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에 집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단기간에 최대한 집중해서 최고의 결과를 만드는 것은 더 힘들다. 그런데 오자환 학생(디지털이미징전공 3)은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로봇 하나를 만들었다. 로봇 만드는 것이 도깨비방망이 한 번 휘두르는 것처럼 뚝딱 되는 것도 아닌데,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을 단기간에 해낸 것이다.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었는지 그를 만나 들어보기로 했다.

 

 
▲ 오자환 학생이 핀란드에서 자신이 만든 로봇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분 1초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아
만들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만화영화에서 나오는 ‘아톰’은 비현실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한 지금은 인간과 닮은 로봇들을 현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들은 두 발로 걷고, 달리고, 춤추는 등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인간만큼 정교하고 세밀한 동작까지는 수행하지 못한다. 손가락을 구부리고 펴는 것이 로봇에게는 어려운 일인 것이다. 오자환 학생(디지털이미징전공 3)은 실제 인간 손처럼 정교한 로봇손 만들기에 도전했다.
 
군인에서 로봇공학자로 직업바꾸기
당시 군인이었던 그는 민간인이 되는 기쁜 날을 몇 달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군 생활을 마쳐도 복학까지 5개월의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시간을 그냥 허비하고 싶지 않아서 전역한 후에 할 일을 계속 고민했죠. 그러던 중 학과 홈페이지에서 ‘2015년 핀란드 IT인턴십 프로그램’을 보고 바로 이거다 싶었어요. 재밌어 보이기도 하고 제 전공도 응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인턴십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됐어요.” 이 인턴십 프로그램은 매년 여름마다 있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이다. 올해 선발된 학생들은 6월 1일부터 8월 30일까지 3개월간 핀란드의 ‘Elect-ria’라는 기업에서 진행하는 로봇손 개발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지원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력서와 면접으로 이루어지는 선발과정에서 영어면접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력서는 영어를 잘하는 군대 동기와 후임들에게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써냈지만 영어 면접은 쉽지 않았다.

드디어 면접날, 상황은 처참했다. “같이 지원한 사람들은 모두 영어권에서 살다 와서 영어를 한국말처럼 잘하는데 한국 토박이였던 저는 표현이 서툰 데다 말까지 더듬었어요. 면접관이랑 마주 보고 하는 면접이 처음이고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사회 적응하기도 힘들었을 때였거든요.” 그러나 그는 주눅 들지 않고 면접관의 질문에 솔직한 대답을 이어갔다. 이런 진정성 있는 모습 덕분에 2주 뒤 그는 호수의 나라 핀란드로 떠나게 됐다.
 
 
▲ 그가 일했던 핀란드 회사 사무실이다. 동료들과의 활발한 회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창의력을 자극했다.
 
 
손가락 움직이는 게 이렇게 힘들다니
그는 로봇손 프로젝트의 제어파트에서 일하게 됐다. “보통 로봇손은 조이스틱이나 장갑을 이용해서 조정하기 때문에 물리적 접촉이 항상 있기 마련인데 ‘Remotion’이라는 카메라 기반 센서를 사용하면 사용자 손에 직접 닿지 않고도 조정할 수 있죠.” Remotion 센서를 사용하는 것은 그의 아이디어였다. “제 전공인 디지털이미징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하고 싶더라고요. 컴퓨터가 마치 사람처럼 사물을 인식하는 ‘컴퓨터 비전(Computer Vision)’이라는 기술이 있어요. 제가 회의에서 이 기술의 일부인 Remotion 센서를 사용하자는 의견을 냈더니 일이 그쪽으로 진행됐죠.”

그는 Remotion 센서를 이렇게 설명한다. “제가 손가락을 하나하나 움직이면 옆에 있는 remotion 센서가 움직임을 인식하고 정보를 만들어내요. 그럼 그 정보가 손가락을 움직이는 모터에 전달되어 손가락이 움직이는 거예요.”

프로젝트에 합류한 그의 마음가짐은 남달랐다. “2년 동안 저는 학교 공부를 쉬었잖아요. 그래서 예전의 감을 되살리려고 열심히 노력했어요. 프로그래밍을 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관련 자료들을 찾아 읽었죠. 특히 Remotion의 하드웨어적 성질들을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는 ‘3개월 동안 열심히 해서 제대로 된 로봇 하나라도 만들고 가자’라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루어 로봇손의 손목 부분까지 데모버전을 만들었다.

