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를  돌아보다

5. 향후 금융시장과 금융경제 전망

글 싣는 순서
     - 금융 산업의 발달과 금융 자본주의의 역사
     -  2008년 금융위기의 발생경로와 특이성  
     - 한국 금융시장의 특성 
     - 한국 금융시스템의 위험요소 - 가계부채 
     - 향후 금융시장과 금융경제 전망
    
▲ 세계 주요국의 정책당국과 여론은 자본금 규제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이영준 기자

자본금 강화 규제에는 대체로 이의가 없는 모습이지만
정작 근본적인 금융규제 개혁에는 소극적인 모습이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스템의 전개방향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금융시장에 대한 학계와 정책당국의 철학의 흐름을 이해하여야 한다. 이 흐름은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한 입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금융위기 원인에 대한 학계의 이론은 ‘시장효율성’, 시장참가자의 ‘합리성’ 등에 대한 관점을 기준으로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시장참가자의 합리성과 시장효율성을 전제하고 위기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는 ‘근본주의 견해’가 있다. 시장참가자가 합리적이고 시장은 효율적이므로 이 견해는 위기의 원인을 흔히 ‘부정적 충격’ 또는 ‘정부의 시장왜곡’ 등에서 찾고는 한다. 두 번째로는 금융시장의 정보비대칭성 문제를 중시하고 이로 인한 시장실패 가능성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위기발생을 주장하는 ‘대리인 문제 견해’가 있다. 시장참가자는 대체로 합리적이지만 정보비대칭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펀드, 은행 등 주요 금융기관 등은 ‘군집행동’, ‘단기적 관점의 투자’ 등의 행태를 보일 수가 있다. 이 대리인 문제가 위기의 원인이라는 견해이다. 마지막으로는 시장효율성은 물론, 시장참가자의 합리성도 부정하고 금융위기의 원인을 인간의 태생적인 심리에서 찾는 ‘행태주의 견해’가 있다. 인간 심리에는 과잉반응하는 경향이 내재되어 있고 그에 따라 거품과 거품의 붕괴가 주기적으로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최근까지 학계의 금융위기에 대한 정통 견해는 ‘근본주의 견해’이었다. 이번 미국에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는 이 같은 학계와 국제정책기구의 시각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금융위기에 대한 지배적인 견해와 관점이 이제 ‘근본주의 견해’에서 ‘대리인 문제 견해’ 또는 ‘행태주의 견해’로 이동하고 있다.
  1980년대 ‘탈규제’와 ‘자유화’ 흐름의 배경에는 금융위기에 대한 ‘근본주의 견해’가 존재
  1930년대 이전 선진제국의 금융기관과 금융시장은 거의 아무런 규제의 제약을 받지 않고 활동하고 있었다. 대공황 등의 여파로 금융의 자유방임시대는 종언을 고하였고 각국은 금융기관과 시장에 엄격한 규제를 도입한바 있다. 1930년대 도입되었던 이들 규제들이 1980년대 영국, 미국 등을 선두로 하여 제거되기 시작한다. 이른바 ‘탈규제’ 또는 ‘자유화’의 시작이었다. 그 배경에는 금융위기에 대한 ‘근본주의 견해’의 득세가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자유화가 시작되자 동시에 금융위기의 시대가 시작된다. 금융위기의 발생에도 불구하고 학계와 국제정책기구의 ‘근본주의 견해’는 수정되지 않았다. 다만, 은행부문과 자본시장 부문의 차이가 강조되기 시작하였을 뿐이다. 유동성 부채인 예금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비유동성 자산인 대출을 보유하는 은행의 ‘특수성’에 위기의 원인이 있다는 이론이 개발되었고 학계의 정통이론으로 자리 잡는다. 동시에 은행은 시스템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이를 관리하기 위한 ‘금융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정책철학이 형성되었다. 중앙은행, 공적예금보험, 금융감독의 3각 체제가 90년대를 넘어서며 각국에 시스템위험의 관리장치, 즉 금융안전망으로 구축되었다. 반면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는 강화되는 듯하였다.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한 가지로 자금순환에 있어 과도한 은행부문에 대한 의존과 자본시장의 미성숙이 거론된 것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시스템 위험의 원천은 정부의 개입이 만연하고 특성상 내재적인 취약성도 있는 은행부문이며, 시장원리가 보다 잘 적용되는 자본시장은 이 같은 문제점이 없다는 인식이 만연되어 있었다.
  향후 규제정책은 ‘자본시장의 시스템위험 관리’ 흐름으로 전환
  이번 세계금융위기는 이 인식에 변화를 요구한 대사건이다. 20세기 이후 세계가 경험한 최초의 ‘자본시장 위기’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월가의 초단기 자금시장이 패닉에 휩싸였고, 은행 인출사태에서 자유롭다고 여겨졌던 MMF에 대해 미국 FRB는 원금보장을 제공하여야만 하였다. CDS 등 각종 파생상품의 적절성에 대한 의문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고, 자본시장 주요 참가자들의 합리성에 대한 회의가 만연하다. ‘근본주의 견해’는 급격히 쇠퇴하고 있고, 이에 규제철학도 급변하고 있다.
  금융위기 원인에 대한 ‘근본주의 견해’가 ‘대리인 문제 견해’와 ‘행태주의 견해’에 자리를 내주면서, 그 동안 금융규제를 지배하여 온 ‘탈규제’와 ‘자유화’ 흐름은 ‘자본시장의 시스템 위험 관리’ 흐름으로 전환될 전망이다. 이제 자본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스템 위험을 판별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대응이 과제로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자본시장규제의 국제규범 마련은 성과가 제한적일 것
  자본시장이 시스템 위험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경험함에 따라 이에 대한 규제대응의 필요성이 인정되고 있지만, 현재의 금융시스템을 변혁시키는 수준의 규제개혁이 국제규범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위기발생 직후 당사자인 미국에서는 파생상품 거래의 CCP 및 거래소 거래 의무화, 일반투자자에 대한 금융상품 판매 규제(금융소비자 보호강화) 등의 규제개선안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위의 두 개선안의 경우 제안 시점부터 금융업계의 로비로 인해 점차 내용이 희석되었고, 2010년 중반 최종적으로 제정된 금융개혁법에서 골자는 유지되었으나, 실제 실행단계에서 어느 정도의 실효성이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또한 정작 위기발생의 주범이었던 공룡 투자은행과 이들이 누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대마불사’문제에 대한 대응방안 논의는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정작 이 문제가 가장 심각한 미국의 경우 정책당국의 공개적인 논의의 대상도 아닌 상황이며, 영국의 경우 보다 적극적이지만 과연 규제로 실현될 것인지의 여부는 불투명하다. 2010년 미국의 금융개혁법안에서는 잠시 논의되었던 상업은행의 헤지펀드 투자금지 방안이 유명무실화되어,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방증하였다.
  결국 미국 등 세계 주요국의 정책당국과 여론은 자본금 강화 규제에는 대체로 이의가 없는 모습이지만 정작 근본적인 금융규제 개혁에는 소극적인 모습이다. 자본금 규제강화, 금융상품 판매 강화 등의 건전성 규제와 행위규제를 넘어서 금융시스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업무영역 규제나 시장규제의 새로운 국제기준 도입은 예상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 최적 금융규제의 패러다임은 쉽게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혼란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신인석 교수
(경영학부)

