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논쟁으로 한국사회 복지제공의 원리로서의 선택주의와 보편주의 논쟁이 시작되었다. 선택주의적 무상급식을 주장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자진 사퇴로 선택주의적 복지제도가 힘을 잃은 것처럼 보이지만 노인들에게 지급되는 기초노령연금 축소 문제와 여타 복지영역에서 이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한국 사회는 그 동안 노동시장에서 이루어지는 1차 재분배가 사회적 자원 배분의 핵심이라 생각해 왔으며 조세와 복지제도를 통한 2차적 재분배는 시장원리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라는 극단적 시각이 지배해왔다. 하지만 최근의 보편, 선별주의 논쟁은 이런 편향된 시각을 교정할 수 있는 계기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복지 할당 원리로서의 선택주의는 소득이나 재산을 기준으로 가난한 사람을 판별하고 이 집단에게만 복지자원을 집중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 방식은 한정된 자원을 모두에게 나눠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되어 왔다. 반면 선별주의적 복지를 받는 사람은 모욕감과 낙인감을 갖게 되고 이는 현대 사회에서 인권의 중요한 한 요소인 사회적 권리를 훼손하는 것이라 비판받는다. 보편주의는 복지를 모든 시민의 권리로 인정하고 소득이나 재산 기준과는 무관하게 복지를 제공하는 복지할당 원리다. 이 방식은 인권보장이 용이하다는 장점은 있으나 자원의 양이 충분한가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될 수 있으며 한국의 무상급식 논쟁에서도 이런 비판이 제기되었다.
 

선택주의와 보편주의를 이렇게 상반되는 원리로 이해하면 두 할당원리는 서로 대립적 성격을 가지며 보편주의는 선이요 선택주의는 악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보편주의적 복지를 갖춘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러한 이분법이 낡은 논리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가령 모든 사람에게 복지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사회적 욕구가 더 큰 가난한 사람에게는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정의에 더 부합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많은 복지국가에서 보편주의적 복지를 제공하되 욕구가 더 큰 집단에게 더 큰 자원이 배분되는 할당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보편주의라는 큰 원리를 받아들이되 취약계층에 더 많은 자원을 할당하는 선택주의적 원리를 결합하는 것으로 일부에서는 이를 ‘진보적 보편주의(progressive universalism)’로 부르기도 한다.
 

무상급식을 놓고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선별, 보편주의 논쟁은 어찌보면 잘못된 논쟁에 가깝다. 한국의 사회복지제도 대부분은 이미 보편주의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같은 사회보험제도는 모든 국민을 포괄하는 보편주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부자 30%를 제외한 나머지 70%의 대상자에게 제공되는 아동보육이나 기초노령연금같은 제도도 ‘준’보편주의적 제도로 볼 수 있다. 유독 선별주의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있는 것이 학교급식이었다. 즉 대부분의 복지제도는 이미 보편주의적 제도로 구축되어 있는데 하나 남은 선별주의적 제도를 두고 선별주의 원리를 고집하는 것은 사회전체를 보지 못하는 극히 편협된 시각이다. 더욱이 한국 사회가 무상급식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경제력이 허약한 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선별주의와 보편주의 원리 중 어떤 것이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더 필요한 것인가를 논의할 때는 두 원리의 장단점을 따지기보다 본질적인 측면에 접근해야 한다. 필자가 선별주의보다는 보편주의가 한국 사회의 더 중요한 복지배분의 원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북유럽의 경험이다. 보편주의적 복지국가를 갖춘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인구규모가 적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가 작동되지 않으며 세계경제에 적극적으로 포함되어 교역을 해야 경제적 부를 유지할 수 있는 국가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방경제는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에 직접 노출되는 단점을 갖고 있다. 때문에 이들 국가는 자국의 산업구조를 세계경제의 흐름에 맞춰 신속하게 구조조정해야 생존이 보장되며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갖추어져야 한다. 안전망이 없는 사회에서 구조조정은 얼마 전 한국의 쌍용자동차 대량 해고사태에서 보듯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 한국은 수출입 의존도가 세계 최고수준이며 국제경제의 등락에 따라 경제전체가 좌지우지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런 체제에서 선별주의적 안전망은 사회전체의 효율성을 확보하기 어려우며 보편주의적 안전망이 갖추어져야 외부의 경제적 충격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보편주의가 필요한 두 번째 이유도 한국의 산업구조와 연관되어 있다. 한국은 수출 대기업이 경제를 책임지는 구조이며 이런 이유로 중소기업의 내수경제가 침체되어 있다. 국민에게 분배되는 복지비용은 대부분 자영업, 중소기업 등 내수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다. 복지비 지출이 내수를 촉진함으로써 경제에 기여한다는 논리는 자본주의에서 유효수요 창출의 중요성을 주장한 케인즈이론에서 그 논거를 갖고 있다. 보편주의는 선택주의에 비해 복지비용을 더 많이 지출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보편주의는 선택주의에 비해 더 많은 내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더 많은 복지의 할당을 의미하는 보편주의는 더욱더 양극화되어가는 한국사회의 분배구조를 개선시키는데 선택주의보다 유리하다. 한정된 자원을 빈곤층에게 집중시키기 때문에 미시적 분배효과는 선택주의가 높아 보이나 보편주의를 채택한 복지국가는 조세의 재분배 효과가 뛰어나고 민간보험 등에 의존하는 비중이 낮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편주의적 할당원리를 가진 국가들이 그렇지 않은 국가보다 소득불평등의 개선 정도가 높게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한국 사회의 양극화를 극복하는데 보편주의적 자원배분이 선별주의보다 유리한 전략이 된다는 것이다.  
 

선택주의, 보편주의 논쟁은 단순히 복지를 누구에게 할당할 것인가를 넘어 한국 사회의 재구조화와 관련된 논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해답없고 소모적인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기보다는 어떤 복지할당 원리가 한국사회의 경제사회적 문제를 극복하고 더 나은 사회체제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가를 따져봐야 한다. 복지문제는 이미 단순한 복지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구조의 재편과 관련된 쟁점임을 인식해야 한다.
 


글 싣는 순서

1부  왜 복지인가              
① 복지는 현대적 의미의 국방이다

2부 신 자유주의 물결 속의 복지
① 식코, 미국식 복지
② 북유럽식 복지는 실현가능한가 

3부  한국의 복지
① 선택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
② 가족 중심의 복지패러다임과 한계
③ 복지는 성장을 저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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