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사람과 서슴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 다양한 이들과 소통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 박혜인 학생(정치국제학과 3)은 13개월간 ‘라디오대학가’의 DJ로 활동하며 하루 평균 200여 명의 청취자들과 소통했다. 이제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는 20대부터 40대라는 다양한 연령층의 청취자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한국기독학생회(IVF) 주관 ‘전국리더대회’에서 사회를 맡아 역량을 입증하기도 한 그녀. 졸업 전 마지막 휴학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소중한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그녀에게서 휴학의 본보기를 찾아 보았다.

▲ 헤드폰을 끼고 있는 그녀에게서 싱그러움이 느껴진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왠지 모르게 ‘선하다’는 인상을 받은 것은 앳되고 차분한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기자의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화 내내 그녀는 사랑과 사람, 진심을 말하고 있었기에. 졸업 후에 기자가 되고 싶다는 박혜인 학생은 휴학 기간에 라디오 DJ 활동을 하며 꿈을 향한 성숙함을 다졌다. 들을수록 따뜻해지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소녀, 꿈을 품다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주인공 기하명의 아버지는 화재 진압 중 실종되고 그를 제외한 모든 소방대원은 현장에서 순직하고 만다. 언론은 실종된 아버지를 본 것 같다는 불확실한 제보 한 통에 하명의 아버지를 향한 마녀사냥을 시작한다. 한순간에 동료를 버리고 도망친 배신자가 된 그. 여론의 비난 속에 하명의 가족은 고통을 겪는다. 어른이 된 하명은 언론에 대한 복수심을 품고서 오로지 진실만을 좇는 기자가 된다.

 그녀가 기자를 꿈꾸게 된 이유는 하명과 닮아 있다. “지난해 사촌 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정당 활동을 했던 언니의 죽음은 언론의 관심을 받았죠. 무수한 기사들이 쏟아졌고 언니의 이름이 인터넷 포탈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렸어요. 자극적인 제목과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일에 대한 추측성 보도, 기사 아래로 달리는 악성 댓글들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 일은 그녀 인생 최대의 전환점이 되었다. 언론에 대한 혐오감으로 한동안 뉴스나 인터넷 기사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그녀는 마침내 고통 속에서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찾아냈다. “정직하고 공정하게 보도하는 기자 몇 명만 있어도 사람들이 기사 때문에 쉽게 상처받는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로가 확고해진 그녀는 한 박자 쉬면서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기 위해 3학년 1학기를 휴학했다.

토닥토닥 괜찮아, 사랑이야
 휴학 기간에 주력한 것은 한국기독학생회(IVF)에서 주관하는 ‘라디오대학가’의 DJ 활동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통하는 것이 기자의 능력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지난해 여름, 평소에 즐겨듣던 라디오대학가의 DJ 활동에 지원했다. “라디오 부스에 들어간 첫날은 그리 긴장되지 않았어요. ‘내가 진짜 라디오를 진행하는 건가?’ 당일까지도 긴가민가했죠. 제 목소리가 실린 첫 방송을 듣고 난 후에야 실감이 났어요. 신기해서 틈날 때마다 몇 번이고 제 방송을 다시 들었죠.”

 집에서 쉴 때나 버스 안에서나 틈틈이 첫 방송의 재생 버튼을 누른 것은 그만큼 방송에 대한 애착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방송에 담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잠시 수줍어하던 그녀는 이내 당당하게 말했다. ‘사랑’이라고. “지루하게 느낄 수 있겠지만 ‘사랑’을 전하고 싶었어요.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이 많아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결국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죠. 그런 이들에게 ‘지금 잘하지 못해도,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 대신 너 자신을 사랑하며 방향을 찾아가’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청취자들이 쉬어갈 수 있는 방송을 만들고자 노력했죠.” 우리는 모두 존재 자체로 귀하고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라디오대학가의 방송 목표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사랑을 건네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획의도와 가장 잘 맞아떨어진 방송은 ‘미세먼지 특집’이었다. ‘이 넓은 세상 속에 나는 미세먼지처럼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이름으로 모인 출연자들. 그런데 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들만의 가치관과 철학이 엿보이더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출연자는 메이크업 동영상을 올리며 ‘뷰티 유투버’ 활동을 하시는 분이에요. 외모 콤플렉스가 심했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깨닫고 자존감을 회복하셨죠. 경험담을 토대로 외모보다 중요한 마음 가꾸는 법을 알려주고 계셨어요. 대화할수록 참된 아름다움이 느껴졌죠.”

