. 사회의 규칙을 유지하고 소속감이 있는 단체 내에서 확실한 안정을
정책학에 ‘무의사결정’이라는 개념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요즘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 유행이다. 동아리 성폭력 사건에 피해자와 가해자 둘 다 학생회관 출입금지를 내리는 동아리연합회, ‘총학생회장 산하기구’ 폐지안에 입장이 없다며 자랑스레 입장문까지 내는 총학생회(총학), 교수-학생 성폭력사건에 연대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학생회. 이런 일들이 중앙대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중앙대 학생이라면 인하대의 마스코트 ‘안뇽’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안뇽은 ‘푸앙이’와 매우 유사한 생김새에 일러스트까지 트레이싱한 듯 유사해 많은 중앙대 학생들이 푸앙이를 표절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창작물의 표절은 딱 잘라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생각해보면 용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는 강아지나 고양이 캐릭터와는 달리 대체로 유사하게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사슴 모양의 뿔, 수염, 공룡을 닮은 듯한 몸체로 용인시의 ‘조아용’ 캐릭터와
비대면 학사가 진행된 지 벌써 두 해째다. 어느 날 학교 소식을 기웃거리던 중 310관(100주년기념관) 참슬기식당과 카우버거에서 비건 학식을 제공한다는 반가운 기사를 보았다. 이제 정문까지 나가지 않아도 비건 식사를 할 수 있게 됐구나 싶어 신이 났다. 비거니즘이란 모든 동물의 삶을 존중하고, 착취에 반대하는 삶의 방식이자 철학이다. 나는 ‘비건 지향인’이다. 시작의 순간은 이제 흐려졌다. 자연스러운 시작이었고 실천하지 못한 날도 많았기 때문이다. 종종 스스로를 비건이라 말하기 부끄러웠다. 소심하게 메뉴를 골
아플 때일수록 연결됨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해 왔다. 어릴 적 감기에 걸린 나를 간호해 주던 가족이 있었고, 체육 시간에 공에 맞아 넘어지기라도 하면 우르르 몰려와 괜찮냐고 물어주었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가족도 친구도 없는 자리에서는 낯선 타인들이 내게 대가 없는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내 몸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일수록 타인의 존재를 절실히 실감하게 된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 연결됨은 복잡한 가르침 없이도 내가 이 세상과 어떤 방식으로든 얽혀 서로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고, 돌봄이라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화가 참 많은 곳이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아주 심각한 폭력·살인사건 등의 경위는 제3자 입장에서 본다면 사소한 감정이 싸움으로 번져서 생긴 일인 경우가 종종 있다. 얼마 전에 본 기사의 내용을 예로 들어 보겠다. 사건은 택시에 탑승한 승객이 방귀를 뀌었고 택시기사가 이를 지적한 데서 시작됐다. 택시기사와 승객이 말다툼을 벌이다 결국 택시기사가 승객을 흉기로 공격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명확하지만 정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가 그 상황에서 딱 한마디씩만 덜 하고 양보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