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
“천하는 모든 사람의 것”
소강
“예를 기강으로 군신 관계 확립”

 올 초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은 종영이 된 후에도 적지 않은 여운을 남겼다. 작가가 후일담에서 한 얘기가 기억나는데, 원래 마지막 회에 반란을 도모한 ‘윤대형’(김응수 분)이 생포된 후, ‘이훤’(김수현 분)과 정치에 대해 논쟁하는 장면을 구상했었다고 한다. 그 장면이 현실화되었더라면, 그 주제는 아마 군권(君權)과 신권(臣權)에 대한 얘기가 되었을 것이다. 임금은 상징일 뿐, 정치는 전문 능력을 갖춘 신하가 해야 한다는 것. 사실 매력적인 ‘왕’의 모습에 미혹되지 않았다면, ‘이훤’은 제대로 된 왕이라고 볼 수 없다. 정치의 주체는 누구인가. 이는 곧 천하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관한 문제이며, 이상사회에 대한 철학적 논의의 핵심이기도 하다.
 동양에서 이상 사회에 대한 꿈은 ‘대동’사상으로 표현된다. 『시경(詩經)』의 ‘낙토(樂土)’나 『묵자(墨子)』의 ‘상동(尙同)’에서 그 단초가 보이긴 하지만, ‘대동’의 원형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은 『예기(禮記)』의「예운(禮運)」편이다. “대도(大道)가 행해지니, 천하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 현자를 뽑아 그 능력에 따라 관직을 수여하고, 신의와 화목을 가르친다. 사람들은 자신의 어버이만 어버이로 여기지 않고, 자기 자식만 자식으로 여기지 않는다. 재화가 땅에 버려지는 것을 싫어하지만, 자기 자신만을 위해 저장하지는 않는다.” 원래 이 문장은 천자의 자리를 선양(禪讓)을 통해 계승했던 요순(堯舜)에 대한 기록이지만, 이후 동양에서 이상 사회를 대표하는 글이 되었다. 이에 대해 그 아래 단계로 여겨지는 ‘소강(小康)’사회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대도(大道)가 숨으니, 천하가 한 집안의 것이다. 사람들은 각기 자기의 어버이만을 봉양하고, 자기 자식만을 돌본다. 재화와 노동 역시 자신만을 위해 사용한다. 예를 기강으로 삼아 군신의 관계를 확립하였으니, 우(禹)ㆍ탕(湯)ㆍ문(文)ㆍ무(武)ㆍ성왕(成王)ㆍ주공(周公)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 사람들이다.” 소강 사회 역시 ‘예’를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사회이지만, 왕의 지위가 세습된다는 점에서 대동의 이상엔 미치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동양에서 ‘군주전제(君主專制)’는 하나라 이후 2천년이 넘게 유지되어 왔지만, 천하는 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생각 역시 면면히 이어져 왔다. 이는 역사의 굴곡마다 등장한 농민 봉기의 기치에서 뿐만 아니라, 유가의 대표적 경전인 『맹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맹자는 신하가 임금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느냐는 양혜왕의 물음에, 왕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걸(桀), 주(紂)’는 한낱 ‘필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왕’은 선비의 한 사람이며, 수양(修養)을 게을리 한다면 ‘왕’의 자격이 없다고 본 것도 여기에 그 근거가 있다.   
 ‘공(公)’과 ‘평등(均)’을 핵심으로 하는 ‘대동’사상은 근대에 이르러 다시 큰 주목을 받았다. 전제 정치의 붕괴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모색한 강유위의 『대동서(大同書)』, 그리고 손문의 ‘삼민주의’는, 고대 ‘대동’의 이상을 현대화한 것으로 대한제국의 박은식, 신채호 등도 여기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천하는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만민(萬民)의 것이라는 믿음. 거기에 동양의 이상사회에 대한 생각이 모두 담겨있다.
 

‘쟁점, 동양철학’은 이번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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