 방송을 통해 전달하려는 가치가 특별했던 만큼 그녀는 진행뿐만 아니라 기획 단계부터도 심혈을 기울였다. 방송 주제와 그에 맞는 출연자를 정하기 위한 회의는 치열한 고민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재밌어서 시작한 일이지만 활동할수록 부담감도 커져만 갔다. “진정한 고민 없이 당장 유행하는 소재나 기존 방송에서 한 보편적인 얘깃거리를 주제로 선정할 수는 없었죠. 그러다 6월 즈음엔 위로를 건네야 하는 우리가 오히려 지쳐버렸어요. 거짓으로 방송할 수는 없다고 판단해서 아예 한 달간 방송을 쉬었죠.” 그녀가 속한 라디오대학가는 가벼운 세상 속에서 묵직한 가치를 추구할 줄 아는 듯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휴학은 라디오 DJ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며 점차 소진되어가던 그녀가 더욱 진정성 담긴 방송을 만들 수 있는 ‘쉼’이 되었다. 방송을 통해 사람들에게 위로와 사랑을 건넨 지도 어느덧 1년. 매번 녹음 때마다 가장 신경 쓴 것은 ‘말’이다. 무심코 한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와 열등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항상 겸손한 자세에서 신중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차분한 진행에 알맞은 목소리는 고마운 장점이었다. 영리하게도 그녀는 타고난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법까지 알고 있었다. “목소리는 진심을 전달할 때 가장 가치 있게 들린다고 생각해요. 빈껍데기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죠. 평소에도 빈말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요.(웃음)” 

 라디오 DJ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무엇보다도 ‘방송 재밌게 잘 들었어’라는 한마디를 들을 때다. 누군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라디오대학가 페이스북 페이지로 한 군인 분께서 메시지를 보내주셨어요. 군대 생활이 너무 힘들었는데 방송을 들으며 많은 위로를 받고 요즘은 힘들 때마다 기도하고 있다고요. 방송을 만든 저희 모두가 뿌듯한 순간이었죠.” 

 이번학기를 마지막으로 정들었던 DJ 활동을 마무리하려는 그녀는 지난 1년간의 DJ 활동을 후하게 평가했다. “잘한 것 같아요.(웃음) 저 자신도 방송하는 내내 따뜻함을 많이 느꼈어요. 사연마다 그분들의 진심이 보이기도 했죠.” 라디오만의 매력을 묻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서로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라고 답한다. 중학생 때부터 CBS 라디오 방송인 ‘허윤희의 꿈과 음악 사이에’를 지겹게 들은 그녀는 얼굴도 모르는 DJ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왠지 오랫동안 알고 지낸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보이지 않지만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어요. 지금까지도 일부러 그분 얼굴을 찾아보지 않고 있어요.(웃음)” 자신도 그처럼 ‘사람을 가치 있게 여길 줄 아는’ DJ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4학년을 앞둔 그녀는 이제 기자가 되기 위한 준비에 집중할 계획이다. 차분하지만 똑 부러진 그녀에게서 이미 기자의 면모가 느껴졌다. 기자를 꿈꾸는 그녀에게 라디오 DJ 활동은 어떤 자양분이 되었을까. 그녀는 무엇보다 ‘사람의 가치’를 다시 한 번 깨달은 듯했다. “기사란 결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생겨나는 거잖아요. 하지만 기자라는 이름으로 글로 된 폭력을 행사하는 때도 많아요. 저는 어떤 사안이든 사람을 존중하는 기자가 되고 싶어요. 비난이 아닌 제대로 된 비판을 할 줄 아는.” 

나를 사랑하는 시간, 휴학
 인터뷰 끝에 다다르자 그녀는 가장 좋아하는 문장 하나를 소개했다. ‘번지점프를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뛰어내리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잘 몰랐었는데 저 또한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컸더라고요. 세상을 향해 손을 조금만 뻗으면 되는데 너무 주저하며 살지 않았나 싶어요.” 혼자서 하는 공부는 잘하지만 막상 세상에 뛰어드는 것은 어려워하는 요즘 학생들에게 그녀는 한 번만 두려움을 깨면 뭐든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아찔한 높이의 번지점프대에서 용기를 내듯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세상에 몸을 내던져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저는 2학년이 끝나갈 때까지 대외 활동 경험이나 소위 ‘스펙’이 될 만할 것이 없었어요. 무엇을 하고 싶다는 뚜렷한 꿈도 없었죠. 하지만 마음이 가는 대로 차근차근 시도해보니 결코 늦은 게 아니더라고요.” 

 약 6개월의 휴학을 통해 비로소 공허할 틈 없이 꽉 찬 ‘진짜 나’를 찾은 그녀는 휴학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졸업하기 전에 한 번쯤 휴학을 꼭 해봤으면 좋겠어요. 진짜 나를 찾는 경험은 학교 밖에 있는 경우가 많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결국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면 좋겠어요.”

수고했어, 오늘도

▲ 라디오대학가를 만들어가는 소중한 동료들과 10월의 출연자들(뒷줄 왼쪽 두 번째부터 세 사람).

아직은 ON-AIR 전

▲ 10월의 첫 녹음 날. 공동 DJ를 맡고 있는 언니(왼쪽)와 스튜디오에서 한 컷.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