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4. 내 안의 또 다른 나
  • 박준이 기자
  • 승인 2015.03.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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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나 잡지, 또는 휴대폰 어플로 운세를 본 적 있나요?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생년월일, 별자리, 띠를 가진 사람이 수없이 많은데도 운세를 볼 때면 항상 ‘다 내 이야기 같다’고 하면서 지난 하루를 돌이켜 보곤 하죠. 그래서 이번 주, 기자는 학생들에게 가상의 동일한 운세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시작해봤습니다. 역시나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자신의 이야기라며 공감하더군요.
 
 
어제의 난 내가 아니야
 
누구나 하나쯤, 또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나요? ‘킬미힐미’의 신세기, ‘하이드, 지킬, 나’의 로빈처럼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적이 없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평소와 다른 나의 모습을 하나씩 가지고 있죠. 그리고 가끔씩 자신의 색다른 모습들을 마주하는 순간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이날 기자가 만난 A양도 술과 함께 등장한 또 다른 자아가 저질러놓은 실수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는데요. 술만 마시면 각기 다른 4개의 자아가 등장한다는 ‘망나니’ A양.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변화가 당황스럽거나 놀랍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말고 자신의 모습으로 받아들이세요. 혹시 상처받거나 화가 나는 일이 생기더라도 상처받은 나 자신을 보듬어준다면 더 단단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A양
네, 있어요. 이틀 전에 엄청난 사고를 쳤거든요. 술 먹고 선배한테 전화했어요.
-에이, 그럴 수도 있죠.
A양
제가 15학번 새내기인데 92년생인 14학번 선배한테 술 먹고 전화로 막말을 했어요.
-전화해서 뭐라고 말했는데요?
A양
전화해서 92년생인데 14학번이어서 불쌍하다고, 인생 망했다고 그랬대요. 또, 그 오빠가 평소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데 마스크를 써야 좀 잘생겼으니 앞으로 쭉 마스크만 쓰고 다니라고 말했대요. ‘벗으면 혼난다’고 하면서… .
-평소에 그 선배를 보면서 생각했던 것들이었나요?
A양
아니에요, 저 진짜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그냥 ‘92년생이구나’, ‘마스크를 좋아하는 구나’ 생각했지. 제가 친하지도 않은 선배한테 왜 뭐라고 하겠어요.
-그럼 그렇게 말하고 바로 끊었나요?
A양
네. 그런데 그 오빠가 너무 화났나 봐요. 다시 저한테 전화해서 ‘지금 누구랑 있냐’고 물어봤는데 제가 ‘육개장이랑 같이 있다’고 했대요. 제가 그때 편의점에 있었거든요.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A양
전혀요. 같이 있던 친구들이 다 말해준 거예요. 그리고 그 선배랑 같이 있던 다른 선배가 저한테 ‘얘 지금 진짜 화났으니까 연락하지 말라’고 했대요. 제가 그 다음날 그 오빠한테 메시지를 보냈는데 ‘읽씹(읽고 씹기)’ 당했어요.
-에이. 그래도 그 선배, 미움이 관심으로 바뀔 수도 있어요.
A양
그럴 리 없어요. 아직도 답장이 없거든요.
-어쩌다가 그렇게 취하게 됐어요?
A양
그날 친구들이랑 한강에 가서 ‘깡소주’를 마셨어요.
-원래 술 취하면 다른 자아가 나오나요?
A양
네, 맞아요.
-어떤 모습의 자아에요?
A양
나 술 취하면 어때?
P군 완전 다른 사람이에요. 그래도 평소 모습의 한 30%는 남아있어요. 평소에도 얘는 남들과 좀 다르거든요.
-술 취한 A양의 모습은 어떤가요?
P군
망나니에요.
A양 야, 너!
P군 아, 농담이고. (웃음) 완전 활발하고 유쾌한 친구예요. 분위기메이커죠. 선배들도 재밌어서 오히려 술을 더 먹이곤 해요. 이날의 실수만 없었더라면….
-본인의 자아가 몇 개쯤 되는 것 같아요?
A양
한 4개 정도? 평소의 저랑 술 먹고 슬픈 애, 전화하는 애, 그리고 미친 애가 있어요.
-미칠 땐 어떻게 미치는데요?
P군
일단 양옆에 선배가 두 명은 붙어야 하고요.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다 말을 걸어요. 다 자기가 아는 사람이라고.
A양 아, 저번에 밤늦게 친구랑 기숙사로 올라가고 있었어요. 그때 마침 통금시간에 간당간당할 때였는데 제가 막 뛰어가는 사람들한테 ‘XX들아, 뛰어봤자 통금시간에 못 들어가니까 기어가라’고 했대요. 친구가 대신 사람들한테 사과하고….
-어떡해. 하지만 새내기니까 괜찮아요.
A양
아니에요. 저 휴학하려고요. (한숨)
 
