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를 돌아보다

3. 한국 금융시장의 특성

글 싣는 순서

1. 금융 산업의 발달과 금융 자본주의의 역사
2. 2008년 금융위기의 발생경로와 특이성 
3. 한국의 금융시장의 특성
4. 한국 금융시스템의 위험요소 - 가계부채 
5. 향후 금융시장과 금융 경제 전망

 
 
▲ 금융 규제·감독을 통해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                                                                      이호 기자
 
 
 
금융시스템은 본래 실물자원의 시점 간 혹은 개인 간 이동을 위한 수단을 공급하여 실물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실물 부분에 참여하는 개인들의 특수한 위험은 분산(risk diversification)을 통해 해소 가능하다는 점에서 금융시스템의 또 다른 역할이 정의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금융시스템 역시 모든 종류의 위험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국민경제의 성장률 변동과 같은 총체적 위험이 그 예이다. 물론 일개 국민경제 수준의 총체적 위험일지라도 국제금융시장을 매개로 다른 나라와의 금융거래를 통해 이를 분산시킬 여지를 갖게 된 것은 국제화(globalization)의 주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2008년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지난 수 십 년간의 지속적인 국제화를 통해 각 나라의 경제가 금융시장 및 교역에 있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로부터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있는 미국 금융기관의 부실징후가 대서양을 사이에 둔 유럽금융시장을 위협하고, 이로 인한 유럽금융기관들의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이 한국금융시장을 흔들고 외환시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일련의 사태는 그 좋은 사례이다. 물론 1997년 외환위기와 비교할 때, 위기의 중심으로부터 우리 경제가 멀리 떨어져 있었고, 이후에 취해진 금융시장을 비롯한 경제전반의 구조 개혁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었던 탓에 우리 경제에 미친 파장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 특히 금융부문의 위험 요인을 살펴 볼 좋은 기회가 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의 가장 큰 취약점은 우리 경제의 높은 대외의존도에 있다. 전형적인 소규모 개방경제하의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으로 인해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는 불가피하게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훨씬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무역상대국의 경기 부침에 따라 우리나라 경제가 영향을 받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기제는 없어 보인다. 국제금융센터 2011년 11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성장률 측면에서 한국과 미국의 상관계수는 1980년대에 0.51이었으나 1990년대에는 -0.35로 주저앉았다가 2000년대에는 다시 0.76으로 급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상가상 이와 같은 대외의존도의 심화 현상은 비단 실물부분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품시장의 개방에 이어 이루어진 금융시장의 개방은 금융부분의 대외의존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먼저 해외투자자의 국내금융시장 참여와 국내 투자자의 불충분한 환헷지 능력은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시에서 경험했던 바와 같이 외부적인 충격이 얼마나 신속하게 국내금융시장에 전이될 수 있는지를 확인시켜주었다. 더욱이 키코(KIKO) 사태의 경험이나 우리나라 파생상품시장이 거래건수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라는 현실은 금융시장의 국제화가 적어도 한국시장에서는 위험분산 및 공유의 기제로 제대로 역할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 무렵 국내금융기관들의 외형성장을 위한 경쟁은 단기외화자금을 통한 대출경쟁을 초래하였고, 이 과정에서 나타난 자금, 특히 외화자금의 단기화 및 기간 불일치(mismatch)는 국내금융기관의 위기대응능력에 대한 국내외 금융시장 참여자들의 의구심을 자아냈다. 일례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높은 외화 예대율(약 328%)과  국외자금조달 비율(약 9%)로 인해 재차입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금융 및 경제 쇼크에 한국의 금융시스템이 매우 취약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금융감독 체계 하에서 이와 같은 문제점들이 많이 개선되기는 하였으나, 근원적인 해결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는 지적이 많다.   
 
앞서 언급한 실물 및 금융 부문의 높은 대외의존도 외에도 주목할 만한 위험 요인으로 가계부채증가와 부실 저축은행 정리문제를 꼽을 수 있다. 특히 가계부채문제는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금융시스템 전반의 안정과 직결되어 있다. 낮은 연체율과 LTV를 근거로 가계대출發 위기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단기 및 일시상환 방식의 대출의 특성에 불과한 것이다. 가계연쇄도산사태가 발생한 대공황기 직전의 미국 자료를 살펴보면, 지금의 우리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나라 가계부채문제가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에는 이외에도 많은 위험요인에 산재해 있다. 물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감독 및 규제체계를 개편하고자 하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금번 금융위기의 진앙지에 해당되는 국가들과 비교하여 우리나라는 아직 과소시장·과다정부  체제라는 점이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에서 논의되는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한편, 위기 이전에 추진하던 과도한 금융규제부분을 제거하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정부의 실패’라는 위험요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낮은 국가부채비율, 긍정적인 명목정책금리, 유연한 환율시스템, 충분한 외환보유액, 그리고 거시건전성 강화 수단을 갖추고 있다. 한국은 전반적으로 경제 전망이 긍정적이다. 적절한 정책조합을 통해 한국은 아직 위험한 대외환경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나아갈 것으로 본다.
 
허석균 교수 (경영학부)
 
 
이영준 기자의 참고서
 
높은 대외의존도
‘우리나라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다’는 말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와 있을 정도로 너무나 보편적인 사실이다. IMF 이후 대외의존도는 지속적으로 상승하며 지난 2011년에는 대외의존도가 96.9%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외의존도는 국내총생산(GDP) 중 무역액이 차지하는 비율로 대외의존도가 높을수록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 이 경우 무역규모가 늘어날 때는 경제성장에 크게 도움이 되지만 위기 때는 경제에 직격탄으로 다가온다.
 
높은 대외의존도가 금융분야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단기성 자금’이다. 국내 금융기관들이 금융자금을 국내 생산에서 보다는 해외 금융기관에서 단기로 조달해오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이 경우 자금 유동성이 커지고, 해외발 위기에서 대규모 자금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어렵다. 해외 투자자가 한국 시장에서 갑자기 많은 자금을 회수할 경우 환율시장까지 영향을 미쳐 국내 시장에도 위기를 불러오게 된다. 한국 시장은 해외 투자자들이 위기 상황에서 자금을 회수하기 적합한 규모의 안정적 시장인 것도 한몫 더한다.
무역이 GDP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을 해외발 위험으로부터 완벽하게 격리시킬 방법은 없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ATM’이라 불릴 정도로 자금 유입·유출이 쉬운 것은 경제안정성이 흔들리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다. 이같은 위험은 외환 건전성이 강화될수록 줄어드는데, 은행이 해외 단기자금을 활용하는 것을 철저하게 금융 감독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된다. 이에 한국은행은 은행의 자금조달·운용상황, 리스크관리실태 등을 점검하기위해 2011년 4개 은행에 대해 종합검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이영준 기자 june21@cauon.net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