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가 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는 20대 청춘이 있을까. 유럽으로 가 축구 구단주가 되는 것이 서강혁 학생(독어독문학과 4)이 50살에 이루고 싶은 꿈이다. 그는 휴학 기간에 차근차근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했다. 영국 어학연수를 통해 축구팀을 만들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에이전트 활동을 했다. 그를 직접 만나 그의 꿈과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단정한 옷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한 서강혁 학생.
 


청춘을 위한 슛!
행복을 향해 골인I

 
 

마치 ‘선생님’ 같은 외모, 단정한 옷차림과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목소리는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운동을 단순한 취미생활로 여기는 오늘날의 청년들과는 다르게 그는 축구를 통해 인생의 소중한 경험치를 쌓았다. 축구의 종주국, 영국에서 축구팀을 결성하고 독일에선 한국인 축구선수의 에이전트가 되었다. 열정과 꿈만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를 만났다.
 

영국으로 축구 휴학 가기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3학년 2학기를 마치고 어학연수를 가기로 결심한 그는 행선지를 ‘영국’으로 택했다. 평소 좋아하는 축구를 필드에서 좀 더 가까이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축구가 좋아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는 10살의 나이임에도 새벽 2~3시까지 기다렸다가 축구 경기를 봤던 그였다. ‘될까, 안될까’가 아니라 ‘후회할까, 후회하지 않을까’를 고민하던 그가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과감한 도전을 했던 것이다.
▲ 포츠머스 대학교의 푸른 잔디가 인상적이다. 영국이 왜 축구의 나라인지 알려주는 듯하다.
영국 ‘LSI 포츠머스’ 어학원에서 공부하게 된 그는 뛰어난 친화력으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그중 특히 친하게 지낸 친구는 존이라는 선생님이었다. 축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그들은 금세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존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저한테 축구팀을 만들어서 대회에 나가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존이 감독을 하고 제가 주장을 맡아서 팀을 만들게 되었죠.” 그들은 원래 있던 축구 동아리에서 우수한 선수들을 뽑아 ‘LSI Football Team’을 꾸리고 훈련을 시작했다.

그는 원래 공격수였지만 이 팀에서는 주로 수비를 맡았다. “많은 친구들이 공격을 하고 싶어 해요. 그러다 보니 수비에 빈자리가 생겨 그곳에서 뛰게 됐어요. 저는 어느 자리에서 뛰든 즐거우니까요.” 그는 주장으로서 자신만의 리더십을 발휘해 팀을 이끌었다. 권력을 쓰는 것이 아니라 배려를 먼저 한 것이다. “주장이라고 해서 뛰고 싶은 포지션만 뛰면 팀 안에서 불만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최대한 선수들이 원하는 포지션에서 뛰게 했죠.” 이런 리더십 덕분이었는지 그의 축구팀은 포츠머스 대학교 주최로 열린 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 포츠머스 대학교에서 개최한 대회에서 LSI Football Team이 준우승한 기념으로 한 컷.
 

새로운 무대를 찾아
영국에 있으면서 관람한 축구 경기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했다. 시차로 인해 한국에서는 새벽에 볼 수밖에 없었던 유럽 축구 경기를 영국에서는 대낮에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그는 포츠머스에 있는 ‘포츠머스 FC’라는 축구팀의 경기를 자주 보았다. 이 팀은 우리나라에서는 아마추어 경기로 치부되는 4부 리그에 속한 팀이었지만 오히려 그는 이런 부분에서 팀의 가치를 발견했다. “비록 4부 리그지만 1년 평균 관중 수가 우리나라 1부 리그 평균 관중 수보다 많았어요. 그런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경기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경기 관람에서 그치지 않고 그는 한국에서 기회를 잡지 못한 선수들을 본격적으로 유럽에 진출시키고자 마음먹었다.

축구선수 에이전트가 되어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기로 결심한 그는 우선 함께 할 사람들을 찾아 ‘리버스 팩토리’를 만들었다. 영상 편집을 해 줄 친구, 에이전트 쪽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선배, 선수의 실력을 전문적으로 평가해 줄 전직 축구 선수를 섭외했다. 다음으로 유럽에 보낼 선수를 선정했는데, 기준은 3가지였다. 첫 번째는 외국 여행 경험이 있어야 했다. 옆에서 챙겨줄 직원을 붙여줄 수 없으므로 선수 혼자 외국 생활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군대 문제가 해결돼야 했다. 마지막은 포지션 상 왼발잡이 수비수를 뽑았다. 세계적으로 왼발잡이 수비수는 많지 않아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마침내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두 명의 선수를 만났고 그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

그는 선수들을 진출시킬 나라로 독일을 선택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축구 시장인 영국과 독일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독일에 저희 선수들을 보내기로 했어요. 영국은 취업비자 받는 과정이 까다롭고 복잡하지만 독일은 외국인들의 비자 기간 연장이 무한정 가능하거든요.”

