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0km 둘레의 지구에 남긴 12,000km의 발자국
  • 박예은 기자
  • 승인 2015.09.07 0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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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쉴 휴(休), 배울 학(學). 학업을 쉰다는 뜻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이 최고의 행복인 사람은 이 단어에 만세를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단어를 마냥 좋아할 수는 없다. ‘다른 동기들에게 뒤처질까 봐, 무턱대고 휴학을 했다가 실패로 끝나 버릴까봐’ 등의 이유로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법을 알려주는 곳은 많아도 휴학을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곳은 찾기 힘든 요즘, 휴학 생활을 알차게 보냈다고 자부하는 휴학 고수들을 수소문해 어떻게 하면 휴학기간을 잘 보낼 수 있는지 한 수 배워봤다.
 
 
▲ 박성익 학생이 스위스에서 했던 텐트여행을 이야기하다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 박민지 기자
 
 
 
“2년간의 여행은 나를 정비하는 시간이었다”
 
학기 중 학점과 과제에 지친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방학 때 가장 하고 싶은 일로 꼽는 것은 단연 해외여행이다. 개인에게 특별한 추억과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여행은 상당히 매력적인 것이다. 박성익 학생(불어불문학과 2)은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여행과 일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았다. 그는 휴학 기간에 총 9개국의 나라를 여행하고 현지의 문화를 온몸으로 느꼈다. 그는 모로코 마라케시에서부터 유럽을 거쳐 러시아 이르쿠츠크까지 비행기를 타지 않고 여행하기도 했다.
 
 
▲ 많은 우여곡절 끝에 처음으로 프랑스 니스에 도착한 그. 바다의 장경을 만끽하는 그의 모습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두려움 끝에서 오는 첫 경험, 니스에 몸을 묻다
군대를 전역하고 2학년까지 마친 그는 고민에 빠졌다. 전역을 하고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까지 뚜렷한 목표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두려웠죠. 그리고 제 주변의 모든 게 절 떠밀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어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결국 그는 휴학 신청 버튼을 클릭했다. 이번에는 군 휴학이 아닌 일반 휴학으로. 그리고 워킹홀리데이 계획을 세웠다. 워킹홀리데이가 어학연수와 교환학생의 비자유효기간보다 훨씬 길었기 때문이다. 비행기 값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는 6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그를 새로운 시작으로 이끈 것이다. 다양한 체험을 하기 위해 떠난 첫 여행지는 니스였다. 그것이 그가 혼자서 한 첫 여행이자, 긴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 영화제의 도시이자 축제의 도시 칸에서 그의 친구 칸센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친구와는 아직까지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Bon appetit (맛있게 드세요)
그의 첫 일자리는 ‘김밥 말이’었다. ‘맛있게 드세요’를 외치며, 그는 니스의 길 한가운데 위치한 작은 스시 가게의 주방에서 손님이 주문한 롤을 쉴 새 없이 말았다. 사실 롤을 말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그를 아무도 채용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돈이 바닥을 보일 때쯤, 그는 겨우 길거리의 작은 구멍가게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렵게 구한 프랑스에서의 첫 직장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가게의 영업이 잘 되지 않자 사장이 가게의 문을 닫은 것이다. 겨우 3주를 일하고 그는 가게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이틀 전 집 계약 문제가 생겨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은 그로써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정말 망한 것 같았죠. 지금까지 힘들었던 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가진 것이라곤 정말 여권밖에 가진 게 없었거든요.” 절망의 늪에 빠진 그를 살린 것은 전화 한 통이었다. 절박한 마음에 주변 한국 식당에 일자리를 청탁해 둔 그에게 칸의 한국인 식당 주인이 그를 서버(ser ver)로 쓰겠다고 발 벗고 나선 것이다. 4개월간, 그는 이곳에서 한국 돈으로 약 500만 원 정도를 벌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돈을 다 사용해 버렸지만.
 
 
▲ 지도에 표시된 Irkutsk는 그의 마지막 종착지다.안타깝게도 그는 원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러시아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와야 했다.
진짜 여행은 비행기로 하는 게 아니야
그 많던 500만 원을 어디다 썼을까? 그는 여행을 떠났고 색다른 모험에 도전했다. 바로 ‘비행기 없이 여행하기’였다. 그는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한국까지 비행기를 타지 않고 가기로 했다. “니스에서 알고 지낸 프랑스인 친구가 한국인 여자친구를 보려고 자동차를 타고 한국까지 갔어요. 그 친구에게 영향을 받았죠. 멋지잖아요, 유라시아 끝에서 끝까지 횡단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재밌겠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그의 첫 출발지가 모로코 마라케시가 된 이유는 남들이 잘 안 가는 곳을 가고 싶은 그의 마음에 딱 들어맞는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최종 종착지는 한국이 아니라 러시아 이르쿠츠크였다.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비행기를 타는 것이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서 기차와 배를 타는 것보다 더 저렴했던 탓이다. 많지 않은 돈으로 여행하는 상황에서 그가 어쩔 수 없이 내린 선택이었다.
 