그러나 손목 부분까지 만들었다는 것이 완성은 아니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로봇제작의 장벽은 너무 높았다. “겉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실제로는 어려운 과정이에요. 손가락만 움직여도 고장 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손 전체가 움직이게 하는 건 정말 어렵죠. 고장이 날 때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생각하면서 부품이나 모터를 바꿔보고 계속 확인해야 해요. 그렇게 하나하나 만들다 보니 손목까지밖에 완성하지 못했어요.”

그가 만든 로봇손이 사회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궁금했다. “현재 로봇손은 굉장히 비싸서 저희는 3D 프린터를 이용하여 비용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싶었어요. 부품을 3D 프린터로 인쇄한 뒤 조립하는 방법으로 비용을 줄이는 거죠. 학생들이 로봇팔로 수업을 하고 사고로 팔이나 손을 잃은 사람들이 로봇팔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길 원했어요. 장기적으로 로봇손은 의료와 교육 분야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로봇이에요.”
 
▲ 로봇손이 완성되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3개월은 멋진 작품이 탄생하기에 짧은 시간이었다. 손과 지지대 부분만 만들어지고 팔부분은 만들지 못했다.
 
 
트롤의 혀 위에 올라서다
그의 말대로 3개월은 긴 시간이 아니었지만 많은 경험을 하기에 충분했다. 동료의 ‘Summer Cottage’에도 초대받았다. “Summer Cottage는 핀란드 사람들이 가족들과 여름 휴가를 보내는 숲 속의 개인별장이에요. 핀란드에서는 자기 가족의 여름별장이나 사우나에 초대하는 것을 최고의 대접이라고 생각해요.” 핀란드 사우나도 인상 깊었다. “핀란드 사우나에는 오븐 같은 게 있어요. 사람들은 오븐 위에 돌을 올리고 불을 때워요. 그리고 난로가 뜨거워지면 자작나무가 담겼던 물을 돌 위에 뿌려요. 그러면 뜨거운 수증기가 생기는데 그걸 쐬는 거죠.”

주말에는 주로 여행을 다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로 그는 ‘트롤의 혀’를 꼽았다. “노르웨이에서 유명한 피오르드 산맥에 혀처럼 생긴 곳이 있어요. 그곳을 ‘트롤퉁가’라고 부르죠.” 이곳에 오르기 위해 무려 8시간 동안 진흙탕을 걸었지만 그는 이곳을 최고의 여행지라고 말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만난 사람 중 여기서 만난 친구들이 가장 좋았거든요. 히치하이킹을 3번이나 같이 했고 돈이 없어서 빵 하나를 나눠 먹은 적도 있어요. 지금은 정말 좋은 추억으로 남았죠.”
 
▲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네 명의 친구가 노르웨이 트롤퉁가에서 만나 여정을 함께 했다. 만약 혼자였다면 8시간의 산행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안개 자욱한 숲길 걸으며 찾는 것은 ‘꿈’
주변에서 종종 전공과 적성이 맞지 않는 학생들을 발견하곤 한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는 전공과 원하는 것이 일치했다. “진로를 정하는 것은 안개 때문에 앞이 안 보이는 숲 속을 걷는 것과 같아요. 그런 과정을 겪다 보면 결국 어떤 방향을 찾게 되죠. 저도 계속 진로를 고민하다가 제 길을 발견했거든요.” 그리고 자신의 전공 이야기를 했다. “사실 처음에는 의료기기를 만들고 싶어서 바이오 전공을 희망했는데 막상 전공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디지털이미징에 관한 설명을 들었어요.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죠. 영상에 공학적인 기술을 적용해 새로운 기술을 만든다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왔거든요.”

졸업까지 이제 1년 반이 남았다. 복학을 기다리는 5달이라는 시간이 길다고 생각했던 그였기에 졸업까지의 1년 반은 무엇을 할 예정인지 궁금했다. “저처럼 이쪽 분야를 좋아하는 후배가 있어요. 그래서 그 후배와 함께 카메라나 영상과 관련된 어플을 만들어보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지금은 열심히 아이디어를 짜고 있죠.”

어떻게 하면 단 한 순간도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성공적인 휴학생활을 할 수 있는 걸까. “휴학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렸어요. 졸업이 늦어지는 것이 두렵지만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휴학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어요. 반면 게으름과 나태함에 빠져버리면 정말 후회스러운 시간이 될 수도 있죠.” 이런 말도 덧붙였다. “휴학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방학 때도 도전할 시간이 충분히 있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직접 어딘가에 가보고 눈으로 보는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한 번쯤은 학교에서 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자신을 잘 정비해서 휴학을 하면 분명 충분한 가치가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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