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탐구생활: 아날로그 예술편
 
  예술은 인간이 미적 작품을 창조하는 활동이다. 하지만 창조 활동이라고 해서 거창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예술은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해왔다. 이제는 특별한 도구 없이도 나만의 스타일을 담아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여기 특출난 재능이나 값비싼 재료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예술이 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는 ‘컬러링북’. 다양한 종류의 도안도 만들어지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컬러링북을 체험해봤다.
 
 

  Chapter 1. 준비는 끝났다
  주로 강의 교재를 판매하는 중대서점에서 컬러링북을 살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혹시 컬러링북 있나요?” 뜻밖에도 두 가지의 선택권이 주어졌다. 대표적 컬러링북인 『비밀의 정원』과 우리에겐 소설로 더 익숙한 『어린 왕자』였다. 고심하다 최근에 본 영화 <어린 왕자>를 생각하며 『어린 왕자』 컬러링북을 집었다.


  영상미가 돋보였던 영화 <어린 왕자>의 장면들을 담아낸 밑그림을 보니 서둘러 채색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선 동료 기자에게 빌린 색연필을 깎아 날렵하게 만들었다. 채색을 시작하기 전 가장 중요한 것은 복잡하지 않은 그림을 찾는 것이다. 중도에 포기하고 새로운 그림을 찾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다. 요란한 준비를 마치고 오후 8시 40분, 드디어 색연필을 들었다.
 
 
 
  Chapter 2. 시작은 꼼꼼하게
  가장 먼저 어린 왕자의 트레이드마크인 금발 머리를 채색하기 시작했다. 금발 머리라고 해서 노란색으로만 머릿결을 표현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한 노랑과 밝은 노랑을 적절히 섞인 그의 특유의 금발 머리를 좀 더 세밀하게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다음 옷과 망토를 채색할 때도 심혈을 기울였다. 굽어진 팔 부분을 좀 더 어둡게 표현해 사실감을 더 살리고 싶었다. 순수한 그의 영혼을 작품에 드러내기 위해선 세심한 손길이 필요했다. ‘앗!’ 얼굴 채색을 마무리하고 보니 어린 왕자의 얼굴이 안면홍조가 뜬 것처럼 붉어 있었다. 색연필 색상을 살펴보니 연분홍색이었다. ‘괜찮아, 귀여워. 요즘 유행하는 숙취 메이크업이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채색을 이어나갔다.
 
 
 
  Chapter 3. 약간의 참을성
  채색을 시작한 지 15분이 지난 오후 8시 55분.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시작했던 마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점점 팔목만이 뻐근해질 뿐이었다. ‘리포트도 빨리 써야 하는데 그만할까’ 밀린 과제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중도 포기를 하고 싶었지만 하얀 바탕에 홀로 서 있는 어린 왕자가 안쓰러워 보였다. ‘그래. 여우는 색칠해주자’고 생각하며 다시 색연필을 들었다. 그런데 여우가 어떤 색이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결국 영화의 한 장면을 참고하기로 했다. 살펴본 장면 속 여우의 꼬리가 마치 불사조와 같아 보였다. 인상 깊었던 꼬리 부분을 살리고자 중간에 고동색을 섞어 불꽃처럼 보이도록 했다. 여우의 꼬리가 마치 불타오르는 것 같아 보였다.
 
 
 
  Chapter 4. 무성한 풀
  기자는 어린 시절 미술학원에 다닌 경험이 있다. 비록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풀이 다양한 색감을 지닌다는 것이다. 풀은 반드시 초록색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깨진 후 식물을 그릴 땐 세 가지 이상의 초록색 물감을 이용하게 됐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 그림의 핵심이 우거진 풀숲인 것 같았다. 기억을 되살려 다섯 가지 색으로 솜씨를 뽐내고자 했지만 칠해야 할 풀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걸 언제 다하지’라는 생각에 막막했지만 외로운 어린 왕자를 위해 손을 바삐 움직였다.
 
 
 
  Chapter 5. 힐링이 필요해
  오후 9시 55분, 채색에 몰두한 지 1시간이 조금 넘었다. 어느새 그림 속 풀은 생기를 찾았고 과제로 꽉 차있던 머릿속은 비워져 있었다. 처음엔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듯했지만 점차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모래를 칠하고 세세한 부분을 보정하니 꽤 괜찮은 작품이 나온 듯하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막막했던 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채색하는 동안 복잡했던 머릿속은 깨끗이 정리돼 있었다. 컬러링북을 하는 동안 쌓여있는 과제들과 다음호에 작성해야 할 기사에 대한 부담감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힐링이 필요해>라는 노래 제목처럼 우리에게 힐링은 어느덧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치유할 방법이 다양하더라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없다면 무의미하다. 그에 비해 컬러링북은 단순하면서도 즐겁다. 채색하는 과정을 통해 온전히 그림에 집중하며 복잡한 세상에서 잠시나마 떠날 수도 있다. 무채색 그림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은 특별한 노력이 필요 하지 않다. 나만의 감성을 담은 색을 칠하면 그만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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