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를  돌아보다

1. 금융 산업의 발달과 금융 자본주의의 역사

글 싣는 순서

     1. 금융 산업의 발달과 금융 자본주의의 역사
     2. 2008년 금융위기의 발생경로와 특이성  
     3. 한국의 금융시스템(금융산업) 개괄
     4. 한국 금융시스템의 위험요소 - 가계부채 
     5. 향후 금융시장과 금융 경제 전망

 

 금융 규제 완화로 많은 시중은행들이 투자은행을 인수 합병하고 거대 금융기업으로 성장했다. 완공을 앞둔 서울국제금융센터와 여의도 증권가의 금융회사들.                                                                                             이영준 기자

실물이 아닌 신용을 거래하는 금융 자본주의

20세기 후반들어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세계적으로 금융산업이 크게 성장했다.

 

  상품을 직접 사고 팔지 않고도 더 큰 가치가 창출될 수 있는 ‘금융자본주의’ 시대가 밝았다. 본고에서는 금융자본주의란 무엇이며, 금융산업이 어떻게 지금 경제활동의 주축을 이루게 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금융거래는 실물을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신용을 거래하는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불확실성, 역선택, 도덕적 해이 등과 같은 문제점들을 내재하고 있다. 금융산업의 발달 이전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은 담보금융이나 관계금융 즉, 담보를 잡거나 잘 아는(또는 확실한) 상대방과 금융거래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금융이 이러한 담보금융과 관계금융에 국한된 경우, 담보력이 없거나 배경이 부실한 경제 주체들은 금융거래에서 소외되게 된다. 이는 자본이 필요한 쪽뿐 아니라 투자를 원하는 쪽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20세기 후반 들어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세계적으로 금융산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금융자본주의는 현대 경제의 특징을 설명하는 뺄래야 뺄수 없는 주요한 개념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금융은 기업이나 투자자의 수익 극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프리미엄 및 불완전 정보로 인한 역선택 문제를 줄이고, 금융시장을 통해 경영진의 성과를 보상하거나 실패를 징벌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신생 기업들이 기존 기업과 맞서 시장에 진입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시장 경쟁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현재와 같이 개인 및 중소기업들이 담보 혹은 관계가 없이도 신용을 창출하고 이를 활용하여 금융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은 금융산업의 발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금융산업의 발달은 자연스럽게 금융시장의 규모도 키우게 되었는데, 지난 30여년간 선진국을 중심으로 금융시장의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미국 국민총생산(GDP) 대비 주식의 시가총액은 1970년 0.66에서 2000년 1.53으로 정점에 달하였다가 2010년 현재 이보다 다소 낮은 수준인 1.18을 기록하고 있다. 사모펀드 시장의 규모도 1980년 50억 달러에서 2010년 현재 2.4조 달러 규모로 급성장하였는데, 이는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인 프랑스의 국민총생산 규모에 맞먹는 수치이다. 이와 같이 금융부문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금융자본의 경제 지배가 나타나는 자본주의 형태를 금융자본주의라 지칭한다.
 

  금융자본주의는 2차 대전이후 세계 금융질서로 자리잡은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되면서 더욱 발달하게 되었다.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계속되는 무역적자와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위기를 탈피하고자 금본위제를 포기하게 되는데, 브레튼우즈 체제의 핵심은 금본위제와 고정환율제였다. 고정환율제하에서는 자본통제를 통해 환율을 고정해야 했으므로 자유로운 자본 이동이 쉽지 않았으나, 환율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상황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자본이동이 자유롭게 되자 이전처럼 위탁매매(brokerage) 수수료 수익에 기반한 다수의 금융회사 수익 모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금융국제화에 따른 투자기회의 확대가 한가지 이유가 될 것이다.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의 감소는 거래량의 증가로 부분적으로 보상되기는 하였으나, 금융회사들은 투자자문과 중개매매 수수료 수익을 대체할 새로운 수익원을 필요로 하게 되었으며, 이는 금융산업을 크게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점차적으로 투자은행을 위시한 금융회사들은 자기 자본을 이용한 직접투자의 비중을 늘리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점점 더 큰 규모의 자본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금융회사들은 주식 시장에서 직접 자본을 조달하거나 기존의 상업은행과 합병을 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결국 1999년에 Glass-Steagall 법이 폐지되면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간 경계가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변동환율제의 도입으로 파생상품도 발달하게 되었는데, 환율의 변동성이 커지게 되자 비용과 수익간 발생하는 시점에서의 환율이 달라지는 위험에 직면한 회사들은 환율 변동성의 위험을 헤지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필요가 반영되어 시카고 상품거래소(Chicago Mercantile Exchange, CME)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선물 개념 자체는 이미 농산물 및 천연자원 시장을 중심으로 존재하고 있었으나, 금융선물은 이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성장을 보이게 된다. 오늘날 활발히 거래되는 옵션, 스왑(interest rate, credit-default) 등의 복잡한 파생상품들은 사실상 이러한 외환 선물의 직계 후손들인 셈이다.
 

