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중서
“하늘과 인간은  같은 기(氣)로 통한다”

왕충
“천하 만물은 스스로 생성된 것”

  얼마전 ‘한국사’를 강의하는 선생님께 들은 얘기이다. 조선시대 하면 떠오르는 인물을 말해보라 했더니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이산이라고 대답하는 학생들이 많더란다. 세 인물의 공통점은 모두 방송 드라마의 주인공들이었다는 것이다. 국사가 대입 필수과목에서 제외되면서 빚어진 희극이지만, 엄연한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균관(成均館)’을 ‘성균관 대학’이 아닌 조선의 최고 교육 기관으로 알고 있는 대학생들 상당수는 이를 ‘성균관 스캔들’을 통해 학습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들 역시 ‘성균관’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가령 사단법인 ‘성균관’의 관장은 국내 7대 종단 중 하나인 ‘유교’의 대표자로 천주교, 불교, 개신교 등의 지도자와 동등한 사회 원로 대접을 받는다. 이미 우리 사회는 ‘유교’를 종교로 취급하고 있다는 말이다.
 

  제자백가 시절 도가나 묵가, 법가 등과 함께 한 학파로 분류되던 ‘유가’가 ‘종교’적 지위를 갖게 된 것은 한(漢)나라 때이며, 이를 주도한 인물이 바로 동중서(董仲舒)이다. 동중서는 유가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는 한편, 공자 이후 ‘주재적(主宰的)’ 측면이 약화된 ‘하늘(天)’에 강한 종교적 성격을 부여하였다. 그는 하늘과 인간이 같은 기(氣)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로 감응한다고 주장하였다. “사람의 몸은 사지가 있고, 사지마다 삼절(三節)이 있는데, 이 12개의 마디가 모두 모여야 온전한 형체가 이루어진다. 하늘에는 사계절이 있고, 매 계절마다 세 달이 있다. 그러므로 12개월이 다 되어야 한 해가 끝난다.”(『춘추번로(春秋繁露)』) 인간의 신체가 대자연의 구조를 그대로 품고 있다는 그의 주장은, 인간 사회의 모습이 곧 자연 그 자체의 속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윤리적 세계가 흔들리면 자연 역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유가의 전통적인 천인합일론에 음양설이 결합된 그의 ‘재이설(災異說)’을 보면, ‘하늘(天)’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희노애락의 감정을 지닌 존재이다. 이에 대해 동중서와 함께 한대(漢代)를 대표하는 철학자 왕충은 상반된 주장을 편다. 그는 『논형(論衡)』에서 “하늘은 의도적으로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 만물이 생성된 것 역시 하늘이 의도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 모두 그 스스로 생성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얼핏 노자의 ‘무위설(無爲說)’을 연상시키는 그의 주장은, 하늘과 인간은 “서로 알지 못하며(不相知)”, 또한 “서로 감응하지도 않는다(不相感)”는 것이다. 왕충은 하늘(天)은 고체로 이루어진 물질로, 자연계의 운행은 어떤 목적성이 있다기 보다는 기(氣)의 흐름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늘의 계시를 신봉하고, 공자를 신성(神聖)으로 간주했던 것을 고려하면, 그의 주장은 놀라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철학자의 ‘천인관계’에 대한 논쟁은 이후 동양철학에서 인간과 자연 관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의 시작을 예고한다.  
 

  유가에서 ‘하늘’은 모든 정신 생활의 근거로, 충분한 종교적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유교에서 서양 종교와 같은 형식이 갖춰지지 않은 이유는, 그 중점이 신이나 상제보다는 사람에 있기 때문이다. ‘계시’나 ‘기도’, ‘예배’와 같은 종교 형식이 모두 인간이 ‘어떻게’ 천도를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로 흡수되어 버린 이유이다. 이 점에서 유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종교와는 다른 성격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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