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인간은 금수와 다르다”

순자  “욕망이 곧 본성이다”

  인터넷의 발달은 우리 생활에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그 중에서도 익명의 그늘에서 날리는 악성 댓글의 비수는 피해자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를 남긴다. ‘악플’은 연이은 연예인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하였다.
  대학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한 학기동안 수업을 같이 한 학생이 강의평가에 남긴 ‘집에 가서 밥이나 하세요’란 글에 큰 충격을 받은 여교수가 있는가 하면, 아무런 이유도 달지 않은 채‘부적절한 강의’라고 써 놓은 학생 글에 며칠 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는 선생도 있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어떤 상처를 받던 상관하지 않는 이런 일들을 보면,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본 철학자들의 견해에 깊은 의문을 품게 된다.
  동양철학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얘기한 대표적인 철학자는 맹자(孟子)와 순자(荀子)이다. 맹자는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특징을 그 마음에 내재되어 있는 ‘인의(仁義)’라고 보았다. 인간은 도덕적 행위를 실천하게 되면, 그 결과 여부와 상관 없이 정신적 기쁨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서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사실과 함께 인간 스스로 도덕을 추구하는 동력과 지향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인의예지(仁義禮智), 즉 ‘사단(四端)’은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인간은 평상시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어떤 상황에 부딪치게 되면 그 선한 마음이 즉시 반응한다. 가령 ‘어떤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어느 누구라도 깜짝 놀라며 이를 구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맹자는 이 마음이 결여된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고 보았다. 맹자는 ‘식욕과 성욕’ 등 생물학적 본성을 인간을 규정하는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자연 본성의 측면으로 본다면, 인간은 동물과 별반 다른 점이 없다. 인간이 금수와 구별될 수 있는 것은 그가 개인적 욕망의 제약을 벗어나 스스로 인의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란 ‘타고난 그대로 내버려 두면 자연 그 질박함이 사라져 나중에는 반드시 그것을 아주 잃어버리고 말 것’으로, ‘악으로 흐를 경향’이 훨씬 많다고 보았다. 맹자가 도덕적인 것으로 인간의 본성을 규정한 것과는 달리 순자는 욕망을 인간의 본성으로 규정한다. ‘배 고프면 밥을 먹고 싶고, 추우면 따뜻한 곳을 찾고, 힘들면 쉬고 싶은 것’이 인간의 감정이며, 그것이 곧 ‘본성’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그 본성과 감정에서 벗어나 도덕적 행위를 하는 것은 오직 인위적인 노력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서 순자가 말한 성(性)은 맹자가 말했던 성과는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순자 윤리학의 기본틀은 ‘그 본성을 바꾸어 인위를 세운다(化性起僞)’는 것으로, 이것이 가능한 근거는 인간의  인식 능력에 있다. 맹자가 인간의 도덕 감정을 가장 근본으로 여긴 반면, 순자는 인간의 인식 능력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인간의 본성을 보는 양자의 차이는 이후 유학사에 있어 인간에 대한 이해와 함께 ‘수양론’등 다양한 분야에서 숱한 논쟁을 불러온 계기가 된다. 인간의 ‘악(惡)’은 그 본래 마음을 잃어버린 결과이니, 그 마음을 되찾아 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공부와 인간은 본래 악한 존재이니, 엄격한 교육과 훈육으로 그 본성을 바꾸어야 한다는 입장 중 어느 쪽이 더 타당할까.

이연도 교수(교양학부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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