이현선 기자의 참고서

미국은 왜 금융개혁에 소극적일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한 이후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 대안으로 미국에선 2010년 금융개혁법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이 법안은 금융규제의 틀을 제시하는데 그쳤다. 법안 통과 당시부터 금융기관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세부 규칙을 삽입하도록 로비활동을 벌일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져 나왔고 이는 현실이 됐다.
  정치자금 백서를 발행하는 정치민간단체 ‘Center for Responsive Politics’는 미국 거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들이 로비활동으로 쓴 비용이 2011년에 1억 5950억 달러에 달했다고 밝혔다. 로비활동 결과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수정 법안이 20여개 넘게 마련됐다.
  신인석 교수는 “금융기관의 로비활동을 비판하기는 어렵다. 모든 정책은 이익을 얻는 입장과 손해를 보는 입장을 만들어내고, 두 입장간의 경쟁 결과에 따라 정책이 결정된다”며 “미국의 경우 금융규제 완화를 통해 이익을 얻는 쪽이 정책형성에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있기에 그 방향으로 균형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극적인 금융개혁 원인을 로비활동 탓으로 한정지을 수만은 없다. 정부 규제에 민감한 미국 내 정서도 발목을 잡았다. 자유를 찾아 이주해온 건국의 아버지를 가진 미국인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정부가 국민 개개인의 지문정보까지 다 알고 있는 한국인으로서는 잘 와닿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총을 들고 자신과 가족을 스스로 지키는 미국인들은 정부의 개입과 보호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미국 사람들도 규제를 완화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완화할 때에 발생하는 비용보다 자유를 통해 얻는 이득이 더 크다고 본다. 규제와 간섭에 있어서는 과한 것 보다는 부족한 편이 낫다는 입장이다.
  금융개혁의 강도가 낮아지고 있는 것에 대해 신인석 교수는 “처음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놀라서 강한 규제책을 만들어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강한 규제가 과연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고민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현선 기자 2hyunsun@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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