초기에 그의 꿈을 듣고 ‘과연 가능할까’라며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막연한 계획에 대해 불안하지는 않았는지 물어보니 그는 대답했다. “저는 마음먹은 것은 되든 안 되든 무조건 해요. ‘이거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면 생각으로 남겨두지 않아요.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후회가 남으니까요.” 그리고 말을 이었다. “물론 계획한 것을 할 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많죠. 하지만 예상치 못한 좋은 일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많아요.”
 

실패했지만 뿌듯한 플랜 A
실제로 차근차근 일을 준비하던 와중에 예상치 못한 좋은 기회가 다가왔다. 방송국으로부터 출연 제의가 온 것이다. 그들이 출연할 방송은 KBS Joy의 ‘우리가 응원한다! 청춘하라!’로 꿈에 대한 청춘들의 발표를 듣고 방청객이 투표를 해서 우승자에게는 상금을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2주간 치열하게 준비하며 최선을 다했다. 방송에서 말할 내용을 빠르게 말하며 입에 익숙해지도록 연습했다. 빨리 말하는 습관이 생길 정도로.

성공은 노력하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결승에 올라간 그의 팀은 방청객들의 투표로 1등을 차지했다. 상금 1000만원도 받았다. “저희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진정성’밖에 없었어요. 왜 이 일을 해야 하고, 왜 이 일이 가치 있는지,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는지 얘기했어요.” 돈이 부족해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그들은 상금을 받은 덕분에 독일에 갈 수 있었다.

독일로 떠나기 전 많은 계획을 세웠지만 안타깝게도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두 명의 선수를 독일 구단에 입단시키겠다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저희가 독일에 너무 늦게 갔어요. 저희가 갔을 때는 대부분의 구단이 이미 선수계약을 완료해 자리가 없었거든요. 입단 시기를 꼼꼼히 알아보지 못하고 간 것이 결정적인 실패 요인이었죠.”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저는 플랜 B를 바라보지 않고 플랜 A를 성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요. 결과적으로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했으니 이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하겠죠. 그런데 저는 제 생활이 영위되지 않고서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일단 취업 준비를 하며 무엇을 더 할지 생각해보려고 해요.”
 

20대의 특권은 여유
처음 그가 영국으로 떠나던 날, 친한 형이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네 인생에서 그렇게 여유로운 시간은 없을 거야.” 형의 말처럼, 그는 휴학 생활의 여유로움을 만끽했다. 그래서 주변의 졸업을 빨리하려는 학생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고 했다. “대학생일 때 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해 본 것 같아요. 대학생만의 특권이 많은 한국에서 학생들이 경험치를 많이 쌓았으면 좋겠어요.”
그는 말한다. ‘사막에서 자동차가 잘 달리려면 타이어에 바람을 빼야 한다’고. “어려움을 만났을 때나 삶이 빡빡할 때는 쉬어가는 것이 좋아요. 힘든 사람들한테 힘내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인 것 같거든요. 힘을 낼 수 있었으면 진작에 냈겠죠. 그럴 때는 휴식을 취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 영국에서 만난 친구들과 음료수를 마시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학생활을 즐겁게 보내고 싶지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학생들을 위해 그가 조언했다. “버킷리스트를 써 보세요. 진짜 사소한 것부터 하고 싶은 것 100개를 써보는 거예요. 이것을 생각하다 보면 다 못 채우더라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게 돼요. 왜냐하면 내가 하고 싶은 것부터 썼을 테니까요.”

그의 최종 목표는 ‘행복한 삶’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하루가 행복해야 한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 나중에 행복해질 수는 없어요.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 나 자신을 희생하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하루 종일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내 행복을 위해 투자할 시간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비전이나 가치관들을 통해 미래의 막연한 행복이 아닌 지금의 행복을 느끼면서 살고 싶어요.” 
 
▲ 국적은 다르지만 어학연수라는 공통점을 가진 친구들이 다같이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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