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유가는 이상론에 불과”
공자 “정의는 법이 관할 할 수 없는 진심의 영역”

  ‘부러진 화살’이란 영화가 화제이다. 독립영화나 마찬가지인 저예산 영화에 3백만명이 넘는 사람이 몰린 데엔, 우리 사회의 법 집행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기폭제가 되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사법부의 불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함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물음을 던지고 있다. 법 집행이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면 그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인가. 동양철학에서 이 문제는 가장 중요한 쟁점 중의 하나이다.
  『논어』엔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온다. 섭공이 공자에게 말하기를, ‘우리 고장에 정직한 사람이 있는데, 그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관에 그 사실을 고하였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공자는 “우리 고장의 정직한 사람은 이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하여 숨기며, 자식은 아버지를 위하여 숨기니, 정직함이란 그 안에 있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공자는 ‘정직함’이란 사람의 순수한 정감이 그대로 표현된 것이라고 보았다. 아버지가 남의 양을 훔쳤으면, 그 자식은 그 사실이 밖으로 드러나기를 바라지 않는 게 정상이다. 자기 아버지가 양을 훔쳤다고 고발하는 것은 인간의 정서를 위반한 것으로 이를 정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유가에게 있어 ‘정의로운’ 사회란 이처럼 부자(父子), 형제 간의 도덕적 정감에 기초한 것으로, 구성원들의 내면적 자율성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이에 비해 법가의 대표적 인물인 한비자(韓非子)는 공자와는 전혀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여기 한 자식이 있는데, 부모가 그에게 화를 내어도 고치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이나 선생의 지혜로도 그를 털 끝 하나 변화시킬 수 없었다. 관청의 관리가 관병을 거느리고 공법(公法)을 근거로 꾸짖은 연후에야, 태도를 바꾸고 행실을 바꾸게 되었다. 부모의 사랑이 자식을 가르치기에 충분하지 못하고 관청의 엄한 형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백성이란 사랑해 주면 교만해지고 위세로 눌러야만 말을 듣기 때문이다.”(『한비자』「오두)」) 법가는 인간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부모의 애정은 자식들을 올바르게 만들기보다는 망치기 쉽고, 사회가 올바로 유지되기 위해선 엄한 형벌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고 보았다. 그들에게 있어 유가의 이상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이상론에 불과한 것이었다. 한비자의 사상을 현실 정치에서 실행한 상앙은 차별 없는 법의 엄격한 집행을 통해, 진 나라가 전국 시대를 통일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역사적 사실로 볼 때, 공자의 유가는 법가의 현실론에 굴복한 셈이다. 
  오늘날에도 유가의 윤리적 정치 이론은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다만 ‘정의’ 개념을 사회 문화적 측면으로 확대해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정의로운 사람’이나, ‘의에 죽고 참에 살자’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이 때 ‘정의’는 개인의 도덕적 품성과 자질을 가리키며, 이에 부합하지 못한 사람은 공공연한 비난 대상이 된다. 즉 정치 영역에선 이미 사장된 유가적 정의관이 사회문화적으론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정의’는 법 제도의 영역보다 구성원의 내면적 정직성에 있다고 믿는 우리 사회의 사고 방식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유가와 법가의 정의관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연도 (교양학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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