 
 
 
내 안의 ‘헐크’를 잠재우는 법
 
살다보면 술에 취하지 않아도 가끔씩 또 다른 자아가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바로,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펑하고 터져버리는 순간이죠. 평소에 아무리 순하고 착한 사람일지라도 억울하거나 모멸의 감정을 느낄 때면 평소와 다른 폭력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마는데요.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L양에게도 얼마 전 꼭꼭 숨겨두었던 인격이 불쑥 나타났었습니다. 그녀의 또 다른 인격과 이를 숨기고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 들어보시죠.
 
 
 -바쁘신 것 같은데 죄송해요. 오늘 하루 어떠셨나요?
L양
보시다시피, 하루종일 취업용 자기소개서를 쓰느라 바빴어요.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해서 힘든 것 빼고는 괜찮았어요.
-운세 한 번 볼까요?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변화가 당황스럽거나 놀랍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말고 자신의 모습으로 받아들이세요. 혹시 상처받거나 화가 나는 일이 생기더라도 상처받은 나 자신을 보듬어준다면 더 단단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또 다른 자아를 본 적이 있나요?
L양
네, 저에겐 좀 과격한 인격이 하나 있어요.
-원래 성격이 어떤 편인가요?
L양
원래는 밝고 긍정적인 편인데 가끔씩 욱해요. 그런데 최근에 운세 내용처럼 저의 또 다른 자아가 나온 적이 있어요.
-어떤 일이 있었나요?
L양
얼마 전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점장님께 크게 화를 냈어요.
-왜 화를 내신 거죠?
L양
그날은 특히 많이 바쁜 날이었어요. 그런데 그 와중에 점장님이 저에게 “빨리해! 일 안할 거야?”라고 해서 기분이 확 상해버린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L양
제가 카운터에서 “지금 일하고 있잖아요!”하고 소리를 질렀죠.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나요?
L양
항상 이런 식이었어요. 그동안 많이 참고 참았었죠.
-점장님이 평소에도 말을 안 좋게 하는 편인가요?
L양
네, 직원들을 격려하고 북돋워주는 게 점장의 업무 중 하난데 그 사람이 하는 건 격려가 아니라 일종의 압박으로 느껴져요. 저는 계속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옆에서 ‘똑바로 일해’라고 하니까 열이 확 받죠. 그래서 그 순간 저의 또 다른 자아가 튀어나오고 말았어요.
-그분(분노하는 인격)을 자주 만나는 편인가요?
L양
그렇진 않아요. 한 2년에 한 번씩 등장하는데. (웃음)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가 나도 많이 참고 살잖아요.
L양
음, 저는 그냥 그 순간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너무 참으면 병이 될 테니까 나쁘진 않아요.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면 지금보다 더 참아야겠죠. 슬프지만 앞으로 좀 더 조심하려고요.
-그때의 일은 혹시 잘 해결됐나요?
L양
네, 사실 점장님이 많이 화낼 줄 알았는데 살짝 당황하시기만 하고 생각보다 조용히 넘어갔어요. 바빠서 그런 건지, 많이 놀라셔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어요.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면 많이 힘들 것 같아요.
L양
많이 힘들죠. 그래도 아침 시간에 일해서 점심때보다는 사람이 적긴 한데 그래도 엄청나게 바빠요.
-특히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생들은 늘상 웃는 얼굴로 손님들을 맞이하잖아요.
L양
그렇죠. 사실 뒤에서 웃으라고 엄청 압박해요. (웃음)
-직접적으로 웃으라는 지시를 받나요?
L양
네, 웃지 않으면 혼나요. 다른 서비스업종 종사자들도 다 똑같을 거예요.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거죠.
-스트레스 많이 받을 것 같아요.
L양
서비스직이 다 그렇죠, 뭐. 최근에 점장님이 바뀌어서 압박이 더 심해졌어요. 원래 점장님은 잘생기고 상냥한 오빠였는데 이번 점장님은….
-하하, 이제 인터뷰 마무리할게요. 내일 하루는 어떨 것 같나요?
L양
내일 아침 일찍 도서관에 가서 자기소개서를 쓸 거예요. 내일도 좋은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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