 
그러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활동’에 초점을 맞춰 보다 활동적인 여행을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모로코에서 러시아까지 가는 길에서도 도전을 계속 했다. 그는 인라인스케이트를 신었다. 그리고 프랑스와 스페인을 여행했다. “여행광인 친한 친구가 자전거 여행을 했어요. 그런데 그 여행은 힘들어 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저는 자전거를 못 탔거든요. 그래서 자전거 대신 인라인스케이트를 탄 거죠.”
 
‘텐트 여행’도 했다. “일주일 정도 스위스 산꼭대기에 텐트를 치고 머물렀어요. 그런데 너무 추워서 밤에는 맥주를 한 잔씩 마시고 잠을 청했죠. 결국 추위를 참지 못해 마지막 날에는 어둠을 틈타 어떤 집 옆에 몰래 텐트를 쳤어요. 그런데 다음 날 새벽기차 안에서 이웃집 아저씨와 딱 마주친 거예요. 그분이 저를 알아보시는 바람에 얼떨결에 인사를 나눴는데 혼내기는커녕 오히려 격려해주셨어요. 자신도 젊었을 때 러시아에서 야영을 했기 때문에 다 이해한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때 좀 감동받았어요.”
 
 
▲ 독일 뮌헨에서 했던 버스킹(busking) 직후에 찍힌 사진이다. 승리의 브이를 날리는 그를 보니 공연이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독일에서는 버스킹(busking) 공연에 도전했다. “프랑스에서 만난 독일인 친구를 만나러 뮌헨으로 갔어요. 그 친구와 방문한 아이리시 펍(pub)에서 가수가 노래하는 것을 봤어요. 그 모습을 보니까 노래가 너무 하고 싶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우연히 머물던 야영지에서 기타를 가진 한국인 친구를 만난 거예요. 그래서 즉흥적으로 그 친구와 그 자리에서 한국 노래를 부르며 공연했죠.”
 
당시를 회상하는 그의 입에서는 아주 극적이고 영화 같은 이야기도 나왔다.“라트비아 리가에서 러시아로 가려고 할 때였어요. 유럽 비자가 끝나는 날에 맞춰서 러시아로 들어가려고 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리가에서 러시아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었어요. 1시간 차이로 제 비자가 통과가 안 되니까 버스 회사에서 저를 안 태워주려고 하더라고요. 하는 수 없이 호텔 바(bar)로 가서 맥주를 먹으며 막막한 심정을 억누르고 있었는데 아는 지인에게 어떤 사람이 러시아에 갈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러시아에 넘어간다는 사람에게 연락을 넣었죠. 그리고 30분 동안 뛰어가서 그의 차를 얻어 타고 러시아 국경을 넘었어요. 그 30분이 어찌나 초조하던지.”
 
 
▲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호스텔에서 그는 깊은 사색에 빠져 있다.
 
여행이 찾아준 진짜 나
궁금했다.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무엇을 얻고 무엇을 느꼈는지. “만약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고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으면 과감하게 떠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여행한 지역도 발길에 이끌려 즉흥적으로 간 곳들이거든요. 과감하게 떠나는 것이 진정한 ‘자율’의 의미를 실현하는 데 좋을 것 같아요. 용기가 부족한 사람이라면 자율에 맞서서 두려움과 싸워보는 것도 괜찮죠.”
 
휴학을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그는 짧고 굵은 한마디를 날렸다. “절대 아무 계획 없이 나가지는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계획이 있어야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거든요. 특히 저처럼 해외에 나가게 된다면 뭘 하겠다는 계획은 세우고 나가야 할 것 같아요.”
 
‘휴학생’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취업 준비’라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요즘, 그는 말한다. “휴학하면서 취업 준비를 하는 것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아요. 다만 취업 준비생의 휴학은 정확한 목표를 갖는 시간이어야 할 것 같아요. 먼저 자신감을 갖고 자신을 파악해야 해요. 그리고 나중에 하게 될 직업에 관해서도 구체적으로 알아보세요.”
 
그의 인생에서 휴학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에게 휴학이란 ‘빨래하는 날’이라고 생각해요. 여행을 하면서 빨래하는 날은 배낭 속을 정리하고 일정을 체크해서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는 날이기도 했거든요. 이 휴학도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정리하면서 인생의 배낭을 정비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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