  기본적으로 선물, 옵션, 스왑 등 파생상품은 모두 레버리지 효과를 지니고 있다. 즉, 초기 포지션과 비교 시 사후적으로 훨씬 큰 익스포져(exposure)를 가질 수 있다. 이와 같은 레버리지 효과로 인해 금융 회사는 적은 자기 자본으로도 큰 규모의 수익(또는 손실)을 거둘수 있는 반면, 감독 당국은 개별 회사의 위험 익스포져 정도에 대해 추적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한편 1970년대말 이후 금융증권화(securitization)도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mortgage)을 위험도에 따라 분류하고 재결합하여 외부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는 형태의 주택담보증권(Mortgage-Backed Securities, MBS)으로 시작되었지만, 이후 그 구성이 점차 복잡해지면서 증권화된 금융상품의 투명성은 크게 낮아지게 되었다.
 

  초기에는 위험을 줄여주고 금융 비용을 낮추며 유동성을 높여주기 위하여 개발된 금융 파생 상품들이 점차적으로 투기수단으로 이용됨에 따라 결국 2008년 전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 위기의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사실 모든 산업에 변동성은 있으며 특히 새로운 산업의 경우 때때로 버블이 발생할 수 있다. 다만 금융산업의 경우 변동성의 폭이나 규모가 다른 산업에 비교하여 과도하게 크며, 복잡한 파생상품의 확산으로 인해 그 파급효과 또한 과도하게 크다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고려한다면 금융회사의 자기자본 투자를 제한하는 Dodd-Frank 법안 등과 같이 금융산업의 효율성을 다소 희생시키더라도 안정성을 도모하고자 하는 최근의 시도들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향후 금융산업은 전반적인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기반으로 실물부문과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다만 금번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전까지 30여년간 세계 경제의 안정적 성장에 금융산업의 발전이 상당부분 기여한 것도 사실이라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여은정 교수
(경영학부)

 

이영준 기자의 참고서

탈규제와 금융 자본주의

  금융 탈규제는 금융 자본주의의 성장에 불을 집혔다. 영국은 1986년 10월 증권 매매 및 위탁 수수료 자유화 등 금융 규제 완화를 통해 ‘금융 빅뱅’을 초래했다. 미국에서는 1999년 글래스스티걸 법이 폐지되고, 그램리치브릴리 법(GLBA)이 통과되면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간의 장벽이 허물어졌다. 1929년 대공황 이후 제정된 글래스스티걸 법(Glass-Steagall Act)은 다른 금융업종간 상호 진출을 규제하는 법안으로 미국은 1999년 법안이 폐지되기까지 60년 넘게 은행과 증권이 분리되어 있었다.
 

  영국과 미국의 뒤를 이어 많은 나라들이 금융 탈규제에 나섰다. 특히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 등 일부 국가는 금융 부문의 민영화, 자유화를 통한 금융 주도형 경제 성장 전략을 채택하기도 했다. 터키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를 지켜보고도 금융 주도형 경제 전략을 내세웠다. 한국 역시 금융규제를 안화하며 동북아 금융 허브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많은 나라가 탈규제에 나선 이유로 장하준 교수는 ‘금융 부문에 대한 규제를 완화·폐기해 놓기만 하면 금융업이 다른 산업보다 돈을 벌기가 훨씬 쉬운 업종이기 때문’이라 주장했다. 실제로 1990년대 초반에는 금융 기업의 이윤율이 비금융 기업의 이윤율을 따라잡을 정도로 높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근 월가 시위 등 금융 자본주의 체제에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 탈규제로 수많은 금융 상품들이 발명됐는데, 이들 금융 상품들을 엮어 만든 파생 금융상품들이 개발됐다. 파생 금융 상품은 리스크와 동시에 높은 단기 수익을 가져 투기 목적으로 이용됐고, 이중 주택 담보부 증권(MBS)은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드러났다. 이에 다시 금융 시장을 규제해야한다는 주장들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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