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생애과정은 의존이 필요한 어린이단계에서 독립적인 성인단계, 다시 의존관계를 필요로 하는 노인단계로 구성된다. 생애과정의 초기와 말기는 타인의 돌봄에 의존하게 된다. 선성장 후복지를 기조로 한 한국의 압축적 경제성장은 아동양육과 노인부양을 가족, 특히 여성에게 맡김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제 및 노동시장의 재구조화는 고용불안정을 일상화시켜 정규직에 종사하다 정년퇴직하여 노후를 맞는 표준적인 생애과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 남녀 모두에게 생존보장을 위한 노동시장 참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 남성 일인 생계부양자 모델이 효력을 상실했다. 
 
  더불어 결혼과 가족 구성의 유연성과 유보는 새로운 사회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비단 한국사회 뿐 아니라 지구적 차원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OECD도 기존의 홀벌이 모델은 구태의연한 것으로 유연한 노동시장에서는 맞벌이 모델이 적합하다는 정책기조를 천명하고 있다. 이는 유연하고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실업에 직면하더라도 부모 중 한 명이 노동시장 지위를 유지하고 있을 때, 다른 피부양자나 아동의 복지를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육아, 간병, 노인요양보호 등의 돌봄노동은 더 이상 가족 내에서 충족될 수 없어서 돌봄의 공백(care deficit)을 초래하고 있다. 
 
  돌봄의 공백은 심각한 사회적 위험으로 인식되어, 2000년대에 들어 한국 정부도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승인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보육료 지원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은 현재는 소득기준으로 하위 70%를 대상자로 하고 있지만, 기존의 선별적 성격을 탈피한 보편적 성격의 정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2004년 4,038억원이던 보육예산(중앙정부)은 2009년 17,104억 원으로 2008년 14,678억 원과 비교해도 2500억 원이나 증가했다. 
 
  그러나 보육정책 예산의 75%는 개별 가족이 민간시장에서 보육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도록 영유아 보육료지원 명목으로 지원된다. 공보육시설의 확충과 보육일자리의 질적 개선과 같은 보육의 공공성을 담기에는 부족하다. 세대간 사회적 연대라는 취지로 세계에서 독일,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제정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도 시행 주체를 시장에 위임한 결과, 요양기관의 과도한 경쟁과 난립, 요양보호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낮은 서비스가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결국 보편주의를 지향하지만 현재의 돌봄정책은 공적 재정을 투입해 시장적 운영방식을 선택함으로써 돌봄의 공공성을 실현할 수 없다. 또한 돌봄 일자리들은 결국 여성들로 채워져서, 가정에서 성역할에 의해 수행했던 일이라는 인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낮은 일자리로 고착되고 있다. 
 
  한국사회의 복지논쟁 속에서 보편주의가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지만, 그 논의 속에서 돌봄의 사회적 지원 방식이 가져올 효과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는 않다. 한국의 복지논쟁에서 거론되는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돌봄정책을 통해 그 효과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지원 방식을 돌봄노동의 가족화와 돌봄노동의 탈가족화(혹은 사회화)로 단순화시켜서 구분해 볼 수 있다. 돌봄의 가족화는 돌봄을 가족영역에서 전적으로 담당하는 한에서 남성과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와 무관하게 돌봄노동에 대한 인정과 보상을 취지로 한다. 이것은 보편주의적 접근으로 취업여부나 자산평가에 의거하지 않고 부모의 선택에 의해 수급권이 주어진다. 대표적으로 주부수당 혹은 돌봄수당이 있지만, 그 수당은 노동시장의 소득을 대체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부모 중 누구든지 돌봄을 선택할 수 있다는 중립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여성들이 돌봄노동의 주담당자가 되며, 보상 수준도 경제적 자립을 가능하게 할 정도는 아니다. 또한 임금이나 직업적 위세가 낮은 여성 노동자들은 돌봄수당을 받을 수 있는 가족으로 복귀하여 결국 전업주부가 되기도 한다. 돌봄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보편주의적이라 해도 여전히 전통적인 성역할 분업과 돌봄노동에 대한 낮은 평가를 탈피하지 못한다. 
 
  반면 남성과 여성을 모두 보편적인 생계부양자로 상정하는 국가에서는 돌봄노동과 취업의 연계를 중시하여 돌봄노동의 상당부분을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탈가족화를 지향한다. 탈가족화는 부모휴가와 공공보육서비스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노동시장 접근성의 평등을 추구한다. 공보육시설과 부모휴가가 발달한 국가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과 출산율이 높다는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탈가족화 방식도 부부에게 누가 아이를 돌볼 것인지를 선택하게 하면, 성별노동시장 분리로 인한 낮은 임금을 받는 여성들이 부모휴가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결국은 성별화될 우려가 없지는 않다. 그래서 스웨덴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 부성강제휴가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개별 국가의 경로의존성과 돌봄의 공백을 사회적 위험으로 인식하는 정도에 따라 돌봄정책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보육정책을 예로 들면, 프랑스, 덴마크, 스웨덴에서는 취학 전 아동에 대한 투자에 목적을 둔 보육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한편 영국이나 일본과 같이 고령화 위기를 맞고 있는 국가에서는 획기적인 보육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출산율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성평등에 대한 강력한 정책의지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잘해야 현 상황에서 여성들의 부담을 약간 경감시켜주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은 현재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아동빈곤 해결을 보육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다. 이런 정책기조는 특히 한부모 여성이 사회적 지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필요조건으로 보육을 요구할 수 있는 여지는 만들지만, 이 여성들이 취업의 절박성 때문에 저임금 직종을 택하도록 강제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현재의 보육료 지원이나 노인요양보호와 같은 돌봄정책은 공적 재정이 투자되었을 뿐, 실제 운영은 시장에 맡겨놓았기 때문에, 우리사회의 변동 속에서 직면하고 있는 노동과 가족생활을 둘러싼 변화와 갈등을 수용하여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다. 간단히 말하면 공공성을 결여하고 있다. 아동수당 혹은 보육료, 기초노령연금, 노인요양서비스의 수급자 범위를 둘러싼 양적인 분배의 형평성을 넘어, 그것이 가져올 가족, 젠더관계, 세대관계, 돌봄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성찰이 복지국가 기획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래야 복지의 공공성이 온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김경희(사회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사회학 학사
연세대학교 사회학 석사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박사
 
 
현 중앙대학교 문과대학 사회학과 교수
연구분야 : 젠더사회학(여성정책, 여성운동 연구)
 
 
글 싣는 순서
 
1부  왜 복지인가               
① 복지는 현대적 의미의 국방이다
 
2부 신 자유주의 물결 속의 복지
① 식코, 미국식 복지 
② 북유럽식 복지는 실현가능한가  
 
3부  한국의 복지
① 선택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 
② 가족 중심의 복지패러다임과 한계
③ 복지는 성장을 저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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